현미경 사진 공모전에서 과학 장비가 예술 도구로 쓰일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수상작이 나왔다. 독일의 25세 실험 사진작가 올레 비엘펠트(Ole Bielfeldt)가 잉크젯 프린터가 종이 위에 잉크를 떨어뜨리는 순간을 현미경으로 포착한 사진으로 2026년 니콘 스몰월드(Nikon Small World) 현미경 사진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69개국에서 출품된 1,802점의 경쟁작을 제쳤다. 니콘 스몰월드는 1974년 시작돼 올해로 52주년을 맞은 공모전으로, 광학 현미경을 통해 본 세계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엘펠트가 현미경 사진에 빠진 계기는 코로나19 봉쇄 기간이었다. 그는 부모님 집 다락방에서 오래된 현미경을 발견한 뒤, 튜브와 나무로 어댑터를 직접 만들어 현미경과 아버지의 카메라를 연결했다. 이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독학으로 촬영 기법을 익혔고 필요할 때마다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손수 제작했다. 그는 일상적인 사물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 담는 과정을 'macrofying'이라는 자신의 사진·영상 브랜드에 비하인드 영상으로 기록해 공개하고 있다.
셔터 대신 플래시로 멈춘 순간
수상작의 출발점은 잉크젯 프린터의 내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잉크 방울이 종이에 내려앉는 찰나를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과정 자체가 지나치게 빨라, 방울이 움직이는 속도가 카메라의 셔터 속도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비엘펠트가 찾아낸 해법은 장비의 성능이 아니라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프린터를 분해해 인쇄 헤드가 움직이는 대신 종이가 고정된 헤드 아래로 지나가도록 재구성했다. 그리고 암실에서 플래시를 셔터처럼 사용해, 공중에 떠 있는 잉크 방울을 그대로 얼려 담았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 값비싼 장비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엘펠트는 작품에 AI를 사용하지 않으며 전통적인 촬영 기법을 고수한다고 밝혔다. 생성형 이미지 기술이 급속히 확산되는 시점에서, 물리적 조작과 광학 원리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던 순간을 포착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에 가깝다.
니콘 인스트루먼트의 대변인 에릭 플렘(Eric Flem)은 "올레 비엘펠트의 수상작은 니콘 스몰월드를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 즉 현미경 이미징과 창의성, 예술성의 교차점을 그대로 구현한다"고 평했다. 그는 "현미경 대물렌즈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는 익숙한 사물을 완전히 새롭고 이전에 본 적 없는 무언가로 바꿔놓았다"며 "현미경이 과학 도구일 뿐 아니라 세상을 보고 상상하는 방식을 넓히는 창의적 도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일깨운다"고 덧붙였다.
기법보다 발상이 결과를 가른다
이 수상작이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단순하다. 고사양 장비 대신 문제의 구조를 다시 짠 발상이 결과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셔터가 따라잡지 못하는 속도의 피사체를, 헤드를 고정하고 플래시를 셔터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해결한 접근은 장비의 한계를 설계의 재구성으로 우회한 사례다. 제약 조건을 바꿀 수 없을 때 촬영 대상과 광원의 역할을 재배치한다는 사고방식은 영상, 측정, 실험 세팅 등 빠른 현상을 다뤄야 하는 여러 기술 분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이 작품을 일반적인 기법으로 보기에는 한계도 분명하다. 프린터를 분해해 종이 이송 구조를 바꾸는 일은 특정 대상에 맞춘 일회적 개조에 가깝고, 암실과 플래시 동기화 역시 반복 재현을 전제로 한 표준 공정이라기보다 작가 개인의 숙련과 시행착오에 기댄 결과물이다. 즉 '싼 장비로 누구나 할 수 있다'기보다, 원리를 이해한 사람이 도구를 재구성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종류의 성과다.
니콘은 2011년 정지 사진 부문 외에 움직임을 담는 '스몰월드 인 모션(Small World in Motion)' 부문을 추가했으며, 올해도 두 부문 모두 수상작을 선정했다. 올해 공모전의 상위 10개 수상작이 공개됐고, 니콘은 2026년 수상작들을 담은 2027년 전면 컬러 달력도 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