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신약 개발에 쓰인다고 하면 대개 새 분자의 초기 설계를 떠올린다. 그러나 앤트로픽이 자사 생명과학팀의 수개월간 진행 상황을 공개하며 강조한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신약 개발의 병목은 한 지점에 몰려 있지 않고, 표적 발굴부터 분자 설계와 최적화, 대량 생산 공정, 규제 서류 작성, 임상시험 설계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공정 전체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문제를 푸는 대신 Claude를 이 모든 과업에 점점 더 깊이 관여시키는 전략을 택했고, 실제 신약 프로그램에 직접 들어가 병목을 찾아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현재까지 여섯 개 조직과 협력 중이며, 자체 신약 탐색도 시작했다.
이 작업의 목적은 세 갈래로 정리된다. 다양한 과업에 걸쳐 모델의 강점과 한계를 파악해 개선 우선순위를 정하고(이미 몇 가지 개선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다른 바이오텍이 참고할 사례를 만들며, 프로그램 자체가 식품 알레르기·소아 희귀질환·여러 암종에 대한 실제 치료제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앤트로픽 스스로도 현재 성과 대부분이 사람 대상 임상 이전 단계, 즉 전임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설계와 탐색 단계의 구체적 성과
Generate Biomedicines는 혈액암에 주로 쓰이던 CAR T세포 치료를 고형암으로 확장하기 위해, 치료제의 유전 지시 일부를 줄여 다른 지시를 넣을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과학자 여섯 명이 Claude Code로 새 설계를 제안했고, 그중 한 설계는 표준 대비 약 70% 짧으면서도 실험에서 더 효과적이었다.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식별하는 수용체를 약 10배 더 많이 만들었고, 종양세포를 더 효율적으로 죽였으며 활성도 더 오래 유지됐다.
Divergence Labs는 식품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IgE를 혈중에서 중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면역세포에서 아예 떼어내는 약을 개발 중이다. 이를 위해 IgE에 단단히 결합하는 팔과 세포에서 떼어내는 팔, 두 개의 '팔'을 가진 정밀한 설계가 필요했다. Claude는 목표를 상세 설계안으로 바꾼 뒤 약 한 달 만에 거의 자율적으로 3만 5,000여 개의 항체 설계를 생성했고, 초기 시험에서 결합하는 설계 3종과 떼어내는 설계 20종을 확보했다. 그중 3종은 표준 약보다 IgE를 더 잘 떼어내는 것으로 보였다.
BigHat Biosciences는 자동화 실험실과 AI를 결합해 선도물질을 다듬었다. Claude가 자사 데이터 시스템 Reccy에 연결돼 변경안을 제안하고 실험실이 10주간 약 1,010개 변이체를 만들어 시험했다. 도중에 열 안정성·응집 지표가 오해를 부른다고 의심되자 Claude와 연구자가 원시 데이터를 재분석해 다른 지표와 프로토콜 변경을 제안했고 예측이 대체로 맞았다. 최적 버전은 결합력이 10배 이상 강해졌고, 암 표적 물질은 용해 안정성이 18도 올랐으며, 또 다른 물질은 응집 속도가 100배 이상 느려졌다.
서류·운영·회사 설립으로 확장
흥미로운 지점은 분자 설계를 넘어선 영역이다. Enveda에서는 제조 화학자들이 업무 시간의 최대 75%를 서류 작업에 쓰고 있었는데, 모든 제조 문서를 Claude에 연결해 문제를 짚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1,061쪽 문서 시험에서 Claude는 사람이 찾은 문제 11건을 모두 잡고 놓친 7건을 추가로 찾았으며, 검토 시간을 25시간 이상에서 3시간 미만으로 89% 줄였다. 손으로 약 석 달 걸리던 규제 문서 초안을 네 시간 만에 쓰기도 했다. The Column Group과는 Pleiades라는 신생 회사를 세워 소규모 팀이 평소보다 훨씬 많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이며, 표적의 가치를 평가하는 첫 Claude 스킬을 45개 표적-질환 쌍에 적용해봤다. 최근에는 Bristol Myers Squibb와 임상시험 계획 평가 및 성공 가능성 추정에 착수했고, 2027년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자체 연구도 시작됐다. 앤트로픽은 두 가지 희귀 근이영양증 치료제를 개발하던 1인 기업 Mithril Medicine을 인수했다. 창업자 코디 트랜바거는 11개 외부 실험실과의 계약·물류·실험을 Claude로 조직하고 운영의 상당 부분을 위임해, 아이디어에서 생쥐 유효성 결과까지 18개월 안에 도달했다. 그는 앤트로픽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후보물질이 계속 유지되면 이르면 2028년 말 사람 대상 임상 진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무자가 주목할 지점과 한계
한국의 바이오·제약 실무자에게 이 발표가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AI의 기여가 분자 생성이라는 화려한 영역에만 있지 않고, 전체 공정 시간의 큰 비중을 잡아먹는 품질 문서 검토나 규제 서류 초안, 계약·물류 같은 운영 부담을 줄이는 쪽에서 당장 측정 가능한 효과가 난다는 점이다. BigHat 사례처럼 통념적 지표의 오류를 원시 데이터로 되짚는 작업에도 쓰인다는 점은, AI를 단순 생성기가 아니라 분석 파트너로 배치할 여지를 보여준다. 다만 성과 대부분이 전임상 단계이고 세포·동물 실험 수준이라는 점, 수치가 특정 프로그램의 초기 결과라는 점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게 한다. 앤트로픽은 연구자용 작업공간 Claude Science, 생명과학자 크레딧 지원, 더 완화된 안전장치로 강력한 모델을 쓰게 하는 생명과학 검증 프로그램, 객원 연구자 공개 모집 등으로 접근을 넓히고 있으며, 프로그램이 진전되면 Claude의 역할을 임상 단계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