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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바빌로니아 교실에 '신'이 있었던 이유: 교육과정에 숨은 이념 전수

케임브리지대 출판부가 펴내는 학술지 『Iraq』에 "교실의 신들: 기원전 1000년기 바빌로니아의 종교와 교육"이라는 논문이 공개됐다. 저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오늘날과 같은 별도의 '종교 교육' 과정이나 성경 같은 중심 경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서기관 양성을 위한 공식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종교와 관련된 뚜렷한 학습 성과들이 드러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신들의 이름과 성격, 종교 중심지로서의 바빌론과 니푸르, 신전 제의와 종교적 공간, 신과 인간의 관계 같은 지식이 학생들이 베껴 쓰고 발췌한 텍스트의 '선별'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왜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가르쳐졌나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종교는 일상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습득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엘리트 계층에게는 일상적 관행을 넘어서는 전문 지식이 필요했기에 종교적 관습과 신학 전통을 능동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사제와 제의 담당자는 물론이고, 의술·점성·퇴마·점복·제의 창가 같은 전문직 역시 신과의 소통과 의례가 업무의 중심을 이뤘다. 흥미로운 점은 명시적으로 종교적 임무를 맡지 않는 서기관과 행정 관리들에게도 왕과 신의 관계, 신에 대한 왕의 책무 같은 신학적 관념이 주입됐다는 사실이다. 종교 이념이 국가와 본질적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종교를 처음 접하는 곳은 가정이었다. 조상 숭배는 집 안에 가족을 매장하는 관습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아이들은 가족 신과 개인 신을 섬기는 부모를 모델 삼아 의례에 참여하며 자랐다. 치료사나 퇴마사의 방문, 지역 신전에 바치는 봉헌, 축제 같은 공공 의례도 자연스러운 학습 경로였다. 제의 담당자인 아버지를 둔 소년들은 아버지의 직무를 관찰하거나 직접 지도받으며 일찍부터 신전 봉사를 익혔다.

가정에서 이뤄진 '사립 교육'

공식 교육은 대체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졌고, 다른 직업보다 훨씬 표준화·구조화돼 있었다. 기초 교육을 마치면 도제 성격의 심화·전문화 단계로 넘어갔으며, 학생들은 장래 직업과 무관하게 거의 동일한 학습 계획을 따르되 어디까지 진도를 나가느냐가 직업에 따라 갈렸다. 교육은 전문 교육기관이 아니라 가정을 기반으로 한 사적인 환경에서 이뤄졌고, 교사는 대개 그 집 소년의 아버지였다. 도시의 유력하거나 신분 상승을 꾀하는 가문들이 아들을 그곳으로 보냈다. 따라서 교육은 기술 훈련인 동시에 미래 엘리트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심는 사회화 과정이기도 했다.

현대 학자들이 이 교육과정을 복원할 수 있는 근거는 이른바 '학교 텍스트'다. 학생의 연습 과제이거나 교사가 교육용으로 작성한 이 점토판들은 콜로폰 기록, 여러 텍스트에서 발췌해 한 판에 모은 구성, 혹은 서툰 필체와 오류·점토판 형태·보관 맥락 등으로 식별된다. 1000년기 바빌로니아의 학교 텍스트는 고(古)바빌로니아 시기와 상당 부분 같은 장르를 담았지만 사회·문화적 환경은 크게 달랐다.

제국의 관료를 찍어내던 공통 교육

기원전 1000년기는 지역 왕국의 시대가 아니라 제국의 시대였다. 신아시리아 제국에서 시작된 거대한 행정·관료 기구는 서로, 또 왕과 끊임없이 서신을 주고받는 서기관과 관리 집단에 의존했고, 그만큼 미래 엘리트를 제국의 규범과 사명 안에서 길러내는 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대부분의 판테온과 교육 전통을 공유한 신바빌로니아 제국도 같은 기반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출신이 아닌 아케메네스와 셀레우코스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전통적 방식과 새로운 기대 사이에 긴장이 생겼고, 수메르어 보존에 몰두하던 과거와 달리 언어 지형도 바뀌어 있었다. 종교 교육은 결국 세대를 넘어 공통의 종교 전통과 이념을 차세대 제국 서기관과 전문가, 행정가에게 심는 장치였던 셈이다.

이 연구가 한국의 실무자에게 던지는 함의는 '커리큘럼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오래된 명제다. 명시적인 윤리 과목이나 가치 선언문이 없어도, 무엇을 교재로 선택하고 어떤 예제를 반복시키느냐가 학습자의 세계관과 소속 집단의 이념을 조용히 각인한다. 신입 교육과 온보딩 자료, 기업 내부 위키의 예시 코드와 문서 템플릿 역시 기술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일한다'는 암묵적 규범을 전달한다. 3천 년 전 점토판이 보여주듯, 지식 전수 시스템의 설계는 곧 조직 정체성의 설계다.

다만 저자 스스로 밝히듯 이 글의 사례 연구는 포괄적이지 않으며, 종교 지식의 여러 유형을 예시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분석 대상은 엘리트·상승 지향 가문의 소년과 청년에 국한되므로 당시 사회 전반의 교육 경험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결론은 파편적으로 남은 학교 텍스트의 복원에 기대고 있어, 교실에서 실제로 오간 말과 분위기까지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교육이 무엇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은, 커리큘럼을 설계하는 모든 분야에 여전히 유효하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iraq/article/god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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