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에 코드를 쓰면 진짜로 실행된다
혹시 '리마커블(reMarkable)'이라는 전자잉크 태블릿 들어보셨나요? 화면이 진짜 종이처럼 보이고, 펜으로 글씨를 쓰는 데 특화된 기기예요. 보통은 메모하고 PDF에 필기하는 용도로 쓰는데요. 이번에 한 개발자가 이 기기를 아예 프로그래밍 도구로 바꿔버린 'Edsger'라는 프로젝트를 공개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종이 같은 화면에 펜으로 클로저(Clojure) 코드를 손으로 쓰면, 그게 인식돼서 진짜로 실행되고 결과가 다시 화면에 나타나는 거죠. 키보드 없이 손글씨만으로 코드를 돌리는 거예요.
REPL이 뭐냐면
먼저 'REPL'이라는 단어부터 풀어볼게요. REPL은 Read-Eval-Print-Loop의 약자인데요, 쉽게 말하면 '코드 한 줄 쓰면 바로 실행해서 결과 보여주는 대화창'이에요. 계산기에 2+3 치면 바로 5 나오는 것처럼, 코드를 한 조각씩 던지면 즉시 답을 주는 환경이죠. 파이썬 깔고 터미널에서 python 치면 나오는 그 화면, 그게 REPL이에요.
클로저는 리스프(Lisp) 계열의 함수형 언어인데, 이 REPL 중심 개발 문화가 유독 강한 언어예요. 코드를 통째로 짜고 실행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환경에 코드 조각을 계속 던지면서 키워나가는 방식이거든요. 그래서 '손글씨 REPL'이라는 아이디어랑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아요.
어떻게 동작하냐면
흐름을 풀어보면 이래요. 펜으로 화면에 쓴 손글씨를 먼저 글자로 인식(필기 인식, handwriting recognition)해요. 손으로 쓴 구불구불한 선을 (+ 1 2) 같은 텍스트 코드로 바꾸는 단계죠. 그 다음 이 텍스트를 클로저 인터프리터에 넘겨서 평가(eval)하고, 나온 결과를 다시 화면 한쪽에 적어주는 구조예요.
참고로 프로젝트 이름 'Edsger'는 컴퓨터 과학의 전설적인 인물 에츠허르 데이크스트라(Edsger Dijkstra)에서 따온 거예요. 데이크스트라는 평생 컴퓨터보다 만년필과 종이로 알고리즘을 증명하고 글을 쓴 걸로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종이에 손으로 코드를 쓴다'는 이 프로젝트 컨셉이랑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작명이죠.
업계 맥락에서 보면
사실 '펜 컴퓨팅'은 새로운 게 아니에요. 옛날 PDA부터 태블릿, 요즘 아이패드+애플펜슬까지 손글씨 입력은 계속 시도돼 왔죠. 다만 대부분은 메모나 그림에 머물렀고, '손글씨로 프로그래밍한다'는 발상까지 간 경우는 드물었어요. 비슷한 결로는 종이에 그린 회로/블록이 코드가 되는 교육용 도구들이 있긴 하지만, 범용 언어 REPL을 통째로 올린 건 확실히 별난 시도예요.
이게 실용적이냐고 물으면 솔직히 '아니요'에 가까워요. 키보드가 압도적으로 빠르니까요.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의 가치는 효율이 아니라 '컴퓨팅이라는 게 꼭 키보드+모니터여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있어요.
한국 개발자에게 주는 시사점
당장 실무에 쓸 일은 없겠지만, 배울 점은 분명해요. 첫째, 손글씨 인식 → 파싱 → 평가 → 렌더링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설계는 어떤 인터랙티브 도구를 만들든 똑같이 적용되는 구조예요. 둘째, 리마커블 같은 폐쇄적으로 보이는 기기도 사실은 리눅스가 돌아가서 해킹과 커스텀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이고요. '내 기기로 뭘 더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거예요.
마무리
결국 Edsger는 '효율'이 아니라 '재미와 사고의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예요. 종이의 차분함과 코드의 즉각성을 합쳐본 실험인 거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키보드를 잠깐 내려놓고 펜으로 코드를 써보는 경험, 생산성과 별개로 사고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줄까요?
🔗 출처: Hacker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