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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건물이 주택 공급을 막는다? 님비와 '닛비'의 진짜 메커니즘

못생긴 건물이 주택 공급을 막는다? 님비와 '닛비'의 진짜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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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도시가 주택을 충분히 짓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서구 국가들은 토지 소유자가 자기 땅에 거의 무엇이든 지을 수 있게 허용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동네에서 촘촘한 규제가 변화와 고밀화를 사실상 얼려 버렸다. 이런 규제를 낳은 원인 중 하나로 자주 지목되는 것이 '못생긴 건축'이다. 현대 건물이 대체로 흉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그런 건물을 배제하는 규칙을 지지하게 되었고, 따라서 아름다운 건물을 설계하면 개발이 더 쉬워진다는 논리다. 영국의 주택 개혁론자들은 이 주장에 우호적인 편이고, 호주 쪽은 회의적이며, 미국은 양쪽으로 갈린다.

Works in Progress에 실린 이 글의 저자는 못생김이 개발을 가로막는 데 실제로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작동 방식이 통념과 다르다고 본다. 핵심은 반대자를 두 부류로 나누는 데 있다. 개발지 인근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 즉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와, 개발지 근처에 살지도 않으면서 반대에 가담하는 사람들, 저자가 '닛비(NITBY, Not In That Backyard)'라고 부르는 집단이다. 못생김이 정말로 위력을 발휘하는 지점은 바로 후자라는 것이다.

지역 주민 반대의 진짜 이유

인근 주민의 반대에서 미관은 생각만큼 큰 동기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공사 기간의 소음과 혼란, 녹지 상실, 지역 서비스와 인프라에 가해지는 압박, 그리고 동네의 사회적 배타성이 희석되는 문제 같은 더 절실한 걱정거리가 많다. 저자가 미관 중심 설명을 의심하는 첫 번째 근거는, 드물게 실제로 아름답게 지어진 개발조차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꼽히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아이온(I'On)은 보행 친화적 도시 설계와 정교한 주택으로 유명하지만, 처음 제안됐을 때 수천 명이 반대 청원에 서명했고 시의회는 계획을 부결했다. 결국 주 대법원이 '용도지역 결정을 주민투표로 할 수 없다'고 판결한 뒤에야 반대가 꺾였다. 영국에서도 건축 애호가인 현 국왕이 왕세자 시절 주도해 온 콘월 공작령의 개발들, 그리고 켄트주 페이버셤에 제안된 새 확장 계획이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축에 든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수백 통의 항의 서한과 지방의회·지역 하원의원의 반대를 불렀다. 아름다움이 님비의 만병통치약은 아닌 셈이다.

순서가 맞지 않는다

더 강력한 반박은 시점의 문제다. 20세기에 토지 규제가 훨씬 엄격해진 것도 사실이고, 시각 선호 조사에서 대다수가 모더니즘보다 전통 양식을 선호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멀리서 보면 둘이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두 변화는 순서가 어긋난다. 제약적 용도지역제는 1890년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퍼졌고, 영국은 1909년, 프랑스는 1919년에 제도적 틀을 갖췄으며 미국은 양차 대전 사이에 확산됐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상당수 교외는 1914년 이전에 이미 기존 밀도로 상한이 묶였고 지금도 그 밀도를 유지한다. 반면 모더니즘 건축은 그보다 한 세대 늦은 1920년대 독일에서 출발해 1930년대에 소수 양식으로 번졌고, 세계적 지배는 1950년대에야 이뤄졌다. 1930~40년대 미국의 대표 건축물인 대법원 건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제퍼슨 기념관이 여전히 신고전주의나 아르데코였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른바 '대규모 다운조닝'은 새 건물이 아직 대부분 19세기 전통 양식이던 시절에 완성됐다. 흉하다고 여겨지는 양식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님비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못생김이 진짜로 힘을 발휘한 곳: 문화재 보존

그렇다면 못생김은 주택 부족과 무관한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친주택 운동가들은 지역 규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주(州)나 연방 차원의 지지를 끌어모아 몇몇 승리를 거뒀지만, 거의 예외 없이 실패한 영역이 하나 있다. 바로 역사지구의 재개발이다. 서구 전역에서 오래된 건물은 가장 값비싼 도심 부지에 있어도 재개발로부터 보호된다. 저자는 보존주의가 전후 계획가들의 파괴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설명도, 님비의 교묘한 명분일 뿐이라는 설명도 증거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후 철거율은 빅토리아·조지 시대와 비교해 역사적으로 정상 범위였고, 님비는 이미 반대하던 개발을 20세기 전반에 다 막아냈으므로 새 명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달라진 것은 모더니즘 건축의 부상이었고, 대다수가 상대적으로 흉하다고 느낀 그 결과물이 '자기 동네가 아닌 곳'의 재개발에까지 반대하는 방대한 닛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보존 정책의 효과는 수치로도 압도적이다. 1960년까지도 유럽 대부분은 극소수 기념물만 보호했고 미국의 많은 주는 아무것도 보호하지 않았지만, 이후 20년간 상황은 급변했다. 1950년대 파리 계획은 도시 블록의 3분의 2 철거를 내다봤고, 영국은 전후 슬럼 정비로 실제 150만 호 이상을 철거해 전쟁 전 주택 재고의 15~20%에 달했다. 그러나 보존 정책이 자리 잡자 철거는 거의 멈췄다. 프랑스는 1999~2013년 1949년 이전 주택의 연 0.13%만 철거했고, 2022년 베를린에서는 1919년 이전 건물 5만 337채 중 단 9채(0.018%)만 헐렸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2023년 기준 이 속도라면 전쟁 전 재고를 다 헐어내는 데 7,951년이 걸린다. 영국에서는 철거보다 분할이 더 많아 1919년 이전 주택 수가 오히려 늘어나는 역설까지 나타났다.

한국 실무자에게 남는 함의

이 분석이 국내 개발·정책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첫째, '디자인을 예쁘게 하면 반대가 사라진다'는 기대는 과대평가다. 인근 주민의 반대 동기는 미관보다 공사 혼란, 일조·녹지 상실, 인프라 부담, 지역의 사회적 위상 변화에 있으므로, 아름다움은 반대를 다소 누그러뜨릴 뿐 근본 해법이 아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동네도 완성 전 수년간의 극도의 흉함(공사판)을 거친다는 지적도 곱씹을 만하다. 둘째, 그럼에도 미관은 '먼 곳의 여론'을 움직여 광역·전국 단위 보존 규제를 정당화하는 힘을 갖는다. 재생·정비 정책을 설계할 때 인접 주민 설득과 광역 여론 관리를 같은 문제로 뭉뚱그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다만 이 글은 서구, 특히 유럽과 미국의 사례와 정성적 정황 증거에 기반한 해석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저자 스스로 일화적 증거의 취약성을 인정하며, 밀도 규제와 보존 규제의 정치적 동학이 다른 국내 맥락에 그대로 이식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반대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구분해 규제의 기원을 다시 읽는 이 프레임은, 재개발 갈등을 단순히 '주민 이기주의' 대 '공익'의 대립으로만 보던 시각을 넉넉히 흔든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orksinprogress.co/issue/beauty-in-my-backy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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