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6분 읽기 28 READS

토끼는 어떻게 영국 왕실의 사치품에서 흔한 침입종이 되었나

토끼는 어떻게 영국 왕실의 사치품에서 흔한 침입종이 되었나
SOURCE IMAGE · HACKER NEWS

오늘날 영국 시골에서 토끼는 흔하디흔한 풍경이지만, 유럽 토끼는 영국 제도의 토착종이 아니며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침입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동물이 왕과 노르만 귀족이 주고받던 희귀한 선물에서 시골 들판을 뒤덮는 존재로 바뀌기까지의 과정은, 중세 잉글랜드의 사회 변동을 압축해 보여준다. 흑사병(1346~1353년) 이후 생존한 하층민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토끼 역시 귀족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점차 대중의 식탁과 옷으로 내려왔다.

토끼의 유입 시점에 대한 통념도 수정되고 있다. 과거에는 노르만인이 들여왔다고 여겨졌으나, 고고학자들이 로마 시대 브리튼 유적에서 토끼 뼈를 발견하면서 그보다 앞선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만 문헌 기록은 노르만 시대 이후에야 나타난다. 가장 이른 기록 중 하나는 실리 제도에서 나온 십일조 관련 문서다. 1176년 지주 리처드 드 와이카는 토끼에는 십일조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믿어 납부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는데, 이런 혼란 자체가 당시 토끼가 생소한 신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왕이 직접 챙긴 귀한 동물

13세기에도 토끼는 왕이 직접 관리를 신경 쓸 만큼 귀했다. 1235년 헨리 3세는 길퍼드 사냥터의 토끼 10마리를 살아 있는 채로 우스터셔 마틀리의 영주 제프리 디스펜서에게 선물했다. 몇 년 뒤에는 같은 사냥터에서 토끼 30~40마리를 잡아 오라고 사람을 보내면서도, 개체 수가 충분할 때만 잡으라고 지시했다. 번식지를 고갈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토끼가 왕의 연회 조달 목록에 오른 것도 비교적 늦어, 사슴·멧돼지·백조·공작 등이 일찌감치 포함된 것과 달리 토끼는 1240년 크리스마스 연회에 이르러서야 추가됐다.

값도 만만치 않았다. 토끼는 닭의 네댓 배에 달하는 고급 별미였고, 소유주들은 밀렵과 포식자로부터 번식지를 지키기 위해 감시탑과 돌로 된 관리 건물까지 세웠다. 고기와 모피 양쪽 모두를 위해 길러졌으며, 희소성 자체가 신분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흑사병이 바꾼 식탁과 옷차림

전환점은 흑사병이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3분의 2를 앗아간 이 재앙은 역설적으로 생존자들의 생활을 끌어올렸다. 토지가 더 쉽게 확보됐고 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었으며, 상당수가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1363년에는 신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을 제한하는 법이 도입됐는데, 그 명분은 "신분에 넘치는 과도한 복식이 나라를 크게 파괴하고 궁핍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토끼는 이 변화를 그대로 반영했다. 14~15세기 동안 부유한 농민이 토끼 고기를 먹고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장인들이 토끼 모피를 걸치면서 토끼는 점차 흔해졌다. 일반적인 회색 토끼 모피는 방한용이었지만, 일부 번식지는 더 희귀한 은회색이나 검은색 토끼를 전문으로 길렀고, 헨리 7세는 검은 토끼 모피로 잠옷을 지어 입었다.

개체 수가 늘자 피해 민원도 함께 늘었다. 장원 회계 장부에는 영주의 토끼가 작물을 망치고 땅을 훼손한다는 항의가 거듭 등장한다. 동시에 토끼나 사냥감을 쫓는 행위는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받아들여졌다. 1381년 농민 반란 이후인 1390년, 의회는 노동자와 장인의 밀렵·사냥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했다. 사냥을 핑계로 이들이 왕에 맞선 "반란의 음모와 모의"를 꾸밀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왕은 이에 동의하며 사냥개와 족제비, 그물과 밧줄 등 각종 도구로 숲의 짐승이나 산토끼·토끼를 잡는 행위 전반으로 금지 범위를 넓혔다.

중세의 풍자 속 토끼

토끼는 중세 사회의 풍자적 유머도 드러낸다.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에 나오는 카에르반노그의 살인 토끼는 중세의 아이러니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것에 가깝다. 중세 필사본 여백에는 토끼가 달팽이 등에 올라타 마상 창 시합을 벌이는 등 기사도 이상을 가볍게 비트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더 나아가 토끼가 사람을 공격하며 복수하는 묘사도 있다. 1340년대 런던에서 채식된 스미스필드 교령집에는 토끼가 사냥꾼을 거꾸로 붙잡아 재판에 세우고 사람과 사냥개를 처형하는 정교한 장면이 담겨 있다. 이는 하루 동안 소년을 주교로 뽑거나 '무질서의 왕'을 세우던 놀이처럼, 세상을 뒤집어 웃음을 얻던 중세 문화와 맞닿아 있다.

1555년 스위스 박물학자 콘라트 게스너는 "토끼가 번식하지 않는 나라는 드물지만, 가장 많은 곳은 잉글랜드"라고 적었다. 수백 년에 걸쳐 희귀한 왕실 사치품이 흔한 침입종으로 뒤바뀐 궤적은, 생물의 분포가 생태적 요인만이 아니라 전염병·법·신분 질서 같은 사회적 조건에 깊이 얽혀 움직인다는 점을 일깨운다. 다만 이 이야기는 주로 문헌과 필사본에 의존하는 역사적 재구성이라는 한계도 함께 안고 있어, 토끼 유입의 정확한 시점이나 전국적 확산 양상을 수치로 단정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phys.org/news/2026-10-rabbits-medieval-royal-luxury-...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