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억압적 계급 사회, 기계에 지배당한 인류, 살고 싶지 않은 세계를 먼저 떠올린다. 스타트렉의 우주나 픽사의 월-E처럼 밝은 미래보다, 파괴된 도시와 감시 사회의 이미지가 훨씬 익숙하다. 호주 학생 매체 오니 수아(Honi Soit)에 실린 이 글은 바로 그 편향을 지적한다. 디스토피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넘쳐나는 지금, '우리가 실제로 살고 싶은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드문가라는 질문이다.
SF가 어둡고 우울한 톤을 즐겨 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가공의 세계라는 방패는 창작자가 직접 말하기 어려운 현실을 우회해 비판할 수 있게 해 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무너진 독일에서 만들어진 프리츠 랑의 무성영화 대작 '메트로폴리스'가 노동계급 착취와 산업화를 정면에 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외부 압력이 없더라도 SF는 당대의 불안을 교훈적·풍자적 극단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정부 권력을,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환경 위기를 다뤘듯이, 때로는 스필버그의 'AI'처럼 사랑받고 싶은 개인의 감정이라는 더 작은 스케일을 파고들기도 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암울한 시나리오는 대개 통제되지 않았거나 불공정하게 배분된 기술에서 비롯된다. 소수 특권층에게 극단적 권력을 몰아준 '엘리시움'의 호화 우주정거장, 아예 인간에게서 통제권을 빼앗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그런 예다. 여기에는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진실이 담겨 있다. 새로운 기술은 문제를 곧바로 '고쳐' 주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자기 몫의 윤리적·기술적 문제를 함께 데려오고, 그 문제를 처리하다 보면 또 다른 난제가 드러난다. 캐치-22의 무한 반복이다. 오늘날 생성형 AI를 도입한 조직이 정확도, 저작권, 데이터 거버넌스라는 새로운 골칫거리를 떠안게 되는 상황과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글쓴이가 제안하는 태도는 '기술 낙관주의'가 아니라 '기술 해결주의(technologically-solutionist)'다. 이 구분이 이 글의 핵심이다. 기술이 모든 걸 알아서 좋게 만들 것이라 믿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상황 속에서도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는 태도를 말한다.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이 보여 준 '이 상황을 과학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스타트렉 역시 갈등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갈등 속에서도 기술과 진보적 가치가 평화로운 탐험과 다문화적 조화라는 이상을 빚어낸 세계다.
낙관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낙관적'이라는 말은 '유토피아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 저울이 긍정적 진보 쪽으로 기운 세계다. 낙관을 얄팍하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성취를 무시하는 일이다. 냉소적 시선도 픽션에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면적인 체념으로 굳어 버리면 '가능성을 상상한다'는 SF 본연의 우화적 힘을 스스로 갉아먹게 된다. 늘 끔찍한 대안을 경고하기만 할 뿐,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진보를 그려 보이지는 못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SF 거장 어슐러 르 귄의 말을 빌린다. "힘든 시절이 오고 있다. 그때 우리는 희망의 진짜 근거를 상상할 수 있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원하게 될 것이다. 자유를 기억하는 작가들, 더 큰 현실을 아는 리얼리스트들이 필요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면 먼저 그 미래의 형태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오늘의 문제와 맞서려면 더 나은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기술 실무자에게 남는 것
이 글은 2022년 학생 매체에 실린 문화 비평이라 데이터나 산업 분석을 담고 있지 않고, 인용된 사례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에 국한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기술을 다루는 사람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는 새 기술을 논할 때 본능적으로 위험, 오용,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그린다.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는 건강한 습관이다. 다만 위험을 경고하는 상상력만 발달하고 '이 기술로 어떤 좋은 세계가 가능한가'를 그리는 상상력이 위축되면, 조직이나 팀은 방어적 회피에 머물기 쉽다. 해결주의는 낙관과 냉소 사이의 실용적 중간 지대를 제시한다. 완벽을 약속하지 않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손을 움직이는 태도다. 제품 로드맵을 짜든 AI 도입을 검토하든, 경고 목록 옆에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한 줄이라도 적어 두는 것. 그것이 이 오래된 SF 이야기가 지금의 실무자에게 건네는 실질적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