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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새 모델, '세포 정체성 상실'과 후성유전 시계가 측정하는 것

노화의 새 모델, '세포 정체성 상실'과 후성유전 시계가 측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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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를 설명하는 오래된 통념은 '마모(wear and tear)' 모델이었다. 자동차가 녹슬 듯 세포에도 손상이 누적되면서 기능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은 여기에 다른 축을 더한다. 하버드의 바딤 글라디셰프 연구팀이 Nature에, 알토스랩스의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팀이 Cell에 각각 발표한 연구는 '세포 정체성 상실(loss of cell identity)'을 노화의 또 다른 핵심 경로로 제시한다. 저자인 에릭 토폴은 이 두 모델이 노화 과정에서 서로 얼마나 기여하고 어떻게 얽혀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즉 손상 누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그림이다.

핵심은 세포가 발생 초기에 획득한 정체성이 평생 유지되다가 노화 과정에서 무너진다는 점이다.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DNA를 갖지만, 메틸화 곁사슬·히스톤·뉴클레오솜·크로마틴으로 이루어진 3차원 후성유전 구조는 세포 유형마다 다르다. 이 구조가 세포별 정체성의 토대이며, 그 작업은 세포핵이라는 '관제탑'에서 일어난다.

정체성을 지키는 3층 문법

논문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규제 체계를 세 개 층으로 나눈다. 빠른 층(fast layer)은 급성 스트레스에 수 분에서 수 시간 안에 반응하며 AP-1 같은 전사인자 생산에 의존한다. 중간 층(intermediate layer)은 수일에서 수주에 걸쳐 세포 상태 전이를 거쳐 치유를 촉진했다가 기저 상태로 복귀시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린 층(slow layer)으로, 크로마틴 구조에 의존해 정체성을 잠그고 단단한 경계를 세운다.

이 구도는 1957년 콘라드 워딩턴이 제시한 후성유전 지형 모델과 맞닿는다. 분화된 세포는 깊은 골짜기 바닥에 앉아 있고, 가파른 경사와 깊은 분지(canalization)가 세포를 '자기 차선'에 머물게 한다. 그런데 노화가 진행되면 골짜기의 경사가 완만해지고 분지가 얕아진다(탈canalization). 후성유전적 제약이 풀리면서 정체성이 불안정해지고, 세포가 차선을 벗어나 떠다니기 시작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냉정한 사실은, 생식기 이후의 궤적에는 이 골짜기를 젊은 상태로 유지할 진화적 압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성유전 시계가 실제로 재던 것

이 지형을 조각하는 '조각가'가 폴리콤 억제복합체 2(PRC2)다. PRC2가 깊은 경계를 세워 정체성을 고정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348개 포유류 종에서 최대 수명을 예측해온 후성유전 시계가 과연 무엇을 측정하는지 그동안 불분명했는데, 그 답이 바로 PRC2, 더 정확히는 PRC2 저메틸화 영역의 침식 속도, 즉 느린 층이 닳아가는 속도였다는 설명이다. 토폴은 후성유전 시계의 선구자 스티븐 호바스를 인터뷰했을 때만 해도 이 시계가 무엇을 포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덧붙이며, 이제 그 정체가 드러났다고 평가한다.

PRC2는 만성 염증이 빠른 층의 대응 능력을 압도하고 PRC2를 차단할 때 문제의 중심이 된다. 그 결과 워딩턴 지형이 침식되고 정체성이 상실되는데, 만성 염증이 해소된 뒤에도 크로마틴의 후성유전적 변화는 남을 수 있다. 느린 층이 끝내 무너지면 지형 전체가 붕괴하며, 이 과정은 암세포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간엽 표류와 질병, 그리고 되돌리기

Cell 논문은 '간엽 표류(mesenchymal drift)'를 파고든다. 상피세포를 비롯한 분화 세포가 섬유아세포를 닮은 간엽 상태로 바뀌면서 세포외기질을 깔고 섬유성 흉터를 만드는 현상이다. 46개 조직 유형에서 확인됐고, 섬유아세포가 다른 섬유아세포를 활성화하는 양성 되먹임 고리를 통해 진행된다. 저자는 동맥경화, 노인성 황반변성, 알츠하이머병에 이르기까지 노화 관련 질환과의 연결 고리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개입은 가능한가. 칼로리 제한은 아세틸 CoA와 PRC2 메틸화를 줄여 느린 층 구조를 보존하는 쪽으로 작용하지만, 비인간 영장류 결과가 일관되지 않았고 사람에게 요구될 제한의 강도와 기간은 비현실적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더 야심적인 접근은 야마나카 인자(OSKM)를 짧게만 노출하는 '부분 재프로그래밍'이다. 완전 재프로그래밍은 세포 기억을 지워 다능성 줄기세포로 되돌리고 암 위험을 높이지만, 짧은 자극으로는 96세 사람의 섬유아세포에서도 정체성 회복과 간엽 표류 역전이 관찰됐다고 한다. c-Myc를 뺀 세 인자(OSK)는 심한 시신경 손상 환자에게 직접 눈 주사로 투여하는 소규모 시험이 진행 중이다. Nature 논문은 리튬이 GSK3β를 억제해 타우 인산화를 막는 경로로 뉴런 정체성을 지킬 가능성도 다룬다.

실무적 함의는 분명하다. 빠른 층을 만성적으로 괴롭히면 정작 중요한 느린 층의 무결성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친염증성 식단, 운동 부족, 나쁜 수면의 질은 모두 만성 스트레스원으로서 느린 층 침식과 정체성 상실을 앞당길 수 있다. 다만 정체성 복원이 인체 수준에서 안전하게 노화를 되돌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토폴 자신도 독자를 잃지 않으려 상당 부분을 단순화했다고 밝혀 이 모델이 아직 완결된 처방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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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erictopol.substack.com/p/loss-of-cell-identity-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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