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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LAN 파티: 온라인 게임이 사람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 역설

1998년 LAN 파티: 온라인 게임이 사람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은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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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코스타메사의 한 사무용 건물 옥상에서는 달빛 아래 수십 대의 모니터가 사이키델릭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샌라파엘에서 작은 컨버터블에 자기 PC를 싣고 남부 캘리포니아까지 내려온 27세의 안드레아 브런스는 땀에 젖은 군중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가 찾은 곳은 매달 열리는 컴퓨터 게임 파티 '비트다운(BeatDown)'. 참가 조건은 단순하다. 현금과 개인용 PC, 그리고 최대 72시간을 내리 즐기겠다는 각오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당시 보도한 이 풍경은, 거리를 초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오히려 사람들을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불러 모은 역설을 보여준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밤샘 축제

LAN 파티라는 이름은 참가자들의 컴퓨터를 하나의 근거리 통신망(local-area network)으로 묶는 방식에서 나왔다. 각 PC에 네트워크 인터페이스 카드(NIC)를 꽂고 케이블로 허브에 연결하면, 컴퓨터들이 서로 '대화'하기 시작한다. 허브에는 파일과 데이터를 공유하는 전용 서버가 붙고, 현장에 빠른 인터넷 회선이 있으면 전 세계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하거나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구경할 수도 있었다. 1998년 기준으로 이는 꽤 전문적인 설정이었고, 실제로 참가자 상당수는 직장의 고속 회선 덕분에 사내에서 네트워크 게임을 즐기던 멀티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이었다.

비트다운은 매달 400명 넘는 신청자가 몰렸지만 초대장은 75장뿐이었다. 한 장소에 연결할 수 있는 PC의 최대치가 75대였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장소의 전력 공급에는 과부하여서 주최 측은 주변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했고, 운영자 마크 서파스는 밤새 내려가는 차단기를 쫓아다녀야 했다. 추가 조명은 사치였다. 어차피 게임은 어두운 곳에서 하는 것이 제맛이라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왜 굳이 모였는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수백만 명이 인터넷으로 '퀘이크' 시리즈나 에픽 메가게임스의 '언리얼' 같은 빠른 슈팅 게임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관객이 커지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혼자 싸우는 '외로운 전사'에 사람들이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에픽 메가게임스의 프로듀서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최고의 게임 경험은 인터넷에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방금 이긴 상대를 돌아볼 수도, 끝나고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갈 수도 없다면 차라리 기계와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Bay Area Network Gaming Group'의 구호처럼, 비명은 타이핑되는 것이 아니라 들려야 했다.

입소문과 인터넷을 타고 이런 모임은 미국과 캐나다 전역으로 퍼졌다. 포틀랜드 대학생들의 차고 모임부터 앨버타의 비행기 격납고에 200명 가까이 몰린 3일간의 대회, 뉴욕의 2만 제곱피트 창고를 채운 300명 규모의 '맨해튼 메모리얼 마라톤'까지 규모는 제각각이었다. 게이머들이 'LAN 씬의 백서'라 부르던 블루스 뉴스(Blue's News)에는 한때 150개가 넘는 예정 행사가 올라와 있었다.

익명이라는 가면, 그리고 게임사의 계산

LAN 파티에서 아무도 본명을 쓰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 매니저 브런스는 이곳에서 반항적인 '차이나'가 됐고, 참가자들은 'Hell's Caretakers'나 'Overlords of the Universe' 같은 공격적이고 신비로운 페르소나를 입었다. MGM 온라인의 다아시 로즈 피어스는 익명성이 사람들을 극단으로 가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파티에 있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그들의 온라인 페르소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빌'의 저자 스테이시 혼은, 시간이 지나면 역할극으로도 진짜 성격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게임사에는 이런 모임이 소중한 기회였다. 일렉트로닉 아츠, GT 인터랙티브, 인터플레이,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아메리카 등 대형 업체들은 직원을 보내 핵심 사용자의 반응을 관찰했다. 블레진스키의 말처럼,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얼굴 없는 사용자보다 살아 숨 쉬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훨씬 나은 테스트 집단이었다. 반면 위험도 있었다. 배급사 버진 인터랙티브의 한 직원은 아직 출시 전인 '스릴 킬' 디스크를 담은 작은 콘솔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복제가 얼마나 쉬운지 아느냐며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 한 번의 유출이 곧 자신의 해고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이 기사는 '기술이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당시의 비관론에 대한 반례로 읽힌다. 온라인 커뮤니티라도 번성하려면 물리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명제는, 오늘날 오프라인 밋업과 게임 토너먼트, 개발자 콘퍼런스로 이어지는 흐름의 원형이었다. 다만 기사에 담긴 풍경은 명백히 특정 시대의 하위문화였다는 한계도 있다. 참가자 대부분이 20대 남성이었고, 전력과 케이블이라는 물리적 제약이 규모의 상한을 정했으며, 베타판과 수입 게임을 교환하는 문화는 불법 복제의 유혹과 뒤섞여 있었다. 당시의 열기를 낭만화하기보다는, 네트워크 기술이 사람을 모으는 동시에 어떤 긴장을 만들어냈는지를 함께 보는 편이 실무자에게 더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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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98-aug-10-mn-1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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