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티모시 가워스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화제다. 필즈상 수상자 25명이 서명한 공개 편지에 대해, 그는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끝내 서명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이 글은 또 다른 필즈상 수상자 테런스 타오의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됐다. 표면적으로는 수학계 내부의 입장 표명이지만, 실제로는 인공지능이 지적 노동의 결과물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시대에 '문제를 푼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되묻는 논의다.
편지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문제 풀이는 개념적 이해와 통찰이라는 본래 목표를 위한 도구이자 대리 지표일 뿐인데, AI 시대에 이 사실을 잊으면 도구가 목표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지는 '참/거짓' 명제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하는 일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랄 비옥한 토양을 오히려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워스는 어린 시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직접 증명해 보려다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차분 수열의 성질을 스스로 발견하며 많이 배웠던 경험을 들어,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붙들고 씨름하는 데서 배움이 생긴다는 편지의 전제에는 동의한다고 말한다.
서명하지 않은 이유
그가 서명을 거부한 근본 이유는 편지가 개념적 이해를 '올바른' 태도로 규정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가워스는 25년 전 쓴 에세이 '수학의 두 문화'를 인용하며, 수학자들이 문제 풀이와 개념적 이해 사이의 스펙트럼 위에 넓게 퍼져 있다고 설명한다. 한쪽 끝에는 문제를 풀고 싶어 개념적 이해를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반대쪽 끝에는 이해를 얻고 싶어 문제 풀이를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 그는 이 다양성이 지금까지 좋은 것이었다고 보며, 상당수 수학자에게 그들의 기질이 '틀렸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시에 수학계가 찬반 진영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상황을 특히 우려한다.
가워스는 자신이 '친AI'로 오해받을 만한 이력을 먼저 공개하며 논의를 투명하게 만든다. 그는 OpenAI 수학팀과 교류가 있고 모델 출시 며칠 전 사전 접근 권한을 받으며 출시 후 프로 모델을 무료로 쓰지만, 보수를 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케임브리지에서 자동 정리 증명 연구 그룹을 이끄는 점도 언급하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쓰라린 교훈'을 삼켜야 했다고 말한다. 인간이 정리를 증명하는 방식을 이해해 컴퓨터에 이식하려던 그들의 접근과 무관하게, LLM이 그런 통찰 없이도 증명을 해내면서 연구의 주요 동기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두 갈래의 미래
논의의 무게중심은 개인의 이해에서 공동체의 집단적 이해로 옮겨간다. 가워스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대비시킨다. 첫째는 그가 더 현실적이라고 보는 미래로, 사실상 모든 수학자보다 문제를 잘 푸는 모델이 공개되어 오래 궁금해하던 질문들의 답이 쏟아지지만, 그 속도가 공동체의 소화 능력을 크게 앞지르는 상황이다. 대다수 답은 '고맙습니다, 계속해 주세요' 같은 프롬프트만으로 인간의 노력 없이 얻어진다. 둘째는 국제적 합의로 더 강력한 모델의 공개가 차단되고, 대표성 있는 기구가 인간이 오래 씨름하는 편익과 답을 즉시 얻는 편익을 저울질해 요청할 때만 기업 내부 모델이 문제를 푸는 상황이다.
그는 답을 단정하지 않되, 개인의 이해 측면에서 우려되는 지점을 짚는다. 연구 문제를 몇 달, 몇 년씩 붙들며 단련하던 두뇌의 근육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될 가능성이다. 원리적으로는 LLM에 의존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계속 생각할 수 있지만, 내비게이션이 보급되자 대다수가 지도를 읽고 경로를 외우는 능력을 방치하게 된 것처럼, 실제로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애쓰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AI 출력을 읽더라도 결과를 스스로 증명해 보는 '능동적 읽기'를 한다면 문제 풀이 근육이 완전히 위축되지는 않으리라 본다.
한국 IT 실무자에게 이 논의는 순수수학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코드 생성, 문서 작성, 설계 판단까지 AI가 결과물을 저비용으로 쏟아내는 지금, '결과의 양'과 '조직·개인의 이해 수준'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지,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 중요한지를 되묻게 하기 때문이다. 가워스의 글은 명확한 처방 대신 태도의 다양성을 지키자는 신중한 제안에 머문다. 그 신중함 자체가, 생산성 지표만으로 도구 도입을 정당화하기 쉬운 실무 현장에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