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커스터마이즈한다고 하면 보통 키캡을 바꾸거나 스위치를 교체하는 수준을 떠올린다. 그러나 최근 해커뉴스에 공개된 오픈소스 프로젝트 keybytes는 그 전제를 한 단계 더 내려 '키 하나'를 독립된 전자 모듈로 만들었다. 각 키가 자체 마이크로컨트롤러를 품고 있고, 이 키들을 필요한 만큼 이어 붙여 원하는 배열의 키보드를 구성한다는 발상이다. 설계는 전자 CAD 도구인 KiCad로 이뤄졌고, 케이스는 Onshape에서 모델링한 뒤 STEP 파일 형태로 저장소에 포함돼 있다.
두 종류의 보드로 나뉜 구조
keybytes는 크게 두 가지 PCB로 구성된다. 하나는 키 역할을 하는 'Keybit', 다른 하나는 이 키들이 연결되는 본체 'Keyword'다. 두 보드 모두 가로세로 19.05mm, 즉 일반 키보드에서 말하는 1u 크기에 맞춰져 있다. 표준 1u 규격을 지켰다는 점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기존 키캡이나 배열 관습과 물리적으로 호환되는 틀 안에서 모듈화를 시도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Keybit은 Cherry MX 스위치 하나와 CH32V003 마이크로컨트롤러를 담은 단일 키 모듈이다. CH32V003은 저가형 RISC-V 계열 MCU로, 키 하나마다 이런 칩을 넣었다는 것은 각 키가 스스로 입력을 처리하고 통신할 수 있는 작은 연산 단위가 됐다는 의미다. 모듈의 네 변에는 각각 3.3V 전원, 접지(GND), 그리고 I2C 통신을 위한 포고 핀이 배치돼 있다. 덕분에 Keybit은 본체인 Keyword에 직접 붙을 수도 있고, 다른 Keybit 옆에 이어 붙어 전원과 신호를 공유할 수도 있다. 모서리의 패드는 펌웨어를 올리기 위한 프로그래밍 용도로 쓰인다.
본체는 통신과 전원을 2층으로 분리
키들이 꽂히는 본체 Keyword는 두 장의 PCB를 위아래로 쌓은 적층 구조를 택했다. 위쪽 보드에는 무선 기능을 포함한 STM32WB55RGV6 마이크로컨트롤러와 안테나, 그리고 플래시 메모리가 올라간다. 아래쪽 보드에는 USB-C 포트, 충전 회로, 그리고 벅-부스트 컨버터가 자리한다. 통신·연산 영역과 전원·충전 영역을 물리적으로 나눠 쌓은 셈인데, 고주파 무선 회로와 전력 변환 회로를 같은 평면에 두면 간섭과 배선이 까다로워지는 만큼 설계상 합리적인 분할로 읽힌다. STM32WB55가 블루투스 등 무선 스택을 지원하는 칩이라는 점, 그리고 충전기와 벅-부스트 컨버터가 들어갔다는 점을 함께 보면 배터리 기반 무선 동작을 염두에 둔 구성으로 보인다. Keyword 상단에 있는 3개의 포고 핀은 연결된 Keybit들을 프로그래밍하기 위한 통로다.
실무자 관점에서 본 의미와 한계
이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모듈화의 경계를 '키 단위'까지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키마다 MCU를 넣고 I2C로 체인을 구성하면, 배열을 바꾸는 일이 곧 모듈을 다시 배치하는 일이 된다. 하드웨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저가 RISC-V MCU, I2C 버스를 통한 다중 노드 통신, 포고 핀 기반의 비납땜 연결, 무선 MCU와 전원 설계의 분리 같은 요소들을 한 저장소 안에서 동시에 뜯어볼 수 있는 학습 자료이기도 하다. KiCad 설계 파일과 Onshape 케이스 STEP 파일이 함께 공개돼 있어, 회로와 기구를 연동해 살펴보려는 사람에게 참고 가치가 있다.
다만 공개된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범위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저장소 설명은 보드 구성과 핀 배치, 사용 부품 수준의 하드웨어 개요에 집중돼 있을 뿐, 펌웨어의 완성도나 키 스캔 지연, 포고 핀 접점의 내구성과 체결 신뢰성, 다수의 Keybit을 I2C로 연결했을 때의 확장 한계 같은 실사용 지표는 제시돼 있지 않다. 키마다 MCU와 접점을 두는 구조는 부품 수와 조립 난도, 단가 측면의 부담도 함께 키운다. 포고 핀 연결이 타건의 반복 충격과 측면 힘을 얼마나 견디는지는 이런 설계에서 흔히 가장 먼저 시험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결국 keybytes는 완성된 상용 제품이라기보다, '키 하나를 네트워크 노드로 보면 키보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을 하드웨어로 구현해 던진 실험에 가깝다. 표준 1u 규격 위에서 연산·통신·전원을 어떻게 나누고 이을지를 구체적인 부품 선택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직접 키보드나 소형 임베디드 장치를 설계하려는 사람에게는 구조를 참고할 만한 출발점이 된다. 실제 사용성과 신뢰성은 공개된 설계 위에서 직접 만들어 검증해 봐야 확인할 수 있는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