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6분 읽기 28 READS

왕위 계승 한 번의 균열이 잉글랜드를 19년간 폐허로 만들다

왕위 계승 한 번의 균열이 잉글랜드를 19년간 폐허로 만들다
SOURCE IMAGE · HACKER NEWS

기술 조직에서 '다음 리더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미뤄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12세기 잉글랜드의 내전은 극단적인 사례를 남겼다. 1120년 백선(White Ship) 침몰로 유일한 적자를 잃은 헨리 1세는 딸 마틸다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마틸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의 배우자로 독일에 머물렀으나, 1125년 남편이 자식 없이 사망하면서 노르망디를 거쳐 잉글랜드로 돌아와 스스로 왕위 계승자로 나설 수 있었다. 여성을 후계자로 세우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헨리는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마틸다에 대한 충성 서약을 강요했다. 모두가 서약했지만, 그 강도는 제각각이었다.

서약은 왜 지켜지지 않았나

1135년 12월 헨리가 예순 후반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 마틸다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사망 사실조차 최소 2주가 지나서야 알았다. 그사이 사촌인 스티븐(헨리의 누이 아델라의 아들)은 잉글랜드로 달려가 왕실 금고를 장악하고 스스로 왕관을 썼다. 마틸다의 세습권을 지키겠다던 이들에게서 별다른 저항은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전적으로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서화된 합의라도 이해관계와 편견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임신과 자금 부족으로 초기에 손을 쓰지 못했던 마틸다는 1138년 부유하고 강력한 이복 오라비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가 합류하면서 반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녀는 1139년 9월 잉글랜드로 건너갔고,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귀족들은 헨리 1세의 유지를 따르려는 쪽과, 검증된 데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스티븐을 택한 쪽으로 갈렸다. 물론 양측 모두 자기 후보가 승리했을 때 받을 보상을 계산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낀 것은 세금을 내고 소집에 응해야 했던 잉글랜드의 백성이었다.

승리로도 뒤집지 못한 편견

스티븐은 반란을 진압하면서도 과도한 관용으로 오히려 이탈을 부추겼고, 반면 마틸다는 예상보다 끈질기게 세력을 넓혔다. 결정적 순간은 1141년 2월 링컨 전투였다. 스티븐이 패배해 포로가 되자, 그의 친동생인 윈체스터 주교 헨리 오브 블루아까지 편을 바꿔 마틸다를 '잉글랜드의 여주인(Lady of the English)'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군사적 승리조차 여성 군주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넘지 못했다. 적대적 연대기 '게스타 스테파니'는 그녀가 '온화한 성(性)에 어울리는 겸손한 태도 대신 오만한 태도를 취했다'고 비난했다. 같은 저자가 스티븐의 아내 마틸다(불로뉴의 마틸다)에 대해서는 남편을 돕는다는 이유로 '남자다운 결단력을 지닌 여인'이라 칭송했다는 점에서, 잣대의 이중성은 분명하다. 결국 엠프레스 마틸다는 런던에서 쫓겨나 대관식 기회를 잃었다.

'지금'이 아니라 '다음'이 문제였다

왕권이 왕조·혈통에 기반했다는 점은 양측의 자산과 약점을 함께 규정했다. 마틸다의 남편 앙주 백작 조프루아는 노르망디 귀족들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1140년대 중반 노르망디를 정복하며 오히려 스티븐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후계 문제도 핵심 변수였다. 스티븐의 후계자 유스터스는 변덕스럽고 폭력적이라 신망이 낮았던 반면, 마틸다의 장남 헨리는 1147년 열네 살의 나이에 스스로 잉글랜드 침공을 감행할 만큼 대담해 귀족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전쟁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결과와 무관하게 종전을 원했다. 한 연대기 작가는 '어디서 밭을 갈아도 땅이 곡식을 내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잠들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기록했다. 무정부시대 동안 잉글랜드의 세수는 4분의 1이 줄었고, 양측은 정작 자신들이 지배하려는 땅을 함께 황폐화시켰다. 문제는 귀족이 거의 반반으로 갈린 탓에 어느 쪽도 결판을 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이때 논쟁의 축이 '지금 누가 왕이 되는가'에서 '다음에 누가 이을 것인가'로 이동했다. 사람들이 현재로는 스티븐을, 미래로는 헨리를 선호했다는 사실이 실마리가 됐다. 1153년, 지친 스티븐은 19년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자기 아들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데 동의했다.

남는 교훈과 한계

이 사건은 후계 구도의 불확실성이 조직 전체의 비용으로 전가되는 전형이다. 명문화된 합의라도 이해관계자의 진짜 동의가 없으면 지켜지지 않으며, '현재의 결정권자'와 '미래의 계승자'를 분리해 설계하는 순간 교착이 풀리기도 한다. 다만 이 서술의 상당 부분이 '게스타 스테파니'처럼 한쪽에 치우친 연대기에 의존하고 있고, 마틸다에 대한 평가에는 당대의 성별 편견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역사적 인물의 '자질'로 설명되는 대목 상당수는, 실제로는 승부의 흐름을 정당화하려는 사후 해석일 수 있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historytoday.com/archive/feature/succession-cris...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