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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부터 주방 소년까지, 함부르크 시청사를 '읽는' 법

샤를마뉴부터 주방 소년까지, 함부르크 시청사를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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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시청사(Rathaus)는 멀리서 보면 거대한 탑과 청록색 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다. 이 청록색은 원래 색이 아니라 화학 반응의 결과다. 지붕은 구리로 덮여 있는데, 구리가 공기 중의 산소·물·이산화탄소와 수십 년에 걸쳐 반응하면서 '파티나'라는 녹색 막을 만든다. 건설 당시 사람들이 보았던 지붕 색과 지금 우리가 보는 색이 다르다는 뜻이다. 겉모습 하나에도 시간과 과정이 쌓여 있다는 점은, 이 건물 전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힌트이기도 하다.

불로 쓰인 역사와 '다시 일어서리라'

지금의 시청사는 함부르크의 첫 청사가 아니다. 대략 여섯 번째로 추정되며, 그 이전 건물들의 이야기에는 늘 불이 등장한다. 1216년 구시가와 상인 신시가가 합쳐진 뒤 세워진 초기 청사는 1284년 도시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보이고, 1290년경 트로스트브뤼케 옆에 지어진 벽돌 청사는 550년 넘게 서 있었다. 그러나 1842년 5월 5일 밤 대화재가 났고, 이튿날 아침 시민들은 불길을 막으려 800파운드의 화약으로 자신들의 청사를 직접 폭파했다. 그래도 불은 며칠을 더 탔다.

새 청사가 들어서기까지는 55년이 걸렸다. 초석은 옛 청사를 폭파한 날로부터 정확히 44년 뒤인 1886년 5월 6일에 놓였고, 건물은 1897년에 문을 열었다. 정면 폭은 111미터, 탑 높이는 112미터로 거의 같다. 화재의 기억은 건물 정면에 새겨져 있다. 탑 위 시계와 함부르크 문장 사이에는 날개 폭이 2미터가 넘는 불사조가 앉아 있고, 그 아래 금빛 메달에는 옛 청사와 함께 '레수르감(Resurgam·나는 다시 일어서리라)'이라는 글귀가 있다. 1943년 여름 고모라 작전의 공습으로 도심 상당 부분이 파괴됐을 때 이 청사만은 살아남았고, 덕분에 오늘날에도 정면의 세부를 하나하나 읽을 수 있다.

황제 위에 올려놓은 시민

정문 위에는 두 황제가 서 있다. 왼쪽이 샤를마뉴, 오른쪽이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이며, 그 사이 금빛 모자이크 속에서 함부르크를 상징하는 여신 하모니아가 화관을 내민다. 자유를 자랑하는 도시가 황제상을 내건 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함부르크에는 자국의 왕이 없었다. 작센 공작, 홀슈타인 백작, 덴마크 왕이 번갈아 지배를 주장할 때마다 도시는 '우리는 오직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만 복종한다'고 답했다. 기둥에 새겨진 SPQH(원로원과 함부르크 시민)는 고대 로마의 SPQR을 본뜬 것으로, 황제 옆에 서서도 도시는 시민이 운영한다는 선언이다.

바르바로사가 특별히 꼽힌 이유에는 반전이 있다. 그는 1189년 함부르크에 엘베강을 거쳐 북해까지 통행세 없이 항해할 권리를 주었다고 전해지며, 이는 항구의 탄생으로 여겨져 지금도 5월 '항구 생일(Hafengeburtstag)'로 기념된다. 그러나 그 문서는 위조다. 당시 영주 아돌프 3세가 십자군에서 어떤 약속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바르바로사가 원정 중 사망해 증거가 없었고, 수십 년 뒤 함부르크 사람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아 직접 헌장을 쓴 뒤 그의 손자 프리드리히 2세의 인장으로 봉인했다. 역사학자들은 1907년부터 이를 알고 있었지만 도시는 여전히 축제를 연다.

건물의 진짜 주인공은 그 위에 있다. 황제들 위에는 함부르크의 문장과 용기·경건·단결·지혜 네 가지 시민 덕목이 자리하고, 1층 창 28개 위에는 어부·제빵사·판사·은행가 같은 직업의 흉상이 올라 있다. 즉 제국의 통치자보다 도시를 굴러가게 한 사람들이 더 높은 곳에 놓였다. 조각가 알로이스 데노트가 만든 28개 흉상 중 절반은 실존 인물을 본떴고, 나머지는 어부·재단사·정육점 주인·굴뚝 청소부 같은 일상의 생업을 담았다. 제빵사는 케이크를, 정육점 주인은 돼지 머리를, 판사는 법전을 들고 있을 만큼 세밀하지만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아 4배 줌 카메라가 필요하다.

세부에 새겨진 도시의 네트워크

흉상 아래 작은 박공마다 붙은 문장들은 한자 동맹 도시와 교역 파트너를 가리킨다. 13~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트해까지 약 200개 도시를 묶었던 한자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함부르크의 공식 명칭은 '자유 한자 도시 함부르크'이고, 차량 번호판이 HH로 시작하는 것도 '한자 도시 함부르크'의 약자다. 정면 좌우에 유독 큰 뤼베크와 브레멘의 문장이 각각 의회 의장과 시장의 흉상 아래 놓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동맹이 쇠퇴한 뒤에도 그 이름을 지킨 마지막 세 도시가 뤼베크·브레멘·함부르크이기 때문이다. 다만 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는 정식 회원이 아닌 교역 상대였고, 피렌체처럼 확실하지 않은 문장도 섞여 있다.

발코니 아래에는 1919년까지 종신제 원로원을 구성했던 부유한 29개 가문의 문장이 돌에 새겨져 있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낯익은데, 많은 가문의 이름이 지금도 거리와 공원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붕 박공 꼭대기에는 아홉 성인이 서 있어, 라트하우스마르크트를 향한 두 모서리를 미카엘 성인과 카타리나 성인이 지킨다. 이들은 건물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형상이라 8배 줌에서야 얼굴과 지물이 드러난다. 결국 이 청사는 크기나 탑보다, 백여 개가 넘는 작은 디테일을 하나씩 '읽어 나갈 때' 도시의 역사서로 바뀐다는 점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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