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삑' 소리를 내던 바코드가 반세기 만에 교체 수순에 들어갔다. 세계 최초의 바코드는 1974년 미국 오하이오주 트로이의 한 식료품점에서 리글리 쥬시프루트 껌에 찍혀 처음 스캔됐다. 당시 소매업체와 제조사가 구성한 위원회가 UPC(Universal Product Code)를 단일 표준으로 채택하면서, 일종의 네트워크 효과가 작동했다. 소매점이 UPC를 요구하자 제조사가 따랐고, 제조사가 포장에 코드를 인쇄하자 소매점은 스캐너를 들여야 했다. 이 구조는 1980년 무렵 임계점을 넘어 자기강화적 독점으로 굳어졌다. 바코드 앞 여섯 자리인 '회사 식별 코드'를 발급할 권한은 현재 GS1으로 불리는 기구가 쥐고 있으며, 대안 등록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GS1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화된 연간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다. 바코드는 지난 50년간 10억 개 이상의 제품에 붙어 하루에도 수십억 번 스캔되는 유통의 기둥이었다.
고(Go) 판에서 태어난 2차원 코드
QR코드의 출발점은 전혀 다른 현장이었다. 1992년 일본 도요타 계열 자동차 부품사 덴소의 공장에서는 작업자들이 바코드에 파묻혀 있었다. 일부 부품은 추적 데이터를 모두 담으려면 바코드 열 개가 필요했고, 직원들은 이를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하나하나 스캔했다. 바코드팀 엔지니어 마사히로 하라는 1차원이 아닌 2차원으로 코드를 만들면 정보 밀도를 높여 한 품목당 스캔 횟수를 열 번에서 한 번으로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내 식당에서 흑백 돌로 바둑을 두는 동료들을 보며 설계 영감을 얻었다. 그렇게 1년 반의 작업 끝에 나온 QR코드는 어느 각도에서도 읽히고, 오늘날 상품에 붙은 바코드보다 200배 많은 데이터를 담는다. 덴소는 이를 특허로 등록했지만 로열티를 받는 대신 규격을 공개해 누구나 무료로 쓰도록 했고, 그 결정이 지금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다.
'Sunrise 2027'과 전환의 배경
GS1은 2년 전 바코드 시대의 종료를 공식화하며 'Sunrise 2027'로 불리는 전환을 예고했다. 방아쇠는 규제였다. 2020~2021년 양파 리콜, 2022년 땅콩버터 오염 사태 등 식품 리콜이 급증했지만, 기존 바코드는 '어떤 종류의 제품인가'만 알려줄 뿐 '어디서 왔는가'는 말해주지 못한다. 2022년 말 미국 FDA가 식품 공급망 전반에 더 상세한 추적 정보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면서, 더 나은 코드에 대한 수요가 분명해졌다. 베스트셀러 'The Science of Shopping'의 저자이자 사업 전략가인 케이트 하드캐슬은 바코드를 두고 "계산대에 무슨 제품이고 얼마인지를 알려주지만, 대화는 거기서 끝난다"고 말한다. 반면 QR 같은 2차원 코드는 하나의 코드로 계산대와 재고 창고, 그리고 고객에게까지 같은 정보를 연결한다. GS1과 함께 조사를 수행하는 하드캐슬은 설문에 참여한 소매업체의 거의 절반이 이미 QR 도입을 시작했다며 "이건 더 이상 미래형 실험이 아니라 쇼핑의 인프라가 다시 쓰이는 중"이라고 말한다.
실무 부담은 결국 브랜드와 포장 설계 쪽으로 쏠린다. 포장 전략 기업 Power in Packaging의 창업자 니콜 라이트는 매니큐어 병처럼 좁은 면적에 규제 문구까지 욱여넣는 일이 "가장 큰 싸움"이라고 토로한다. 전환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지난해 유니레버는 도브, 바셀린, 헬만스 등 4만5,000개 SKU에 걸친 대대적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라이트는 포장을 "속옷 갈아입듯" 자주 바꾸는 대형 브랜드는 시스템과 예산으로 버틸 수 있지만, 수십 년간 같은 상자를 써 온 기업들이 오히려 큰 변화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진짜 과제는 '네모 칸'이 아니라 데이터
GS1의 전환은 정부가 강제하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월마트, 코스트코, 타깃 같은 대형 소매업체가 새 스캐너와 추적 데이터베이스로 갈아타면 브랜드는 매대에서 밀려날 위험을 떠안는다. 하드캐슬은 "상자에 새로운 네모 칸을 찍는 건 쉬운 부분"이라며, 새 코드는 하나의 링크이고 링크에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링크가 가리키는 정보가 정확하고 최신 상태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진짜 과제다. 전환기 동안 GS1은 소매 현장이 따라올 때까지 두 코드를 50mm 이내에 함께 싣도록 요구하고 있어, 포장 디자이너에게는 또 다른 딜레마가 된다. 하드캐슬은 소매점이 요구할 때까지 미루는 브랜드는 "막대한 데이터 문제를 떠안고도 해결할 시간이 거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지만 결이 다르다. GS1과의 조사에서 소비자의 79%가 QR코드를 선호했지만, 그렇다고 장바구니 속 모든 상품을 일일이 스캔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드캐슬에 따르면 사람들은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이를테면 바쁜 부모를 위한 간단한 저녁 레시피나 원산지 정보를 원할 뿐이다.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맞는 정보를 원한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전환 방식을 둘러싼 질문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고 본다. 디자이너가 QR코드마다 링크와 랜딩 페이지가 작동하는지 일일이 스캔하는 품질 관리를 맡게 될지, 재고 추적을 위해 코드마다 고유 번호가 부여될지 등은 아직 미지수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돈이 드는 변화는 더 싫어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무도 이 얘기를 하지 않는다. 운석이 지구로 떨어지는데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