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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종말'이라는 착시: 문해력 위기론이 놓친 세 가지

'읽기의 종말'이라는 착시: 문해력 위기론이 놓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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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이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섰다. 로즈 호로위치가 쓴 디 애틀랜틱 표지 기사 '읽기의 종말이 왔다(The End of Reading Is Here)'가 그 방아쇠였다. 2024년에는 명문대 학부생이 소설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한다는 걱정이었다면, 이번 기사는 규모를 훨씬 키웠다. 연령·성별·학력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가장 책을 많이 읽던 은퇴자와 여성, 대졸자에게서까지 독서가 무너지고 있으며 인류가 문자 이전의 암흑기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폐허로 시작해 '탈문해 시대에 문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묻는 이 서사는, 문해력을 오래 연구하고 가르쳐 온 저자(문해력·영어교육 연구자)가 보기에는 전형적인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저자의 핵심 반박은 이 담론이 '범주 오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현상—초등 저학년의 해독(decoding) 유창성 문제, 고교생이 독서 과제를 끝내지 못하는 문제, 대학생의 고전 독해력, 은퇴자의 여가 독서 습관—을 '독서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종말 서사로 뭉뚱그린다는 지적이다. 제프리 로런스가 짚었듯, 이런 쇠퇴 서사는 영어권의 (추정된) 경향을 '기술 변화'라는 거대 담론으로 보편화하면서, 실제로 문해력에 영향을 주는 지역적·정치적·교육적·물질적 조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문해력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대다수가 문해력을 '글을 읽고 쓰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틀린 정의는 아니지만 매우 협소하며, 문해력을 개인이 문자를 해독·생산하는 인지 기술의 집합으로 보는 인지주의적 관점에 기대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인지심리학·사회언어학·인류학의 연구들이 이 전제를 흔들었다. 서로 다른 분야였지만 이들은 문해력이 그것이 일어나는 담화적·문화적·언어적 맥락과 얽혀 있다는 결론으로 수렴했다. 우리는 텍스트를 해독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라, 특정한 지리적 장소와 디지털 공간에 자리한 공동체 속의 존재이며, 그 맥락이 어떤 의미를 어떻게 만들고 그것이 남에게 읽히는지를 규정한다. 기본적인 해독, 소셜 미디어 탐색, 정독(close reading), 영상 에세이 제작, 학술 글쓰기는 각기 다른 지식과 관습, 목적을 동원한다.

문제는 이 풍부함을 단일 고부담 시험으로 담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오늘날 한 19세 시민이 정보에 입각해 정치에 참여하려면 짧은 영상 분석을 교차 확인하고, 하이퍼링크된 1차 자료를 파싱하고, 알고리즘 피드의 신뢰도와 수사적 태도를 평가하고, 댓글창의 합의를 저울질해야 한다. 청중·저의·편향·플랫폼 구조를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이 다중양식적 종합은 고도의 비판적 문해력이지만, 고립된 산문 지문에 대한 응답을 평가하는 표준화 시험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데이비드 월러스-웰스의 반론처럼, 학생들의 독서 습관 데이터는 흔히 말하는 만큼 깔끔하게 쇠퇴 서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시험이나 11학년 과제와 겹치지 않는 다른 텍스트를 읽고 있을 뿐이다.

점수는 정치다

측정의 문제는 특히 NAEP 점수 해석에서 두드러진다. P.L. 토머스는 NAEP의 '숙달(Proficient)' 기준이 학년 수준으로 오독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NAEP 스스로는 이를 학년 기대치와 구분해 '도전적 주제에 대한 견실한 학업 수행'으로 정의하는데도, '4학년의 33%만이 숙달'이라는 데이터가 대중에게는 '미국 어린이의 67%가 문맹'으로 들린다. 열망 수준의 벤치마크가 기초 문해력의 지표로 둔갑하고, 얇고 잘못 이해된 데이터가 위기 언어와 징벌적 개혁을 정당화하는 연료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읽기의 과학(science of reading)' 전환에서도 반복된다. 파닉스가 중요하다는 사실 자체는 옳지만, 그 반작용의 채찍질이 지나쳐 이 운동에 영감을 준 마크 사이덴버그 같은 학자조차 현장에 강요되는 일부 정책을 비판할 정도다. 레이철 가브리엘의 지적대로, 담론은 기초 읽기 지도와 교육과정, 벤더 주도 개혁을 '브랜드화된 프로그램 하나가 모든 문제를 푼다'는 식의 단일 해법 이야기로 묶어 버린다. 이는 지대 추구형 에듀테크 기업에게 좋은 시장 기회가 되고, 정치·제도의 실패를 순전한 교수법 문제로 둔갑시킨다.

실무자 관점에서 이 글이 던지는 함의는 지표 설계에 관한 것이다. 복잡하고 맥락 의존적인 역량을 하나의 점수로 환원할 때, 우리는 측정하기 쉬운 것을 측정하고 그것을 곧 실력으로 착각한다. 개발자 생산성, 사용자 참여도, AI 모델 벤치마크 등 단일 스코어에 기대는 모든 영역이 같은 함정을 공유한다. 벤치마크의 정의가 무엇을 포착하고 무엇을 비가시화하는지, 누가 그 기준을 정하는지를 묻지 않으면, 제도적 실패가 개인의 결함으로 전가되고 그 틈을 '만능 해법'을 파는 벤더가 채운다.

동시에 저자는 디지털·분산형 문해력으로의 이행을 마냥 예찬하지도 않는다. 오늘날 소통 방식을 좌우하는 것은 공공 인프라가 아니라 소수 기술 기업이 설계한 사유화된 플랫폼이며, 이들의 블랙박스 알고리즘은 이윤과 데이터를 추출하도록 만들어졌다. 요컨대 문해력은 늘 기술과 함께 진화해 왔고, 지금의 차이는 우리의 정보 생태계가 기존의 정의와 평가 모델을 이미 넘어섰다는 데 있다. 인지주의적 정의에 매달리면 문제를 오진하게 된다. 학생 개개인의 해독 능력을 탓하는 대신, 교육적 상상력과 교육과정 설계, 정책, 정치적 의지의 결핍이라는 훨씬 복잡한 실패를 직시하라는 것이 이 글의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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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trevoraleo.substack.com/p/three-theses-on-the-li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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