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개발자 일자리를 흔든다는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그런데 클라우드플레어의 Zaraz 팀에서 일하는 한 개발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은 창끝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 진짜로 긴장해야 할 직군은 오히려 프로덕트 매니저(PM)라는 주장이다. 데이터 마케팅 제품을 4년간 개발하다 클라우드플레어로 옮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쓴이는 '기술 담당'과 '제품 담당'이 나뉘어 있던 세계가 하나의 기능으로 녹아드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 글은 데이터나 통계가 아니라 한 실무자의 관점을 담은 의견이지만, 한국 IT 현장에서도 되새길 만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가의 해자(moat)가 무너졌듯이
글쓴이는 생성형 AI의 충격을 인스타그램이 전문 사진가에게 준 충격에 비유한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10대들이 등장하면서 전문 사진가의 약 90%는 자신을 지켜주던 진입장벽을 잃었다는 것이다. 반면 남은 10%는 복제할 수 없는 재능 덕분에 오히려 더 큰 가치를 누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구도가 지금 개발자에게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자신처럼 평범한 개발자는 AI로 무장한 '10배 개발자'를 이기기 어렵고, 그 10배 개발자조차 결국 더 강력한 AI 에이전트에게, 다시 그 에이전트 무리에게 밀려날 수 있다는 식의 연쇄를 반농담처럼 덧붙인다. 핵심은 평균적인 숙련도만으로 지켜지던 자리가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이다.
'PM이 기능을 프롬프트로 만든다'는 역설
PM이 위태롭다는 논리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이제 누구나 프롬프트로 기능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개발자도 직접 기능을 프롬프트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기능이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제품 감각이 PM만의 전유물인지 되묻게 된다. 글쓴이의 답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코드가 싸졌기 때문에, 기능을 직접 짜는 사람이 남는 시간을 고객의 고통 지점과 회사가 내놓는 해법을 이해하는 데 투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사용법이 아니라 설계상의 트레이드오프, 10년 전의 가정과 오늘의 가정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같은 맥락까지 포함한다. 즉 한 사람이 코드를 짜면서 동시에 제품 직관까지 쌓게 되고, 그 과정에서 두 역할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진단이다.
마지막 보루로서의 아키텍처
그렇다고 모든 직무가 평준화되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아키텍트를 자동화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꼽는다. 모델의 정확도가 아무리 높아져도, 보안과 컴플라이언스, 기술적 제약, 예산 같은 여러 조건 안에서 실제로 쓸모 있는 해법을 만들어내는 일은 비공개 데이터와 사람 간의 회의, 그리고 쉽게 복제되지 않는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키텍처 역량을 '인간 지능의 마지막 보루 중 하나'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연차와 무관하게 제품 담당자가 스스로를 지키려면 이 아키텍처적 사고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에 가깝다.
한국 IT 조직에 이 글이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기획과 개발을 칸막이로 나눠온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 코드 생산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는 환경에서 재편 압력을 받는다는 점이다. PM이라면 '기능 정의'와 '화면 명세'에 머무르지 않고, 왜 그 기능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맥락과 제약 조건을 다루는 설계 감각으로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반대로 개발자에게는 제품 직관을 함께 키우는 것이 방어막이자 기회가 된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한 개발자의 전망이라는 한계를 분명히 안고 있다. 직무 소멸의 규모나 속도를 뒷받침하는 수치는 제시되지 않으며, 사진 산업의 비유 역시 소프트웨어 조직의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글쓴이 스스로도 지금의 생성형 AI 활용 방식이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으며, 자기 직업의 일부가, 나아가 전체가 사라질까 두렵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가 PM들에게 건네는 조언은 거창하지 않다. 텍스트 파일 하나를 14줄짜리 코드로 분석할 수 있는 언어를 다룰 줄 아는 것처럼, 앞으로도 통할 실용적 기술을 지금부터 다져두라는 것이다. 판단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