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농기계 제조사 존 디어(John Deere)가 장비 소유주 스스로 수리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구독형 소프트웨어를 내놓았지만, 정작 이를 쓰는 사람은 극소수다. WIRED 기자가 직접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존 디어 사무실을 찾아 이 서비스를 체험하고, 실제 농부와 수리권 운동가들의 반응을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회사가 내세우는 '소유주 친화적'이라는 주장과 현장의 온도차가 상당하다.
기자가 체험한 수리는 이른바 '워터-인-퓨얼(water-in-fuel) 센서' 문제였다. 디젤 엔진에 물이 섞였는지 감시하는 이 작은 센서의 배선 두 가닥이 분리돼 있었고, 화면에는 붉은 경고가 떴다. 노트북을 트랙터(5130ML 모델)에 케이블로 연결하고 소프트웨어에 질문을 입력하자, 일련번호에 맞는 매뉴얼 설명과 부품 이미지가 떴다. 기자는 화면 속 모델을 보고 실제 센서를 찾아 늘어진 두 배선을 딸깍 소리가 나게 이어 붙였고, 몇 분 만에 경고가 사라졌다. 기술자도 농부도 아닌 사람이 혼자 해낸 것이다. 다만 이는 누가 봐도 원인이 뻔한, 가장 쉬운 축에 속하는 고장이었다.
고도화된 농기계와 수리권 갈등
이 체험의 배경에는 지난 10여 년간 격화된 '수리할 권리(right-to-repair)' 논쟁이 있다. 최근 농기계는 컨트롤러와 무선 모듈, 각종 센서로 무장했고, 4G 통신으로 위치·상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사람 없이 정해진 경로를 자율 주행하는 모델까지 등장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 재미 힌드먼은 대형 트랙터의 경우 컨트롤러가 50개를 넘기도 해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고도화된 시스템에 디지털 잠금장치가 걸려 있어, 부품을 손보거나 비순정 부품으로 교체하려면 딜러가 승인한 공식 접근 권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잠금은 여러 소송과 연방 차원의 제재로 이어졌다. 존 디어는 올해 4월 과도한 수리비를 배상하는 9,900만 달러 규모의 합의에 동의했고, 7월에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제기한 별도 소송에서 제품의 수리 편의성을 높이도록 하는 합의를 받아들였다. 회사는 두 건 모두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으며, 두 합의는 판사의 최종 판결 전까지는 확정된 것이 아니다. 수리권 옹호 측은 이 조치들이 금액으로도, 실제 행태를 바꿀 강제력으로도 불충분하다고 본다.
'프로 서비스'의 실체와 낮은 이용률
존 디어가 2025년 선보인 '오퍼레이션스 센터 프로 서비스(Operations Center Pro Service)'는 개별 장비 기준 연 195달러부터 시작한다. 대규모 농장이나 독립 수리점이 전체 장비군에 접근하려면 연 4,995달러, 농업·잔디 관리 장비 접근은 연 5,995달러다. Wi-Fi나 케이블로 장비를 연결하면 일련번호를 바탕으로 매뉴얼과 데이터 서비스를 끌어와 진단을 돕고, 필요한 부품은 자사 쇼핑몰 링크로 안내한다. 일부 기능은 오프라인에서도 쓸 수 있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력 관리도 가능하다. 회사는 최근 'JD'라는 AI 챗봇도 붙였지만 기자는 이번 방문에서 사용해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정작 이 서비스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출시 1년이 지난 시점에 하루 이용자는 약 1,000명 수준으로, 미국 내 약 180만 개 농장에 견주면 미미하다. 마케팅 담당자 켈리 설리번은 소유주가 자신의 데이터를 완전히 통제하며 공유 여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회사가 겪는 진짜 어려움은 서비스의 존재를 알리고 사용을 유도하는 일이라고 인정했다. 기자가 초청된 이유도 바로 이 '홍보' 때문이었다.
농부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미주리에서 3,000에이커의 옥수수·대두 농사를 짓는 농부 재러드 윌슨은 프로 서비스를 쓰지 않고, 쓰는 지인도 없다고 말한다. 주변 농부들은 존 디어에 돈을 내느니 회색시장에서 구한 크랙 버전을 쓴다는 것이다. 9,900만 달러 소송의 원고이기도 한 그는 이 서비스가 단순한 고장에만 잘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진단 코드가 서너 개 동시에 뜨는 복합 고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딜러용 소프트웨어와 고객용 소프트웨어가 정말 동일한지 비교·검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우려한다. 이에 대해 힌드먼은 두 버전이 모두 같다고 반박한다.
또 하나의 쟁점은 존 디어가 기계 결함을 식별·공지하는 방식인 PIP(제품 개선 계획)다. PIP는 시스템이 개선 필요성을 감지하고 정보를 모은 뒤에야 발송되기 때문에, 매뉴얼에 없는 새로운 고장을 만난 소유주는 회사가 문제를 확인하고 PIP를 낼 때까지 정작 필요한 정보를 손에 쥐지 못한다. 윌슨은 가장 까다로운 문제를 풀 수 있는 '다음 단계'의 접근 권한을 여전히 회사가 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리권 단체 Repair.org 이사 윌리 케이드는 한발 더 나아가 존 디어의 진짜 고객은 농부가 아니라 월가라고 비판한다.
실무적 함의
힌드먼은 이런 압박을 개의치 않는다며 고객에게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려는 의도는 진심이고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농기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컨트롤러 수십 개와 통신 모듈, 클라우드 데이터에 의존하는 장비일수록 제조사의 소프트웨어 잠금이 곧 수리 통제권이 된다는 점은, 한국의 산업 장비·차량·의료기기 운영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구조적 문제다. 유료 셀프 수리 도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수리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진단 트리의 깊은 단계, 딜러용과의 기능 동등성, 결함 정보의 적시 공개 같은 세부 조건이 실제 사용 가능성을 좌우한다. 도입을 검토하는 조직이라면 접근 권한의 범위와 데이터 소유·공유 정책을 구독 전에 계약 수준에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례의 실무적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