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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가 '여성용'이던 시절, 표준과 인프라가 남긴 교훈

전기차가 '여성용'이던 시절, 표준과 인프라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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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기차가 미래 기술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자동차가 아직 신문물이던 20세기 초에는 전기가 증기·내연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던 여러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의 앨리슨 마시 교수가 IEEE 스펙트럼에 기고한 기술사 칼럼은 초기 전기차가 어떻게 '여성을 위한 차'로 자리매김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충전 기술과 표준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되짚는다.

당시 자동차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1898년 약 50곳이던 미국 자동차 제조사는 10년 만에 다섯 배로 늘었고, 1901년 7,000대였던 생산량은 1910년 18만 1,000대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떤 동력 방식이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증기는 기관차에서 축적된 기술적 유산이 있었지만 화재 위험과 보일러·배관의 발열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솔린과 전기는 공통적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라는 숙제를 떠안았다. 가솔린차는 여분의 연료통을 싣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배터리 충전은 사전 계획이 필요했고 장거리 주행을 뒷받침할 인프라는 아직 없었다.

전기차가 여성용으로 묶인 이유

1911년 전기식 시동장치가 나오기 전까지 가솔린 엔진은 손으로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걸어야 했고, 일단 작동하면 시끄럽고 매연을 내뿜었다. 반면 전기차는 주로 열쇠로 배터리 스위치만 켜면 조용히 출발했고 배기가스도 없었다. 제조사들은 이 특성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았는데, 그 결론이 '여성에게 완벽한 차'라는 마케팅이었다. 한밤중 왕진을 다니는 의사에게도 이웃을 깨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렸다. 수은 아크 정류기 기반 충전기를 만들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이 차를 충전하는 광고 시리즈까지 제작했다. 조용하고 깨끗하며 다루기 쉽다는 '장점'이, 당시의 성 역할 관념과 맞물려 특정 소비자군에 한정된 틈새 상품으로 좁혀진 셈이다.

이 흐름을 보여주는 인물이 보스턴 인근에 살던 패니 굿나우다. 그는 1908년형 베일리 빅토리아 페이튼이라는 2인승 오픈카를 소유하고, GE의 수은 아크 정류기로 충전했다. 이 정류기는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다이오드 역할을 했다. 유리관 속 소량의 액체 수은이 전류가 흐르면 기화해 빛을 내고, 탄소 양극과 결합해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했다. 방전된 배터리를 완충하는 데는 약 12시간이 걸렸다. 수은 아크 정류기는 전기공학자 피터 쿠퍼 휴잇이 발명한 수은 증기 램프에서 비롯됐으며, 쿠퍼 휴잇 전기회사의 수석 전기기사였던 퍼시 H. 토머스가 특허로 그 설계를 발전시켰다.

표준 없는 초기 시장의 혼란

빅토리아 페이튼을 만든 S.R. 베일리는 원래 마차·썰매 제조사였다. 창업자 새뮤얼 로빈슨 베일리는 1855년 마차 전시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자동차가 마차 사업을 잠식하자 1906년 전기차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첫 모델에는 에디슨의 알칼리 배터리를 썼지만, 이 배터리는 누액이 생기고 충전을 유지하지 못해 결국 에디슨이 재설계에 들어갔다. 베일리는 굿나우의 차에 뉴욕 디포의 굴드사 30셀 납축전지를 대신 탑재했다. 표준 배터리의 주행거리는 64~80km, 50% 용량을 더한 배터리는 추가 비용이 들었다. 표준형 기준 차값은 2,000달러로, 오늘날 약 7만 3,000달러, 즉 고급 전기차 한 대 값에 해당했다.

굿나우는 부모의 여름 별장 옆 헛간에 충전소를 설치했는데, 충전 플러그가 독특한 규격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비표준 플러그와 케이블은 초기 전기차 소유자의 공통된 골칫거리였다. 1910년 결성된 미국 전기차협회는 어느 충전소에서나 충전할 수 있도록 표준을 제시하려 했지만, 당시 노련한 운전자들은 여행 때 여분의 어댑터와 케이블을 챙겨야 했다. 호환되지 않는 충전 규격과 미비한 인프라, 그리고 믿을 만한 배터리의 부재라는 삼중고는 오늘날의 전기차 전환 논의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결국 베일리는 밀려오는 포드 모델 T의 물결을 이겨내지 못하고 1915년 공장을 매각했다. 생산한 전기차는 500~600대에 그쳤다. 흥미롭게도 자사 배터리를 홍보하며 베일리 차와 함께 사진을 찍은 에디슨조차 자신은 디트로이트 일렉트릭 빅토리아를 탔다. 에디슨이 개선된 배터리를 내놓은 1910년 무렵 이미 그의 친구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출시해 내연기관이 시장을 장악할 무대를 깔아둔 뒤였다.

이 이야기가 한국의 IT 실무자에게 주는 함의는 단순한 복고 감성이 아니다. 기술의 우위가 반드시 시장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조용함·청결함 같은 제품 자체의 장점보다 표준 생태계와 인프라, 핵심 부품(여기서는 배터리)의 신뢰성이 채택의 운명을 가른다는 점이다. 호환되지 않는 규격이 초기 사용자에게 전가하는 비용, 그리고 '여성용'이라는 식의 좁은 포지셔닝이 시장 확장을 스스로 제한할 수 있다는 교훈도 유효하다. 굿나우의 차는 사라졌지만 그의 충전소는 2022년 매사추세츠의 한 박물관에 기증돼 기술 전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승패를 가르는 것은 종종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둘러싼 표준과 기반 기술이라는 사실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spectrum.ieee.org/early-electric-veh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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