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북미, 호주,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친 다섯 대륙의 전력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수수께끼 같은 신호가 그 정체를 드러냈다.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된 연구는 세계 여러 전력계통의 주파수 시계열을 분석한 결과, 주기가 '정확히 1분'인 진동 패턴이 꾸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패턴은 유럽 대륙계통(고객 4억 명 이상)이나 북미, 호주처럼 거대한 계통에서 특히 두드러졌지만,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중소 규모 계통과 마요르카·아일랜드·아이슬란드(고객 약 40만 명) 같은 섬 계통에서도 뚜렷하게 관측됐다. 연구진은 이 현상의 근원을 무정전전원장치(UPS)와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처럼 디지털 제어되는 기기의 '시계 동기화된 제어 소프트웨어'로 지목했다.
왜 주파수가 문제인가
전력계통에서 주파수는 발전과 수요의 균형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발전이 수요를 넘으면 주파수가 오르고,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 내려간다. 따라서 50Hz 또는 60Hz라는 정격 주파수를 유지하려면 부하-주파수 제어 시스템이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대형 사고 시에는 큰 폭의 주파수 이탈이 계통 안정성을 위협하지만, 평상시에도 확률적 변동과 결정론적 메커니즘에 의해 작지만 반복적인 편차가 계속 발생한다.
연구진은 SciPy의 고속 푸리에 변환(FFT)으로 각 계통의 주파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60분과 15분 주기에서 뚜렷한 봉우리가 나타났는데, 이는 전력 거래가 시간 단위(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15분 단위) 블록으로 이뤄지면서 발전량이 거래 구간 경계에서 계단식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생기는 '결정론적 주파수 편차'다. 수요는 연속적으로 변하는데 발전은 단계적으로 바뀌니 매 정각마다 불균형이 반복되는 식이다. 이와 별개로 수초 주기의 지역 간 진동, 데이터센터 부하에 따른 변동 등도 관측됐다.
1분 봉우리가 특별한 이유
여러 알려진 패턴 가운데 1분 지점의 봉우리는 유독 스펙트럼 폭이 좁았다. 이렇게 폭이 좁다는 것은 매우 정밀하게 시간이 맞춰져 있고 수년에 걸쳐 위상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과정이 있음을 뜻한다. 과거에도 1분 안팎의 진동이 수력 터빈 조속기 계통의 공진 현상, 이른바 초저주파진동(ULFO)으로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외부 타이밍 신호 없이 발생하는 고전적 공진으로는, 서로 다른 계통에서 재현성 있게 나타나고 긴 시간 동안 위상이 일치하는 이 패턴을 설명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를 물리 기기와 디지털 제어가 깊이 얽힌 '사이버-물리' 동기화 효과로 해석한다. 외부 시계 신호나 주기적 소프트웨어 루틴에 맞춰 수많은 기기가 동시에 같은 동작을 수행하면서 주기적인 전력 수요 피크를 만들고, 이 신호가 여러 전압 등급을 거쳐 송전 접점까지 전파된다는 것이다. 실제 파형을 보면 주파수는 매 분이 시작될 때 가장 높고, 이후 밤에는 수초, 낮에는 최대 30초가량에 걸쳐 떨어지는 형태를 보인다.
패턴의 세기에는 사람의 활동 리듬이 반영돼 있다. 진폭은 밤에 약하고 낮에 강해지는 하루 주기 변동을 보이며, 주말에는 아침에 세지는 시점이 평일보다 늦어진다. 2015~2025년 유럽 3대 계통을 추적한 결과에서는 크리스마스·연초를 제외하면 겨울보다 여름에 진폭이 큰 계절성도 드러났다. 반면 파형의 모양 자체는 계통별로 다르더라도 시간에 따라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실무가 주목해야 할 지점
이 발견이 단순한 호기심 거리가 아닌 이유는 진폭이 여러 계통에서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코히런트한 1분 진동은 수력 터빈의 마모와 피로를 가중시키는 것으로 지목됐고, 이는 더 엄격한 부하-주파수 제어 요건을 요구하는 배경이 됐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향후 전망이다. 배터리 저장장치와 데이터센터, 사물인터넷(IoT) 기기가 빠르게 늘면서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부하가 급증하고 있고,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대로 계통 관성이 줄어들면서 계통은 코히런트한 전력 불균형에 더 민감해지고 있다. 즉 같은 메커니즘이 앞으로 더 큰 진동으로 증폭될 소지가 있다.
이 연구의 메시지는 결국 설계의 문제로 귀결된다. 악의적 공격이나 명백한 오류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기기가 평범한 제어 루틴을 '같은 시각에' 수행하는 것만으로 계통 전체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사이버-물리 진동이 발생 원인 지점, 즉 기기의 제어 설계 단계에서 직접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1분 패턴과 함께 관측된 약 100초 주기의 봉우리는 아직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고, 계통별 파형 차이의 세부 원인도 추가 과제로 남아 있다. UPS와 배터리 기반 설비를 운용하거나 제어 펌웨어를 설계하는 국내 실무자라면, 타이밍 동기화가 가져오는 집단적 효과를 개별 기기 성능과 별개의 변수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