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게임을 인공지능이 스스로 플레이하도록 두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실험이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Jev'는 초대 포켓몬 게임인 포켓몬 레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실시간으로 플레이하는 AI 의사결정 모델이다. 제작진은 이를 하나의 웹페이지에 스트리밍 형태로 올려두었고, 방문자는 게임 화면과 함께 AI가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나란히 볼 수 있다. 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음소거 상태로 시작하며, 게임 사운드를 들으려면 사용자가 직접 음소거를 해제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화면 오른쪽에 배치된 패널이다. 여기에는 Jev가 내리는 모든 결정과 함께 각 선택에 대한 '확률(odds)'이 표시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캐릭터가 움직이는 결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동과 판단의 근거가 되는 내부 확신도를 함께 노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완성된 결과물만 보여주는 대다수의 AI 데모와 달리,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관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접근 방식이 다르다.
AI가 게임을 푸는 것이 왜 하나의 지표가 되었나
포켓몬 같은 롤플레잉 게임은 AI에게 만만치 않은 과제다. 체스나 바둑처럼 규칙이 닫혀 있고 목표가 명확한 게임과 달리, 이런 게임은 넓은 맵을 탐색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여러 단계로 쪼개고, 눈앞의 전투와 먼 목적지를 동시에 저울질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개방형 환경에서 길게 이어지는 목표를 놓치지 않고 완주하는 일은, 짧은 문답을 잘 처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사이 '오래된 게임을 AI가 끝까지 깨는' 시연이 모델의 계획 능력과 지속성을 보여주는 비공식 지표처럼 소비되어 왔다.
Jev의 실시간 방식은 이 맥락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미리 녹화된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진행 중인 플레이를 그대로 보여주면, 막다른 길에서 헤매거나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실수까지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확률을 함께 노출하는 구성은 관전자가 'AI가 지금 이 선택을 얼마나 확신하는가'를 직접 확인하게 만들어, 성공 장면뿐 아니라 망설임의 순간까지 투명하게 드러낸다.
사실은 제품 온보딩을 위한 비유
다만 이 프로젝트를 순수한 기술 실험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페이지에는 게임 속 오박사의 입을 빌린 문구가 등장하는데, 'Jev가 다음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안내서(guide)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곧바로 '당신의 사용자에게도 안내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이어지며, Frigade라는 AI 어시스턴트를 소개한다. 설명에 따르면 Frigade는 제품을 스스로 학습해 각 사용자에게 앱 안에서 다음 단계를 안내해 주는 도구다.
즉 이 데모의 실질적 목적은 소프트웨어 온보딩과 사용자 안내라는 문제를 AI가 게임을 공략하는 장면에 빗대어 보여주는 것이다. 낯선 맵에서 다음 목적지를 찾아야 하는 AI의 처지를, 처음 앱을 켜고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헤매는 신규 사용자의 처지와 겹쳐 놓은 셈이다. 제품 안에서 사용자가 이탈하는 지점이 대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 완주라는 비유는 온보딩 문제의 본질을 꽤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실무자가 읽을 지점과 한계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실무자 입장에서 건질 만한 시사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결정의 투명성'이다. AI가 무언가를 자동으로 처리해 줄 때, 결과만 던지기보다 어떤 근거와 확신도로 그 결정을 내렸는지 함께 보여주는 편이 사용자 신뢰를 얻는 데 유리하다는 점을 이 데모의 확률 패널이 상기시킨다. 다른 하나는 안내의 맥락화다. 정적인 튜토리얼 대신 사용자의 현재 상태에 맞춰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다음 한 걸음'을 제시한다는 발상은, 문서나 팝업 투어에 의존해 온 기존 온보딩 방식과 뚜렷이 구분된다.
반면 한계도 분명하다.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Jev가 어떤 모델 구조를 쓰는지, 학습 방식이나 개입 정도가 어떠한지, 실제 완주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같은 기술적 세부는 확인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Frigade가 제품을 '스스로 학습한다'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와 방법에 기반하는지도 이 페이지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Jev는 흥미로운 관전 경험이자 잘 짜인 비유이지만, 그것을 자사 제품의 안내 기능을 검증하는 근거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실제 동작과 데이터 처리 방식을 별도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