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 역사에서 AT&T는 종종 연방정부에 견줄 만한 예산과 인력을 굴린 기업으로 기억된다. 그 규모의 비결 중 하나는 독점과 그 사촌 격인 수직통합이었다. AT&T는 전화망을 '설계·제조·운영'까지 통째로 소유하려 했고, 그 야심의 핵심 부품이 바로 제조·공급 자회사 웨스턴일렉트릭(WE)이었다. 오늘날 통신 인프라를 다루는 실무자에게 이 회사의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 기업사가 아니라, 하나의 벤더가 하드웨어 생애주기 전체를 장악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선명한 사례다.
경쟁자에서 심장부로
WE의 뿌리는 아이러니하다. 회사는 1872년 이너스 바턴과 조지 쇼크가 세운 제조업체를 모태로 하는데, 여기에 자금을 대 절반 지분을 확보한 인물이 엘리샤 그레이였다. 그레이는 벨과 거의 동시에 전화 송화기를 두고 특허를 다툰, 당대 벨의 가장 강력한 경쟁 청구인이었다. 결국 이 특허 분쟁은 그레이의 청구 종료와 웨스턴유니온의 전화사업 포기로 마무리됐고, 1881년 AT&T는 WE를 인수해 버렸다. 경쟁자를 우연에 맡기지 않는 AT&T의 방식이었다. 이후 수십 년간 WE는 전화기부터 케이블, 중앙국 교환기까지 벨 전화망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장비를 만드는 유일 공급처가 됐고, 직접 만들지 않는 부품은 AT&T 계열 전체를 대신한 거대 구매조직을 통해 조달했다.
1925년 조직 개편은 이 폐쇄 생태계를 완성했다. WE에 남아 있던 비(非)전화 사업, 주로 지역 유통망은 그레이바(Graybar)로 분사됐고, 그 시점부터 벨 시스템은 WE의 유일 주주이자 유일 고객이 됐다. 같은 해 WE의 연구개발 부문은 AT&T와 공동 소유의 벨연구소로 재편됐다. 기초과학 역량과 제조 노하우가 한 지붕 아래 묶이면서, 장비는 구상·설계·제조·사용이 모두 제국 내부에서 순환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WE는 1925년부터 전화 케이블을 만들기 시작해 곧 세계 최대의 전선·케이블 제조사가 됐고, 1970년대 후반 생산능력을 축소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전화기는 WE에서 태어나 WE로 돌아왔다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AT&T는 오랫동안 미국 최대 민간 고용주였고 WE는 그 인력의 약 6분의 1을 차지했다. 인디애나폴리스 공장 한 곳만 해도 약 1만 명이 하루 3만5000대의 전화기를 찍어냈는데, 이는 여러 공장 중 하나에 불과했다. 카터폰 판결과 1984년 AT&T 분할 이전까지, 벨 계열사가 임대하던 전화기는 사실상 전부 WE에서 태어났다. 텔레타이프 코퍼레이션을 1930년 사들여 상용 텔레타이프 네트워크까지 계열화한 것도 같은 통합 논리였다.
더 인상적인 것은 폐기 쪽이다. 1920년대 전화기는 정기 정비가 필요한 값비싼 기기였고, 벨 운영사들은 임대 모델과 재사용으로 비용을 통제했다. 고객이 해지하거나 색을 바꾸거나 트림라인·프린세스로 업그레이드하면 옛 전화기는 회수돼 가까운 WE 서비스센터로 향했고, 같은 트럭이 돌아올 때는 재생을 마친 전화기를 싣고 왔다. 수백만 대가 매년 돌아와 검사·세척·수리·전기 시험을 거쳐 재제조 스탬프를 받았다. 서부에서는 덴버·피닉스·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애틀에, 1960년대에는 포틀랜드와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센터가 놓였다.
돌아온 것은 전화기만이 아니었다. 크로스바 교환기를 ESS로 올리면 새 장비는 WE에서 왔고 헌 교환기는 WE로 갔다. 전신주조차 수명이 다하면 WE가 회수했다. 재생이 불가능한 물량과 잘라낸 낡은 배선은 스태튼아일랜드의 WE 샐비지 웍스로 보내졌다. 이 회수·제련 축의 뿌리에는 1883년 독일에서 건너와 금속 정련업을 시작한 벤저민 로웬스타인이 있다. 그는 라이노타입 활자 합금으로 성공한 뒤 스태튼아일랜드에 토튼빌 코퍼를 세웠고, 훗날 나소 제련정련회사로 개편된 이 사업은 1914년 미국 구리 수출의 90%를 담당한 네 기업 중 하나로 꼽혔다. 1918년에는 포탄용 구리를 대던 이 공장이 군수시설로 분류돼, 서류 미비를 이유로 독일·오스트리아계 노동자 16명이 체포되는 사건까지 겪었다.
완결형 생태계가 남긴 실무적 질문
WE의 구조가 오늘의 IT 실무자에게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단일 벤더가 제조부터 임대, 정비, 재생, 폐기·제련까지 하드웨어 생애주기 전 구간을 소유하면 품질과 표준화, 자원 회수 효율은 극대화된다. 수백만 대를 회수해 재제조하는 폐쇄 순환은 지금 논의되는 순환경제·리매뉴팩처링의 원형이라 부를 만하다. 동시에 이는 사용자가 장비를 소유하지 못하고, 외부 기기를 붙이지 못하며, 수리 권한과 공급망이 한 회사에 종속되는 극단적 락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카터폰과 분할이 왜 필요했는지를 뒤집어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이 기록은 기업 내부 자료와 당대 보도에 기댄 서술인 만큼, 재생률이나 회수 물량의 구체적 수치가 검증된 통계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은 감안해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