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어드 키플링이 아이에게 들려주던 『그냥 그런 이야기(Just So Stories)』를 흉내 내, 손주에게 들려주는 우화 형식으로 쓰인 글이다. 다만 낙타의 혹이나 표범의 반점을 지어낸 키플링과 달리, 이 이야기는 여러 실험으로 쌓인 과학적 추정에 기대고 있다. 출발점은 단순한 관찰이다. 인도에서 겨울을 나고 카자흐스탄과 몽골에서 여름을 보내는 줄기러기(bar-headed goose)는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다. 2만 8천 피트 상공에서 나는 모습이 목격됐고, 에베레스트 위를 지나기도 한다. 산소가 희박한 그 높이를 어떻게 넘을까.
새의 폐는 왜 포유류보다 뛰어난가
답은 새의 폐 구조에 있다. 포유류는 숨을 들이쉰 구멍으로 다시 내쉰다. 들어온 공기와 나갈 공기가 같은 통로에서 섞인다. 반면 새는 들숨과 날숨의 경로가 나뉘어 있고, 기낭(air sac)과 속이 빈 뼈라는 임시 저장 공간을 갖고 있다. 숨을 들이쉴 때 신선한 공기의 절반은 이 빈 공간에 저장되고 나머지는 폐로 들어가며, 내쉴 때는 저장해 둔 공기가 다시 폐를 통과한다. 그 결과 들이쉬든 내쉬든 산소를 머금은 공기는 늘 한 방향으로 폐를 지나며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앞으로 밀어낸다. 공기가 오가며 섞이는 포유류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리그닌, 산소, 그리고 대멸종
새는 이 폐를 공룡에게서 물려받았다. 분류학에서 조류(Aves)는 이제 공룡(Dinosauria)에 포함되며, 비둘기와 기러기는 오늘날 우리 곁을 나는 공룡인 셈이다. 그렇다면 공룡은 왜 이런 폐를 갖게 됐을까. 이야기는 약 4억 5천만 년 전, 식물이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속에서 떠 있던 식물은 땅에서 처음으로 중력과 맞닥뜨렸고, 햇빛을 더 받으려 높이 서기 위해 리그닌이라는 단단한 분자를 얻었다.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리그닌은 물렁한 셀룰로스와 결합해 세포를 벽돌처럼 쌓아 올리게 했다.
문제는 당시 어떤 세균이나 곰팡이도 리그닌을 분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죽은 나무는 썩지 않고 땅에 묻혔고, 1억 년 넘게 분해되지 않은 리그닌이 지하에 쌓였다. 이 시기가 석탄기다. 탄소가 땅으로 들어갈 때 분해에 쓰이지 않은 산소는 대기에 남는다. 그 결과 오늘날 21퍼센트인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약 3억 년 전에는 30퍼센트를 훌쩍 넘었다. 산소가 넘치자 호흡이 비효율적인 곤충과 양서류가 거대해졌다. 날개폭 90센티미터의 잠자리, 길이 2.4미터가 넘는 노래기가 그 산물이다. 다만 산소 농도가 43퍼센트에 이르면 번개 한 번에 대기 전체가 불붙을 수 있다는 위험도 함께 자랐다.
그 균형을 깬 것은 리그닌을 몸 밖에서 효소로 녹여 분해하는 능력을 획득한 곰팡이였다. 이른바 마른 썩음(dry rot)의 등장이다. 쌓여 있던 죽은 나무가 분해되기 시작하자 산소는 빠르게 소모됐고, 석탄기에 30퍼센트를 넘던 농도는 약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에 12퍼센트 안팎까지 떨어졌다. 높은 산소에 적응해 있던 생명 대부분은 이 급락을 견디지 못했다. 지구 생명의 95퍼센트가 사라진, 역사상 최대의 멸종이었다.
살아남은 5퍼센트를 위해 진화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입구와 출구가 분리된 효율적 폐였다. 이 폐를 받은 동물이 공룡이다. 희박한 산소를 최대한 활용하는 폐 덕분에, 이후 산소가 다시 20퍼센트대로 회복되자 공룡은 코끼리 같은 육상 포유류가 결코 이르지 못한 크기로 자랐다. 속이 빈 뼈는 몸무게를 줄였다. 공룡에서 갈라져 나온 새는 이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하늘을 얻었고, 줄기러기가 히말라야를 넘는 능력도 여기서 비롯됐다.
제약이 만든 설계라는 관점
이 글은 과학 교양서(닉 레인의 『산소』)에서 영감을 받은 비유적 서사다. 진화를 'R&D 부서'로, 세균과 식물을 청원하는 위원회로 의인화한 장치일 뿐 실제로 설계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연대와 수치도 대략적인 추정치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술을 다루는 사람에게 남기는 함의는 또렷하다. 리그닌이라는 '신기능'이 의도치 않게 산소 과잉과 대멸종이라는 연쇄를 불렀듯, 하나의 최적화는 생태계 전체의 의존과 취약성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가장 혹독한 제약인 희박한 산소 아래 만들어진 설계가 훗날 가장 넓은 가능성인 비행을 여는 자산이 됐다. 풍요가 아니라 결핍이 내구성 있는 구조를 낳는다는 이 역설은, 자원이 넉넉할 때 쌓아 둔 느슨함이 환경이 바뀌는 순간 부채로 돌아오는 엔지니어링의 경험과 그리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