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흔히 생명의 설계도나 명령어 집합에 비유된다. 단백질을 지정하는 유전자도 있지만, 인간 게놈의 대부분은 단백질을 직접 만들지 않는 '비암호화(noncoding)' 영역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아직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고, 다른 일부는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조절 요소들이 세포와 조직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고,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때로는 게놈에서 멀리 떨어진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의 유전체학자 칼 드 보어는 DNA 변화가 이 조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는 일이 "대부분의 질병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이 문제를 겨냥해 2025년 알파지놈(AlphaGenome)이라는 AI 도구를 처음 공개했다. 이 모델은 원래 DNA 서열과 한 글자가 바뀐 서열을 비교해, 그 변화가 유전자 발현과 조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한다. 관련 논문은 올해 1월 네이처에 실렸고 모델은 비상업 용도로 공개됐다. 다만 연구자가 직접 검사할 변이를 고르고, 코드를 작성하고, 계산 부담이 큰 모델을 스스로 돌려야 한다는 진입 장벽이 있었다.
90억 변이를 미리 계산하다
9월 8일 딥마인드가 공개한 알파지놈 아틀라스(AlphaGenome Atlas)는 바로 그 수고를 미리 대신해 놓은 결과물이다. 인간 참조 게놈은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고, 각 위치마다 세 가지 단일 염기 치환이 가능하므로 총 90억 개의 변이가 존재한다. 아틀라스는 이 모든 경우에 대한 알파지놈 예측값을 사전에 계산해 온라인 저장소로 제공한다. 연구자는 코드를 짜거나 모델을 직접 실행할 필요 없이, 특정 변이 하나를 조회해 11가지 출력 유형의 상세 예측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데이터셋 규모는 약 1페타바이트에 이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이용자가 요청해 온 '영향 점수(impact score)' 기능이다. 이는 해당 변이가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단일 숫자다. 딥마인드 과학 담당 부사장 푸시미트 콜리는 "우리 DNA를 이해하는 것은 거대한 도전"이라며 생명의 언어를 해독하면 많은 것을 풀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계산 규모
딥마인드의 유전체학 책임자 지가 아브세츠에 따르면 이 작업은 처음엔 계산상 불가능해 보였다. 초기 추정으로는 합리적인 시간 안에 아틀라스를 완성하려면 계산 속도를 80배 끌어올려야 했다. 팀은 모델 증류(distillation), GPU 커널 최적화, 중복 계산 제거 등 여러 기법을 동원해 이 목표에 도달했다. 아브세츠는 "이 규모에서 이를 실현하려면 상당한 고민과 엔지니어링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아틀라스는 딥마인드가 쌓아온 계보 위에 있다. 2020년 알파폴드는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했고, 2023년 알파미센스는 단백질을 바꾸는 7,100만 개 변이가 양성인지 병원성인지를 예측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예측 결과를 공개 데이터베이스로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번 아틀라스와 닮았다.
유용한 필터, 그러나 만능은 아니다
한계도 분명하다. 많은 질병은 여러 유전 변이가 얽혀 나타나는데 아틀라스는 단일 변이 단위로 예측한다. 또한 알파지놈은 변이 주변 100만 염기쌍이라는 비교적 넓은 구간을 살피지만, 인핸서(enhancer)로 불리는 일부 서열은 그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유전자를 조절하기도 해 모델의 시야를 벗어나면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드 보어는 알파지놈을 "이 분야의 선도 모델"로 평가하면서도 "매우 느리고 계산 부담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아틀라스는 최신 하드웨어가 없는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 같은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인원을 줄여준다는 실용적 가치를 지닌다.
실무적으로 아틀라스의 쓸모는 '확정'이 아니라 '선별'에 있다. 수많은 가능성 중 검증할 후보를 좁혀 실험실 실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유용하며, 이를 통해 기초 생물학과 질병·치료 연구를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이 딥마인드의 설명이다. 다만 단일 영향 점수는 복잡한 예측을 하나의 숫자로 압축한 것인 만큼 오독 위험도 크다. 드 보어의 표현대로 "분명한 용도가 있지만 쉽게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도구다. 아틀라스는 비상업 연구용으로 무료 공개됐으며, 상업용 라이선스 가능성도 열려 있다. 결국 이 자원을 다루는 연구자에게 필요한 것은 점수 자체보다, 그 숫자 뒤에 놓인 시스템의 복잡성을 놓치지 않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