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6분 읽기 21 READS

기울어진 글자는 italic이 아니었다: 디테일에 숨은 엔지니어링 장인정신

기울어진 글자는 italic이 아니었다: 디테일에 숨은 엔지니어링 장인정신
SOURCE IMAGE · HACKER NEWS

오래된 디스플레이에서 글자가 살짝 기울어 보이는 현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장인정신과 품질을 다루는 블로그 'unsung'의 글 'Good type against all odds'는 이 기울기가 사실 이탤릭(italics)도, 의도적으로 비스듬히 그린 오블리크(oblique)도 아니라고 짚는다. 그것은 글꼴 디자이너의 선택이 아니라 하드웨어가 화면을 그리는 방식에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흔히 지나치는 시각적 디테일 하나를 출발점 삼아, 글은 제약과 기본값 그리고 craft(장인정신)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기울기는 어디서 왔나

원문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디스플레이는 화면 전체를 한 번에 바꾸지 않고 맨 위 줄부터 아래로 한 줄씩 순차적으로 갱신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내부의 수평 위치가 이미 조금 앞으로 나아가 있기 때문에, 아래쪽 줄들은 살짝 왼쪽에 그려지고 결과적으로 글자 전체가 기울어 보이게 된다. 글쓴이는 이를 사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가 휘어 보이는 '롤링 셔터(rolling shutter)' 현상과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라고 비유한다. 즉 기울기는 미감의 산물이 아니라 갱신 순서와 타이밍이 어긋나며 생긴 물리적 흔적인 셈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결과가 '반대 방향'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글쓴이는 영어나 독일어권에서 스크롤을 왼쪽으로 흐르게 하는 것, 그리고 글자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고 말한다. 전자는 읽는 방향과 관련이 있지만, 후자는 타이포그래피의 많은 요소가 그렇듯 관습에 가깝다. 오른쪽으로 기운 글자가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그것만 봐 왔기에 익숙할 뿐이라는 것이다.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갱신했다면 글자는 왼쪽으로 기울었을 것이고, 스크롤 방향도 얼마든지 오른쪽일 수 있었다.

의도인가, 기본값인가

그렇다면 이 방향들은 의도적인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기본값이었을까. 글쓴이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적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확실성이 핵심을 가리킨다. 이런 세부를 아는 것, 혹은 이런 것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의 가치다. 대개 더 나은 완성도는 더 많은 수고를 요구한다. 하지만 때로는 공짜로 얻어지기도 한다. 단, 갈림길에서 올바른 쪽을 택했을 때에 한해서다. 똑같은 제약과 똑같은 노동량 안에서도, 어느 방향으로 구현하느냐에 따라 결과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찰이다.

제약을 영리하게 끌어안은 사례들

글의 후반부는 글쓴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이번에는 대체로 의도적이었으리라 보는 타이포그래피의 즐거운 순간들을 나열한다. 5×7 픽셀의 투박한 디스플레이로 그려낸 열차 객차 그림이 있고, 같은 한계를 오히려 역이용해 네 개의 글자를 나란히 붙여 경기장(stadium) 아이콘을 만들어낸 더 영리한 사례가 있다. 빈 공간을 장식으로 채워 넣은 경우, 그리고 행간(line height)을 모두 없애 세로 방향의 리거처(ligature)를 만들어낸 경우도 등장한다. 마지막 사례는 Gorton 서체이며 글자가 플라스틱에 새겨진 것이라, 그만큼의 공이 들어갔다고 글쓴이는 덧붙인다.

오블리크 이야기에 이어, 밑줄을 긋거나 단순하게 처리하는 대신 'NOT'이라는 글자를 실제로 기울여 표현한 사례도 소개된다. 글쓴이는 그 기울기가 지나치게 두껍고 약간 크다고 평하면서도, 수고로운 방식을 택한 점을 높이 산다. 밑줄조차 평범하지 않게 아래로 더 뻗어 나가거나, 입체적인 3차원 밑줄로 구현한 예도 있다. 오래된 식자기(typesetting machine)에서 발견해 의도적인 이스터에그이길 바란다는 흔적, 그리고 컴퓨터 키보드에서는 기대하지 않을 하이픈 분철과 구식 축약 표기까지 그는 수집한다.

실무자에게 남는 것

이 글이 한국의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우리가 매일 다루는 UI, 폰트 렌더링, 아이콘, 터미널 출력에는 하드웨어와 라이브러리의 기본값이 만들어낸 '부작용'이 숱하게 섞여 있다. 그 부작용을 당연한 것으로 흘려보낼지,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더 나은 쪽을 선택할지는 결국 팀의 문화 문제다. 중요한 것은 모든 디테일에 무한정 공을 들이자는 주장이 아니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갈림길을 알아보는 안목이다.

다만 이 글은 체계적인 분석이 아니라 애정 어린 관찰 모음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글쓴이 스스로 사례들의 의도성을 단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craft라 부를지 혹은 '좋다'고 할지조차 판단을 유보한다. 특정 수치나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주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제약을 한계로만 보지 않고 표현의 여지로 읽어내는 시선은, 품질을 입으로만 말하는 조직과 실제로 디테일을 아끼는 조직을 가르는 작은 분기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용히 일러준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unsung.aresluna.org/good-type-against-all-odds/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