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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으로 읽는 컴퓨팅 60년, 8차수 성장 그리고 둔화의 신호

컴퓨터의 성능을 한 줄로 요약하는 지표는 무엇일까. 팟캐스트 '맥 월드(Mag World)'의 진행자 사울 프완슨은 RAM 용량을 컴퓨팅 파워의 대리 지표로 삼는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무어의 법칙이 말하는 트랜지스터 집적도의 증가는 연산 회로뿐 아니라 메모리에도 똑같이 작용하며, 둘은 사실상 함께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빠른 프로세서라도 RAM이 부족하면 복잡한 작업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메모리 용량은 그 시대의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를 가늠하는 실용적인 척도가 된다.

이 방송의 핵심 장치는 로그 스케일이다. 메모리 용량을 10의 거듭제곱 단위, 즉 '차수(mag)'로 끊어 컴퓨팅의 역사를 계단처럼 배열한다. 진행자의 아버지가 1980년경 쓰던 TRS-80 모델1은 4KB RAM으로 mag 3, 애플 II 계열은 32~64KB로 mag 4, 그 위로 수백 KB에서 640K 시절이 mag 5다. 매킨토시가 mag 6, 윈도우 95 시대가 mag 7, 수백 MB급이 mag 8이며, 1GB 안팎에서 최근 12GB까지 올라온 아이폰이 mag 9에 해당한다. 오늘날 16~32GB를 얹은 데스크톱과 노트북은 mag 10이고, 1TB RAM에 해당하는 mag 12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로그 스케일이 드러내는 것

차수로 보면 진행자가 살아온 수십 년 동안 컴퓨팅 파워가 약 8차수, 곧 1억 배 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성장의 '속도'다. 무어의 법칙은 1965년 처음 제시될 때 18개월마다 트랜지스터 수가 두 배가 된다고 봤고, 1975년에는 2년으로 수정됐다. 방송에서 진행자는 체감 속도를 별도로 언급하는데, 1980년대 초에는 5년마다 10배, 1990년대에는 6년, 2000년대에는 7년으로 개선 주기가 점점 길어졌다고 말한다. 지수적 상승이 여전히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 기울기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실무자 입장에서 더 눈여겨볼 것은 이 둔화가 '수요의 포화'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진행자는 10년 전에 산 16GB 노트북을 지금도 큰 불편 없이 쓰고 있으며, 128GB 같은 용량은 오히려 자신에게 필요 없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새 컴퓨터를 살 때마다 곧바로 사용성의 한계에 부딪혔고, 조금만 더 투자하면 눈에 띄게 나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반면 지금은 하드웨어가 사용자의 일상적 요구를 넉넉히 앞질러버려, 용량을 두 배로 늘려도 체감 이득이 크지 않은 구간에 들어섰다.

RAM과 저장장치를 구분하는 이유

방송은 RAM을 '작업 기억', 즉 사람이 머릿속에서 굴리는 기억에 비유하고, 하드디스크나 USB 같은 저장장치를 '종이에 적어둔 기록'에 빗댄다. 아이폰이 12GB RAM과 별개로 수백 GB의 저장 공간을 갖는 것처럼, 둘은 역할이 다르다. 초창기 컴퓨팅에서는 이 구분이 훨씬 극적이었다. 진행자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로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을 통째로 메모리에 올려 실행하던 경험을 회상하는데, 전원을 끄면 입력한 모든 것이 사라지는 환경이었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지속적 저장과 즉각적 로딩이 그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각 차수가 열어준 '가능성의 질'을 실감하게 한다.

방송에 등장한 프로그래머들의 회고는 이 스케일에 사람의 경험을 입힌다. 1986년 128바이트 RAM(mag 2)의 마이크로컨트롤러 펌웨어를 짜던 이는 한번 배포하면 고칠 수 없었기에 설계 문서와 코드 리뷰, QA가 극도로 엄격했다고 말한다. 애플 IIe로 전화선을 물린 다이얼업 모뎀에 몇 분씩 접속해 롬을 내려받던 세대, 윈도우 95로 어드벤처 게임을 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때문에 윈도우 XP로 넘어간 세대까지, 각 차수는 저마다의 개발 문화와 놀이 방식을 품고 있었다.

다만 이 프레임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렌즈임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RAM 용량은 편리한 대리 지표이지만 병렬성, 메모리 대역폭, 전력 효율, GPU 가속처럼 오늘날 실제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특히 대규모 AI 워크로드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절대 용량이 아니라 고대역폭 메모리와 가속기 구성이며, 이는 mag 스케일이 포착하기 어려운 축이다. 그럼에도 이 방송이 남기는 실용적 통찰은 유효하다. 하드웨어의 지수적 성장이 사용자의 실질적 필요를 앞지른 지금, 사양 경쟁보다 소프트웨어의 효율과 실제 병목 지점을 겨냥한 투자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magworld.pw/episodes/comp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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