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논쟁에 지쳤다면
AI 데이터센터 하나에 기가와트(GW)급 전력이 필요하다, 원전을 새로 지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면 충분하다… 요즘 이런 이야기가 쏟아지죠. 그런데 막상 '1GW가 얼마나 큰데?'라고 물으면 선뜻 답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 다시 꺼내 볼 만한 책이 있어요.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자 고(故) 데이비드 매케이(David MacKay)의 『Sustainable Energy – Without the Hot Air』예요. 2008년에 나온 책인데 웹사이트(withouthotair.com)에서 지금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매케이는 이후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 수석 과학 자문을 맡기도 했어요.
제목의 'Hot Air'는 '허풍, 공허한 말'이라는 뜻이에요. 감정적인 주장 말고 숫자로 이야기하자는 책이죠.
핵심 도구: kWh/일/인
이 책의 가장 큰 발명은 단위예요. 매케이는 모든 에너지를 '한 사람이 하루에 쓰는 킬로와트시(kWh/d/p)'로 통일했어요.
이게 왜 좋냐면, 에너지 이야기에는 메가와트, 테라와트시, 석유 환산 톤, 줄(J) 같은 단위가 뒤섞여 나와서 일반인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이걸 '한 사람 하루치'로 바꾸면 갑자기 감이 와요. 예를 들어 볼게요.
- 휴대폰 충전기를 꽂아만 두면 약 0.5W, 하루로 치면 0.01kWh 정도예요.
- 자동차로 하루 50km쯤 달리면 대략 40kWh예요.
책 전반부에서는 영국인의 소비를 교통, 난방, 전등, 가전, 음식, 수입품에 들어간 에너지까지 하나씩 쌓아서 약 125kWh/d/p라는 소비 '더미'를 만들어요. 반대편에는 풍력, 태양광, 조력, 수력 같은 생산 가능량을 쌓고요. 두 더미를 나란히 놓고 보면 무엇이 현실적이고 무엇이 희망사항인지 한눈에 보여요.
진짜 병목은 면적이에요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개념은 전력 밀도, 즉 땅 1제곱미터에서 평균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전력(W/m²)이에요. 매케이의 추정으로는 육상 풍력은 대략 2W/m², 태양광 발전 단지는 위도와 일조량에 따라 5~10W/m² 수준이에요. 반면 선진국 사람들이 쓰는 에너지를 인구 밀도로 나누면, 영국이나 한국처럼 인구가 빽빽한 나라에서는 국토 전체를 발전소로 덮어야 겨우 맞먹는 수준이 나와요. 재생에너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규모를 숫자로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AI 데이터센터에 대입해 보면
이 책의 방식으로 요즘 뉴스를 계산해 볼게요. 1GW 데이터센터가 하루 종일 돌면 하루 24GWh를 써요. 한국 인구를 약 5,100만 명으로 잡으면 1인당 하루 약 0.47kWh예요.
작아 보이죠? 그런데 전국 모든 사람의 몫으로 나눈 숫자라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이걸 태양광으로만 충당한다면 평균 전력 밀도를 5~10W/m²로 잡을 때 대략 100~200km²가 필요해요. 서울 면적(약 605km²)의 6분의 1에서 3분의 1쯤 되는 땅이죠. 게다가 데이터센터는 밤에도 돌아가니 저장 장치까지 필요해요. 이렇게 한 번 계산해 보면 '데이터센터 옆에 원전을 짓겠다'는 빅테크의 발표가 왜 나오는지 감이 와요.
개발자에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
이 책은 에너지 책이면서 동시에 어림 계산(back-of-the-envelope) 교과서예요. 개발자들이 즐겨 보는 'Latency Numbers Every Programmer Should Know'와 같은 정신이에요. 메모리 접근은 나노초, 디스크는 밀리초라는 감각이 있어야 설계를 판단할 수 있듯이, 에너지와 비용에도 기준 숫자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거든요.
실무에서도 바로 써먹을 수 있어요. GPU 한 장이 700W라면 8장짜리 서버 하나에 냉각까지 합쳐 대략 10kW 전후, 이걸 1년 돌리면 몇 MWh일까? 우리 서비스의 추론 요청 하나당 전력 비용은 얼마일까? 이런 질문에 5분 안에 대략적인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클라우드 비용 회의에서 훨씬 설득력이 있어요. 책의 숫자 일부는 2008년 기준이라 태양광 효율이나 가격은 지금이 훨씬 좋아졌어요.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 자체는 전혀 낡지 않았어요.
마무리
한 줄 정리: 에너지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목소리가 아니라 단위를 맞춘 숫자예요.
여러분은 '1GW 데이터센터' 같은 숫자를 들었을 때 어떻게 감을 잡으시나요? 실무에서 어림 계산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출처: Hacker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