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불리는 시대에, 회사 초창기의 스톡옵션 계약서 한 장이 30년 만에 소환됐다. 자신을 1993년 엔비디아 기술자문위원회(Technical Advisory Board)에 초청받았다고 밝힌 한 인물이 1인칭으로 풀어낸 회고담이다. 그는 당시 가죽 재킷을 입기 전의 젠슨 황, 그리고 공동창업자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코프스키가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에 있던 자신의 하우스보트 'SS 밸레이오'를 찾아온 일을 계기로 25,000주의 옵션을 부여받았다고 적었다. 계약서에는 옵션이 '분기별 분할로 부여되어 부여일로부터 1년이 지나면 전량 베스팅된다'고 명시돼 있었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근거다.
기술적 배경: NV1과 비선형 텍스처 매핑
그가 엔비디아 창업자들의 관심을 끈 대목은 그래픽 기술 역사의 한 장면과 맞닿아 있다. 그는 1990년 무렵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SPARCstation GX 칩을 설계한 프리엠과 협업했고, 자신의 VR 회사 Sense8의 렌더링을 초당 5만 폴리곤 수준으로 폴리곤을 처리하던 썬 GX에 이식했다고 밝혔다. 이후 인텔 i750 DVI 칩으로 이중선형(bilinear) 텍스처 매핑을 구현했고, 결정적으로 비이차(biquadratic) 텍스처 매핑의 빠른 구현(미국 특허 US5796426A 등)이 프리엠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프리엠은 이 비선형 텍스처 매핑이 엔비디아의 첫 제품 NV1을 경쟁 제품과 차별화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봤다는 설명이다. 그는 프로토타입 하드웨어(PCI 어댑터에 꽂은 GX 카드) 위에서 인텔 후원의 VR 현악 사중주 데모를 만들어 1993년 구겐하임 소호에서 선보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1995년 출시된 NV1은 시장의 벽에 부딪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갓 내놓은 다이렉트X에서 사각형(quad)과 이차 텍스처 매핑을 지원하지 않고 삼각형만 채택하면서, 엔비디아의 기술적 승부수는 힘을 잃었다. 그 여파로 회사는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는 것이 그의 서술이다. 오늘날 엔비디아의 위상만 아는 사람에게는 낯설지만, 초기의 아키텍처 선택이 생존을 위협할 만큼 위태로웠던 시기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30년 뒤에 드러난 베스팅 불일치
분쟁의 씨앗은 1996년 4월에 뿌려졌다. 그는 당시 통가 왕국으로 이주해 인터넷 스타트업을 구상하던 중, 엔비디아 CFO로부터 '15,625주가 베스팅됐으니 행사해야 한다'는 편지를 받았고 그대로 행사한 뒤 잊고 지냈다. 그러다 2024년, 엔비디아 뉴스로 가득한 화면 앞에서 옛 서류철을 뒤진 그는 계약서 문구를 다시 읽고 불일치를 발견했다고 한다. 15,625주는 전체 25,000주의 62.5%로, 이는 4년 베스팅 일정에서 10개 분기가 지난 비율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반면 계약서가 실제로 규정한 것은 1년(4개 분기) 일정이었고, 그렇다면 편지가 쓰이기 훨씬 전에 전량 25,000주가 이미 베스팅됐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누락된 9,375주는 이후 누적 480배에 이르는 주식 분할을 거쳐 450만 주에 해당한다.
그는 스타이어 로웬탈의 앨런 스타이어, 코레인 틸러리의 크리스 버크 등 저명한 변호사를 선임해 문제를 제기했다. 약 1년간 양측 변호인이 판례를 인용하며 서한을 주고받았지만, 엔비디아는 계약서의 진정성 자체는 다투지 않고 오직 청구권이 소멸시효로 이미 소멸됐다는 점만 내세웠다고 한다. 외부 로펌 쿨리(Cooley)의 답은 사실상 '소송하라'였고, 결국 그와 변호인단은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권리 위에 잠들어' 있었던 탓에 각하 신청조차 넘기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 IT 실무자가 새길 지점
이 이야기는 검증된 판결문이 아니라 한쪽 당사자의 회고라는 점을 먼저 감안해야 한다. 엔비디아 측의 구체적 반론이나 법원의 판단은 공개되지 않았고, 분쟁은 소송이 아니라 협상 결렬로 종결됐다. 그럼에도 스톡옵션과 지분 보상을 다루는 실무자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첫째, 베스팅 조건은 '분기'와 '연도', '1년 만기'와 '4년 분할'처럼 한 단어 차이로 결과가 62.5% 대 100%로 갈릴 만큼 민감하다. 계약서 원문과 회사가 통지하는 행사 안내가 일치하는지 부여 시점에 직접 대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둘째, 권리 주장에는 시효라는 냉정한 시계가 붙는다. 계약 위반을 뒤늦게 발견하더라도, 발견이 곧 구제를 보장하지 않는다. 상대가 문서의 진정성을 인정하더라도 시효 항변만으로 청구가 봉쇄될 수 있다는 점은 국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여·행사·정산 관련 문서를 장기 보관하고, 이상 징후를 인지한 순간 시효 기산점과 남은 기간을 곧바로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어책이다. 화려한 이력의 변호인단조차 30년의 침묵 앞에서는 각하의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는 결말이, 이 회고가 스스로 '경고성 이야기'라 부르는 이유를 요약한다. 글쓴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말 'Omnia fui, nihil expedit(나는 모든 것이 되어 보았으나, 무엇도 소용없었다)'을 인용하며 담담한 태도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