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국 회사가 파일 변환 서비스로 2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은 언뜻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이력을 들여다보면 유행을 좇지 않고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한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어떻게 오래 살아남는지에 대한 드문 사례가 된다. 잼자(Zamzar)는 2006년 두 형제가 전화 접속 모뎀과 낡은 HTML4 입문서를 가지고 시작했다. 공동 창업자 크리스와 마이크 와일리(Chris & Mike Whyley)는 벤처 투자도, 유니콘급 기업 가치도 없이 지금까지 독립 회사로 운영해 왔다고 밝혔다. 서비스 이름은 아침에 깨어 보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던 소설 속 인물에서 따왔다.
숫자로 보면 규모는 작지 않다. 출시 당시 150종이던 변환 형식은 2026년 기준 약 2,128종으로 열다섯 배 가까이 늘었고, 누적 5억 5천만 명 이상이 이용해 7억 6천만여 건(정확히는 766,615,348건)의 파일을 변환했다. 현재는 하루 100만 건 이상의 API 요청을 처리한다고 한다. 창업자들은 "화려한 기능과 숫자보다 매일 잼자를 찾아 쓰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이 지표들이 작은 팀이 20년간 쌓아 올린 축적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히 드러낸다.
트렌드를 좇지 않은 20년
잼자의 이야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겪은 기술 유행의 목록이다. 소셜 미디어, 웹 2.0, 스마트폰, 블록체인, 웨어러블, NFT, 메타버스, 그리고 최근의 AI까지 수많은 흐름이 왔다 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파일을 변환해야 했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할머니의 워드 문서를 변환하기 위해 AI 기반 블록체인으로 전환할 계획은 없다"고 농담조로 못 박았다. 이는 단순한 자기 과시가 아니라, 해결하려는 문제 자체가 기술 유행과 무관하게 지속된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실무자 입장에서 보면 '뜨는 기술'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불편'을 제품의 축으로 삼는 선택이 어떤 수명을 갖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예상 밖의 자리에도 놓였다. 파워포인트를 만든 인물이 오래전 분실한 프레젠테이션을 되살리는 일을 도왔고, 인터넷 선구자 빈트 서프(Vint Cerf)의 디지털 역사 보존 작업을 지원했으며, 제록스와는 프린터가 문서를 음성으로 읽어 주는 기능을 협력했다고 한다. 재봉틀 패턴 변환 요청처럼 끝내 해내지 못한 일도 있었고, 오래된 eFax 파일 복원처럼 성공한 사례도 있었다. BBC의 기술 프로그램 '클릭'에 출연했고, 유튜브 영상 다운로드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구글로부터 중단 요구 서한을 받았으며, 스코틀랜드 컬링 챔피언 팀을 후원하기도 했다.
실무자가 가져갈 함의
한국의 IT 실무자에게 이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외부 투자 없이도 꾸준한 사용자 기반과 API 수익(하루 100만 건 요청)만으로 20년을 버틴 부트스트랩 모델의 실재성이다. 성장 속도를 외부 자본에 저당 잡히지 않은 대신, 회사는 자기 방식대로 결정할 자유를 얻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익의 일부를 60곳 넘는 자선·교육 단체에 기부해 왔다는 점도 그 자율성의 산물로 제시된다. 둘째, 복잡한 설치 프로그램과 전문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함이 곧 제품의 해자였다는 점이다. 창업자들은 "열리지 않는 파일이 있는데 CS 학위가 있어야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려받고 싶지는 않아서" 잼자를 만들었다고 했고, 같은 문제를 겪은 사람이 5억 5천만 명이었다.
셋째는 지표 뒤의 개별 사용자다. 36쪽 분량의 작업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깨졌다고 생각했던 로빈, 10여 년 전 이스라엘의 친구를 통해 잼자를 알게 된 뒤 지금은 멕시코에서 여전히 쓰고 있다는 심하 같은 이름들이 글에 등장한다. 수억 건이라는 숫자가 결국 개별적인 작은 문제 해결의 합이라는 서술은, 트래픽 지표에 가려지기 쉬운 실제 사용자 경험을 상기시킨다.
다만 이 글이 창업 20주년을 기념하는 회사 블로그라는 점은 감안해 읽어야 한다. 제시된 수치는 모두 자체 집계이며 매출, 이익률, 인프라 구조, 경쟁 환경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회사의 회고인 만큼 같은 전략을 택하고도 사라진 수많은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는 생존 편향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럼에도 '지루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문제를 작고 독립적인 팀이 꾸준히 붙든다'는 모델 자체는, 거대한 라운드와 급성장 서사가 지배하는 업계에서 참고할 만한 또 하나의 선택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