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7분 읽기 24 READS

1996년 '그림 판당고' 퍼즐 설계 문서, 명작 어드벤처 게임은 이렇게 설계됐어요

30년 전 설계 문서가 아직도 읽히는 이유

1998년에 나온 어드벤처 게임 '그림 판당고(Grim Fandango)'를 아시나요? 루카스아츠에서 팀 셰이퍼가 만든 작품인데요, 멕시코 '죽은 자의 날' 문화와 1940년대 필름 누아르를 섞은 독특한 세계관으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어드벤처 게임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게임이에요. 주인공 매니 칼라베라는 죽은 자의 나라에서 일하는 '사후 여행사 직원'인데, 착하게 산 영혼에게는 고급 열차 티켓을, 그렇지 않은 영혼에게는 지팡이 하나를 쥐여주며 4년간의 여정을 떠나보내는 역할이에요.

이 게임이 만들어지기 2년 전인 1996년, 팀 셰이퍼가 팀원들에게 공유한 '퍼즐 문서(Puzzle Document)'가 있어요. 70쪽 남짓한 PDF인데, 게임의 스토리, 등장인물,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퍼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그림과 글로 정리한 문서거든요. 2008년에 셰이퍼 본인이 공개한 이후로 게임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꾸준히 돌아다니는 자료인데, 요즘 다시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30년이 지났는데도 '실제 출시된 명작의 설계 문서 원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경우가 정말 드물기 때문이에요.

문서 안에는 뭐가 들어 있냐면

문서는 게임의 흐름을 따라 '1년차, 2년차, 3년차, 4년차'로 나뉘어 있어요. 매니가 엘 마로우의 죽음부(Department of Death)에서 일하다가 비리를 알아채고, 항구 도시 루바카바로 흘러가고, 바다를 건너 세상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구조가 그대로 담겨 있죠. 각 구간마다 어떤 장소가 있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아이템을 얻어서 어떤 문제를 푸는지가 문장으로 쭉 설명돼요.

그리고 핵심은 퍼즐 의존성 차트(puzzle dependency chart)예요. 이게 뭐냐면, 퍼즐들을 상자로 그려놓고 '이 퍼즐을 풀어야 저 퍼즐을 풀 수 있다'는 관계를 화살표로 이어놓은 그림이에요. 예를 들어 '열쇠를 얻는다'와 '문을 연다'가 있으면 열쇠 상자에서 문 상자로 선이 이어지는 식이죠. 소프트웨어로 치면 빌드 시스템의 의존성 그래프나 프로젝트 관리의 작업 순서도와 똑같은 개념이에요.

이 차트가 왜 중요하냐면, 어드벤처 게임의 고질병 두 가지를 한눈에 잡아주기 때문이에요. 첫째는 '막다른 길'이에요. 플레이어가 어떤 아이템을 미리 써버려서 게임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인데, 차트로 그려보면 어떤 경로에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바로 보이거든요. 둘째는 '병목'이에요. 퍼즐이 한 줄로만 쭉 이어져 있으면 플레이어가 하나에 막히는 순간 게임 전체가 멈춰버려요. 좋은 어드벤처 게임은 여러 갈래의 퍼즐을 동시에 열어두고, 하나에 막히면 다른 걸 하다가 힌트를 얻게 만들거든요. 차트를 보면 그래프가 넓게 퍼져 있는지, 한 줄로 가늘게 이어져 있는지가 바로 드러나요.

이 기법은 루카스아츠에서 론 길버트가 '매니악 맨션'과 '원숭이 섬의 비밀'을 만들 때 정착시킨 방법인데, 팀 셰이퍼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 그림 판당고에 적용한 거예요. 문서를 보면 연도별로 차트가 따로 있고, 그 옆에 퍼즐 하나하나에 대해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 방해하는 것, 해결 방법이 짧게 정리되어 있어요. 최종 게임과 비교해보면 바뀐 부분도 꽤 있어서, 설계와 실제 구현 사이에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추측해 보는 재미도 있고요.

90년대 설계 문서와 요즘 게임 개발

요즘 게임 스튜디오는 이렇게 두꺼운 문서를 먼저 쓰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프로토타입을 빨리 만들어서 재미있는지 확인하고, 노션이나 컨플루언스에 '살아있는 문서'를 조금씩 키워가는 방식이 대세거든요. 몇백 쪽짜리 게임 디자인 문서는 아무도 안 읽는다는 농담이 업계에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퍼즐 의존성 차트만큼은 지금도 살아남았어요. 론 길버트가 2022년에 낸 '리턴 투 몽키 아일랜드'를 만들 때도 이 차트를 그리는 모습을 직접 공개했고, 내러티브 게임이나 탈출 게임, 오픈월드 게임의 퀘스트 설계에서도 비슷한 그래프를 그려요. 형태는 달라졌지만 '플레이어가 어떤 순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그래프로 보는 사고방식은 그대로예요.

한국 개발자에게 주는 시사점

게임 개발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이 문서는 교과서 한 권 값을 해요. 특히 인디 어드벤처나 내러티브 게임을 만들 계획이라면, 코드를 짜기 전에 종이에 의존성 차트부터 그려보는 습관을 들일 수 있거든요. 유니티나 언리얼에서 퀘스트 시스템을 설계할 때도 이 그래프가 그대로 데이터 구조가 돼요.

게임과 상관없는 개발자에게도 배울 점이 있어요. 첫째는 '만들기 전에 흐름을 그려보는 것'의 힘이에요. 온보딩 플로우나 결제 과정을 설계할 때 '사용자가 여기서 막히면 다른 길이 있나?'를 확인하는 건 막다른 길을 찾는 것과 똑같은 작업이에요. 둘째는 문서가 팀의 공용어라는 점이에요. 이 문서는 혼자 보려고 쓴 게 아니라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작가가 같은 그림을 보게 하려고 쓴 거거든요.

마무리

한 줄로 정리하면, 이 문서는 명작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원본 그대로 보여주는 드문 자료이고, 그 핵심인 퍼즐 의존성 차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설계 도구예요.

여러분은 새 기능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디까지 문서로 먼저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문서가 실제 결과물과 크게 달라졌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 출처: Hacker News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gameshelf.jmac.org/2008/11/13/GrimPuzzleDoc_small.pdf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