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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스페이스랩 컴퓨터의 코어 메모리, 반도체 직전 세대의 정점

1980년 스페이스랩 컴퓨터의 코어 메모리, 반도체 직전 세대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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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메모리가 주류로 자리 잡은 1970년대 이후에도 자기 코어 메모리는 한동안 특수 영역에서 살아남았다. 유럽이 개발해 우주왕복선 화물칸에 실었던 재사용 실험실 스페이스랩(Spacelab)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페이스랩은 유럽 프로젝트였던 탓에 셔틀 본체의 IBM AP-101 대신 프랑스제 미니컴퓨터 미트라(Mitra) 125 MS를 세 대 탑재했다. 한 대는 실험실 자체를, 다른 한 대는 실험 장비를 관리했고, 세 번째는 고장에 대비한 예비기였다. 이 컴퓨터의 주기억장치는 실리콘 칩이 아니라 작은 페라이트 고리에 비트를 저장하는 코어 메모리 128KB였다.

코어 메모리는 어떻게 동작하는가

코어 메모리의 기본 단위는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자화되는 도넛 모양의 자성 고리다. 고리에 전선을 꿰고 전류를 흘리면 방향에 따라 자화 상태가 바뀌어 0과 1을 구분한다. 문제는 배선이었다. 비트마다 별도 전선을 두면 16KB 저장에만 10만 개가 넘는 전선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한 것이 '합치 전류 주소 지정' 방식이다. 코어를 격자로 배열하고 가로·세로 전선에 각각 코어를 뒤집는 데 필요한 전류의 절반씩만 흘리면, 두 전선이 교차하는 지점의 코어에서만 전류가 합쳐져 상태가 바뀐다. 코어 재료의 히스테리시스 특성 덕분에 작은 전류로는 상태가 유지되고 큰 전류에서만 반전되기 때문에 가능한 설계다.

읽기는 별도의 감지선을 모든 코어에 꿰어 처리한다. 선택된 코어를 강제로 0으로 뒤집을 때 원래 1이었다면 자기장 변화가 감지선에 미세 전류를 유도하고, 0이었다면 아무 일도 없다. 즉 읽는 순간 값이 파괴되므로, 읽은 뒤에는 원래 값을 다시 써 넣어야 한다. 워드 단위 접근을 위해 각 비트를 담당하는 평면을 층층이 쌓고, 평면마다 억제(inhibit)선을 두어 특정 비트만 0으로 유지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값을 기록한다. 여기에 전선 양끝에 드라이버를 배치하고 다이오드로 '누설 경로'를 차단하는 다이오드 매트릭스가 더해지면서 코어 메모리는 비로소 실용적인 저장 장치가 되었다.

1980년산이라 오히려 정교하다

스페이스랩 컴퓨터의 메모리는 1980년에 제조됐다. 코어 메모리로서는 상당히 늦은 시점이라, 그만큼 기술이 성숙하고 집적도가 높다. 코어 평면 보드는 네 장이며 각 보드가 18비트 워드 16K, 즉 32KB를 담아 전체 128KB를 이룬다. 16비트 컴퓨터이지만 워드마다 패리티 비트와 '저장 보호' 비트가 붙어 18비트가 된다. 저장 보호 비트는 워드 단위 쓰기 보호를 제공해 프로그램이 실수로 덮어쓰이는 것을 막았다. 코어 메모리는 비휘발성이므로 한 번 적재한 프로그램은 전원을 넣을 때마다 즉시 사용할 수 있었다.

한 장의 보드에는 세로선 1024개와 가로선 288개가 지나며 리튬 페라이트 코어 29만 4912개를 지탱한다. 코어 지름은 약 0.8mm로 IBM System/360과 비슷하지만 훨씬 촘촘하게 배열됐다.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보드 좌우가 독립된 감지선을 가져 18비트에 감지선이 36개 붙는다. 아주 얇은 전선을 인쇄회로기판의 작은 패드에 납땜하고, 감지선은 꼬임쌍선으로 처리해 미세 신호를 삼킬 수 있는 전기적 잡음을 억제했다. 보드 뒷면에는 다이오드 칩, 감지 증폭기, 바이어스·종단용 저항 패키지가 배치된다.

실무자가 눈여겨볼 지점

이 시스템은 오늘날의 설계 상식이 왜 그렇게 굳어졌는지를 거꾸로 비춰 준다. 코어 메모리 스택은 컴퓨터 부피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전도 냉각 방식이라 측면 패널에 단단히 고정해 열을 빼냈다. 이는 밀도와 신뢰성, 방열이 서로 맞물린 물리적 제약 아래에서 저장 장치를 설계해야 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메모리가 이겨낸 것은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이런 배선·조립·냉각의 복잡성 전체였다.

다만 이 이야기를 실무에 곧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코어 메모리는 이미 완전히 대체된 기술이며,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부품 선택이나 아키텍처 결정이 아니라 관점이다. 비휘발성, 워드 단위 쓰기 보호, 냉각을 고려한 물리 배치 같은 요구는 지금도 임베디드·우주·항공 시스템에서 형태만 바꿔 되풀이된다. 오래된 하드웨어를 뜯어보는 일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제약과 해법이 어떤 절충의 산물인지 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 원문은 수작업으로 40시간이 걸리던 코어 평면 배선이 자동화를 거쳐 2년마다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며 무어의 법칙과 유사한 곡선을 그렸다고 전한다. 결국 한 세대의 정점에 이른 기술도 다음 세대의 등장 앞에서는 정교함만으로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righto.com/2026/08/spacelab-core-mem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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