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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마다 깜빡이는 전력망, 범인은 배터리 저장장치의 '동시 점검'이었다

1분마다 깜빡이는 전력망, 범인은 배터리 저장장치의 '동시 점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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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망을 감시하는 운영자들에게 오래된 수수께끼가 하나 있었다. 유럽 전력망의 주파수가 정확히 60초마다 아주 짧게 내려앉는 현상이다. 독일 최대 송전망 운영사인 테넷(Tennet Germany)은 수년에 걸쳐 이 규칙적인 출렁임을 관측해 왔지만, 그 원인은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았다. 편차 자체는 전력망 안전을 위협할 만큼 크지 않았으나, 측정 가능할 정도로 뚜렷했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규칙적이었다. 독일 윌리히 연구센터(Forschungszentrum Jülich)의 디르크 비트하우트가 이끈 연구팀은 쾰른대학, 카를스루에공과대학과 함께 이 문제를 파고들어, 그 원인이 대규모 배터리 저장장치의 정기적인 충전 상태 점검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실렸다.

시계가 통제하는 신호

연구팀이 가장 먼저 좁혀 들어간 단서는 '정확히 60초'라는 주기였다. 비트하우트는 "원인이 시계에 의해 제어되는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금방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전력 거래로 발전소가 급격히 켜지고 꺼지는 영향, 재생에너지의 변동성 있는 출력, 각종 교란 요인이 주파수 패턴에 뒤섞여 있지만, 이처럼 시간에 딱 맞춰 반복되는 신호는 시계 기반 제어가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았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이런 효과가 나타나려면 수많은 기기가 동시에 전기를 소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단일 소비자나 발전기 하나로는 이 정도 규모의 신호가 만들어질 수 없으므로, 범인은 '여럿이 동시에 움직이는' 무언가여야 했다.

결정적 증거는 윌리히 캠퍼스의 연구 인프라인 '리빙 랩 에너지 캠퍼스'에서 나왔다. 연구팀은 80개 지점의 말단 기기에 측정점을 설치했고, 무정전 전원 공급을 담당하도록 설계된 대규모 배터리 저장장치가 있는 지점에서 정확히 동일한 주기 패턴이 관측됐다. 그중 하나를 들여다보니 매 분이 시작되는 순간 점검에 따른 소비 전력의 스파이크가 나타났다. 비트하우트는 이를 "수년에 걸친 탐정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표준이 없어서 생긴 우연한 동기화

핵심은 이 점검이 어떤 구속력 있는 표준도 없이 이뤄진다는 데 있다. 비트하우트는 대부분의 배터리 제조사가 '60초 간격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각자 판단했고, 그 시험 시점으로 매 분의 시작점을 똑같이 골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누가 조율한 것도 아닌데, 서로 다른 제조사의 수많은 장치가 결과적으로 같은 순간에 점검을 수행하면서 '의도치 않은 동기화'가 일어난 셈이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유럽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임을 확인했다. 또한 비트하우트는 배터리 저장장치가 문제의 일부일 뿐일 가능성도 열어 둔다. 에어컨, 히트펌프, 세탁기, 식기세척기처럼 디지털로 제어되는 가전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이 단순한 호기심 거리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실제 설비 마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요가 순간적으로 치솟으면 수력발전소의 터빈은 잠깐 회전이 느려졌다가 다시 원래 속도로 가속하는데, 이 반복이 기계적 피로를 키운다. 저장 기술이 확대될수록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데이터센터와 대규모 배터리 저장장치가 전체 전력 수요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는 아일랜드에서는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1분 신호의 진폭이 네 배로 커졌다. 저장장치가 급증한 지역일수록 신호가 뚜렷해진다는 방증이다.

실무자에게 남는 함의

주목할 점은 해법이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비트하우트는 점검을 항상 같은 시각에 시작하지 말고 무작위로 분산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각 장치가 정각이 아니라 임의의 시점에 충전 상태를 확인하도록 설계를 바꾸면, 개별 점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 발생만 흩어 놓아 합산 신호를 눌러줄 수 있다. 이는 설비 교체나 대규모 투자가 아니라 펌웨어 수준의 설계 관행 변경으로 접근 가능한 문제라는 뜻이다.

한국의 전력·에너지 실무자에게 이 연구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ESS와 디지털 제어 기기가 늘어나는 환경에서 '개별적으로는 무해한 동작'이 집단 수준에서는 측정 가능한 계통 교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이버-물리 시스템이 전력망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제어 로직의 타이밍 설계가 곧 계통 안정성 문제로 번역된다. 다른 하나는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점검·보고 주기 같은 세부 동작에 대한 표준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배터리 저장장치를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했을 뿐, 가전을 비롯한 다른 기기의 기여도는 아직 확증된 것이 아니라는 한계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저장장치와 그 제어 방식은 더 중요해지며, 이번 사례는 그 설계가 얼마나 세심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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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fz-juelich.de/en/news/archive/press-release/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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