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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드 치즈' 에세이는 어떻게 사람을 울렸나: 작고 완벽한 것의 힘

'그릴드 치즈' 에세이는 어떻게 사람을 울렸나: 작고 완벽한 것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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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글쓰기가 눈물을 유발한다는 말은 과장처럼 들린다. 하지만 셰프이자 진행자로 알려진 파드마 락슈미는 올해 나온 '베스트 아메리칸 푸드 앤드 트래블 라이팅' 서문에서 바로 그런 고백을 했다. 그가 지목한 글은 탈리아 라빈의 '노터블 샌드위치 #75: 그릴드 치즈'다. '노터블 샌드위치'는 라빈이 데이비드와 함께 위키백과의 '주목할 만한 샌드위치 목록'을 알파벳 순서로 훑어가는 연재물로, 이 그릴드 치즈 편은 그중 75번째 항목을 다룬다. 락슈미는 이 글을 두고 '입문자의 종교적 열정으로 쓰였고, 윙크를 던지면서도 도무지 진심을 감추지 않는다'고 평하며 '작고 완벽한 것에 대한 축복'이라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그 칭찬이 만든 연쇄 반응이다. 락슈미가 자신의 글에 울었다는 말에 라빈 본인도 울었다고 적는다. 그는 글쓰기가 무엇보다 외로운 일이며, 매일 자기 자신을 팔아야 하는 피로가 크다고 토로한다. 광장공포증을 안고 여러 도시를 도는 북 투어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눈물을 끌어냈다는 확인이 그 모든 수고를 견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 짧은 도입부는 완성된 결과물 뒤에 있는 창작자의 고립을 드러낸다.

작고 완벽한 것

에세이 본문에서 라빈은 비평가의 자리를 스스로 거부한다. 에어프라이어로 만든 것이든 크래프트 슬라이스로 만든 것이든, 버터를 어떻게 바르는지, 어떤 팬을 쓰는지, 재료가 무엇인지 그는 따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원더브레드든 손수 기른 18곡물 빵이든, 체다든 정체불명의 가공 치즈든, 팬이든 토치든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에게 그릴드 치즈는 이 학살과 불로 가득한 세상에서 드물게 확인 가능한 '작고 완벽한 것'이며, 두 완전한 재료인 빵과 치즈가 만나 더 완전한 결합을 이룬다. 논쟁하고 흠잡기보다 이 샌드위치를 하나의 이상, 그 자체로 완결된 사물로 바라보자는 태도다.

이 주장은 감상적 예찬으로 흐를 수도 있었지만, 라빈은 문학을 발판으로 삼아 밀도를 확보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오드' 한 구절—달이 높이 떠 있기에 모든 웅덩이에 온전히 비친다는 이미지—을 통해 각각의 그릴드 치즈가 저마다 온전히 그 자신이라고 말한다.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레몬나무 시, 데니스 레버토프가 노력 끝에 도달하는 기쁨을 노래한 시, 니콜 캘리핸의 시행이 차례로 인용된다. 기쁨은 저절로 오지 않으며, 응시와 노력을 거쳐 다가온다는 것이 이 인용들을 관통하는 논리다.

일상적 기쁨의 실무적 함의

라빈이 긋는 가장 유용한 구분은 두 종류의 기쁨 사이에 있다. 삶을 드물게 스치는 '구름을 뚫는 빛줄기 같은' 초월적 기쁨이 있고, 빛처럼 흔하고 필수적인 '일관되고 평범한 기쁨'이 있다. 그는 후자가 오히려 더 값질 수 있다고 본다. 신뢰할 수 있고 반복 가능한 만족은 손바닥에 쥐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릴드 치즈는 황홀경이 아니라 만족을 주며, 만족은 얻기 쉽고 받아들이기에 덜 아찔하다.

이 대비는 음식 밖에서도 읽힌다. 오래 붙잡고 있는 큰 돌파구만을 성취로 여기다 보면, 매일 확실하게 돌아오는 작은 완결의 가치를 놓치기 쉽다. 라빈은 우리의 감각이 걱정에 무뎌지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이라고도 적는다. 모든 완벽한 것—가을 나무의 불꽃, 혀에 닿는 찬물—을 온전히 느낀다면 경탄에 잠겨 아무 일도 못 하고 아무도 태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비효율을 인정하며 '조금 더 많은 경탄, 조금 더 많은 기쁨'을 위한 여지를 요청한다. 매일의 노동을 지속시키는 것이 거창한 성과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작은 만족이라는 통찰은, 소진이 흔한 지식 노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이 글의 성격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레시피나 비교 분석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명상이며, '재료에 무관심하다'는 선언 자체가 그 점을 못박는다. 실용적 정보를 기대하고 온 독자에게는 남는 것이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천국에 가면 '신과 마리아와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보게 될 거라 답했다는 한 독자의 댓글은, 이런 종류의 글이 정보 대신 무엇을 전달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기쁨은 침식되고 어떤 상태도 고정되지 않지만, 빛이 돌아오듯 다시 오리라 기대할 수 있다—라빈이 남기는 것은 결국 그 감각의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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