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6분 읽기 25 READS

프로파간다에서 반전으로: 아키모토가 다시 읽는 미야자키의 '붉은 돼지'

프로파간다에서 반전으로: 아키모토가 다시 읽는 미야자키의 '붉은 돼지'
SOURCE IMAGE · HACKER NEWS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전쟁과 떼어놓기 어려운 매체였다. 연구자 로파(Roffat 2011)가 지적하듯 애니메이션 만화와 영화는 역사적으로 전쟁 '프로파간다'로 동원되어 왔다. 그러나 같은 매체가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다. 다카이(Takai 2011)는 일부 애니메이션이 오히려 반전·평화주의적 시각을 전달한다고 보았고, 오쿠다(Okuda 2003)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1992)를 아예 '반전 프로파간다'로 분류했다. 아키모토(Akimoto)가 2014년 Animation Studies Journal에 발표한 논문은 바로 이 지점, 즉 전쟁을 미화하는 도구였던 형식이 어떻게 전쟁에 반대하는 서사로 뒤집히는지를 '붉은 돼지'를 통해 분석한다.

전투기를 사랑한 감독의 모순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미야자키 개인의 모순부터 짚어야 한다. 기리도시(Kiridoshi 2008)에 따르면 미야자키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이른바 전간기(戰間期)에 설계·제작된 비행정(수상기)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무기이자 전쟁 기술의 산물인 기계에 대한 애정과, 전쟁 자체에 대한 거부가 한 작가 안에 공존하는 것이다. '붉은 돼지'는 이 긴장을 숨기지 않는다. 지중해 상공, 수상기가 바다를 지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기계와 비행에 대한 낭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기계가 동원되는 전쟁의 폭력에는 분명한 거리를 둔다. 아키모토의 논문이 '군국주의', '민족주의', '불살생(non-killing) 원칙' 같은 키워드를 중심에 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품의 뿌리도 이 맥락과 닿아 있다.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가 직접 그린 만화 '비행정 시대(飛行艇時代, Hikotei Jidai)'의 15쪽 분량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만화는 1990년 모형 전문지 모델 그래픽스(Model Graphics) 14~16호에 연재되었다. 영화 도입부에는 원작의 줄거리가 문자 그대로 '타이핑된' 자막으로 제시되는데, 지중해 상공 수상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용감한 돼지'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그것이다. 취미적 기계 애호에서 출발한 짧은 만화가 장편 반전 우화로 확장된 셈이다.

걸프전과 유고 내전이라는 현재성

아키모토가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이 영화가 단지 전간기라는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품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기억과 함께, 탈냉전 세계의 기억까지 끌어안는다. 미야자키는 개봉 직전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걸프전과 관련이 있다고 직접 언급했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민족적·국가주의적 갈등으로 지목했다. 즉 1920~30년대를 그린 애니메이션이 1990년대 초의 실제 전쟁을 겨냥한 발언과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외피를 쓴 우화가 당대의 분쟁을 향한 비판으로 기능한다는 해석은 이 연결 고리에서 나온다.

한국 실무자에게 주는 함의

이 분석은 콘텐츠를 다루는 실무자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첫째, 매체의 형식 자체에는 정치적 방향성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프로파간다로 쓰이던 애니메이션이 반전 메시지의 그릇이 되는 과정은, 같은 기술과 양식이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작가가 사랑하는 대상(미야자키의 경우 전투용 기계)과 작가가 전하려는 가치(반전)가 충돌할 때, 그 충돌을 억지로 봉합하지 않고 작품의 긴장으로 남겨 두는 방식이 오히려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셋째, 역사적 배경을 빌려 당대의 현안을 말하는 우회 전략은 직설적 메시지보다 검열과 거부감을 피하면서 더 넓은 관객에게 가닿을 수 있다.

다만 이 논문은 어디까지나 학술적 텍스트 분석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붉은 돼지'를 반전 프로파간다로 규정하는 것은 오쿠다를 비롯한 선행 연구와 미야자키 본인의 발언에 기댄 해석이며, 작품을 그저 기계와 비행에 대한 향수 어린 오락물로 보는 관객의 수용은 또 다른 문제다. 창작자의 의도와 관객의 실제 해석 사이의 간극, 그리고 '반전을 말하기 위해 전쟁의 낭만을 그려야 하는' 역설은 이 영화가 남긴 해결되지 않은 질문으로 남는다. 아키모토의 작업은 그 질문을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journal.animationstudies.org/article/id/66/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