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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 진짜 공포는 살인이 아니라 '자기 파괴'라는 충동에 있다

포의 진짜 공포는 살인이 아니라 '자기 파괴'라는 충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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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떠올리면 대개 잔혹한 범죄와 시체, 병적인 분위기가 먼저 연상된다. 그러나 문학 연구자 에밀리 오그던은 포의 공포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스스로 털어놓는 '고백'의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검은 고양이」나 「고자질하는 심장」에서 화자는 들키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다. 왜 인간은 자기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그것이 파괴적임을 뻔히 알면서도 저지르는가. 이 물음은 19세기 소설가의 문제의식이지만, 자기 통제와 의사결정을 다루는 오늘날의 논의에도 낯설지 않게 이어진다.

성공 직전에 무너진 편집자

포의 삶 자체가 이 주제의 사례에 가깝다. 1841년 서른두 살의 포는 당시 미국 잡지 출판의 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에서 『그레이엄스』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최대 발행부수 4만 부에 달했던 이 잡지는 기고자와 편집자에게 비교적 후한 보수를 지급하던 곳이었고, 책보다 잡지가 돈이 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포는 안정된 자리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잡지를 중간 수준으로 낮잡아 보았고, 자기 잡지 『스타일러스』를 창간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혀 1년여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창간을 준비하며 포는 자신을 시적 천재이자 사업 수완을 갖춘 인물로 포장하는 전기를 지역 신문에 싣게 했다.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하려 항해했다는 허구, 이전 잡지의 발행부수를 극적으로 끌어올렸다는 과장이 뒤섞여 있었다. 연구자 테런스 웨일런에 따르면 실제로 포는 그 잡지 판매에 '사실상 무관한 변수'였다. 게다가 그레이엄스를 떠난 뒤 수입이 끊기자 그는 정부의 한직을 얻어 창간 비용을 충당하려 했고, 1843년 워싱턴으로 대통령의 아들을 만나러 갔다.

스스로 망친 워싱턴 출장

이 여정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소개를 맡기로 한 친구가 병으로 나서지 못했고, 포는 과음해 공개적으로 추태를 부렸다. 함께 있던 제시 다우는 포의 동업자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데려가라고 청할 정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 편지의 어조가 비난이 아니라 연민이었다는 것이다. 다우는 "그는 정치가들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해하겠는가"라며, 최고 수준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적었다. 포는 결국 한직도 얻지 못했고 『스타일러스』도 끝내 창간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는 사과 편지를 보내며 이발소에 들러 자신이 진 외상까지 갚아 달라고 부탁했다.

포는 술에 취했을 때, 때로는 맨정신일 때조차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채로 자기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는 이 성향을 「검은 고양이」와 「심술궂은 마귀」에서 '심술(perverseness)', 곧 "스스로를 괴롭히려는 영혼의 헤아릴 수 없는 갈망"이라 불렀다. 포에게 이것은 배고픔이나 성욕만큼 근원적인 충동이며, 이성적 판단뿐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욕망에까지 거스르는 힘이었다.

낭떠러지 앞의 사고 실험

포가 든 예시는 구체적이다. 파티에서 상대를 화나게 할까 두려워하면서도,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화를 돋우고 싶은 충동이 커져 결국 말을 내뱉는 사람. 파괴를 상상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마는 심리다. 낭떠러지 끝에 서면 떨어지는 상상이 곧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처럼 뒤바뀐다. 개념화가 욕망과 뒤섞이는 이 순간의 감각을 포는 "피를 얼리는 오싹함"으로 묘사했다. 오그던은 차 지붕에 지갑을 올려둔 채 운전해 떠난 자신의 실수를 예로 들며, 그 오싹함이 마치 시간을 되돌려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몸의 반응 같았다고 고백한다.

오그던은 이 심술을 프로이트가 약 70년 뒤 제시한 '죽음 충동'과 나란히 놓는다. 프로이트는 손자가 아끼는 장난감을 스스로 던져 버리는 놀이(fort/da)를 관찰하며, 아이가 어머니의 부재라는 위협을 반복해 재현함으로써 그것을 지배하려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조차 이 설명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 안에 생명 이전의 무기물 상태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해체해 다시 물질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포가 말한, 낭떠러지 구름 속에서 솟아오르는 '악마보다 더 끔찍한 것', "하나의 생각에 불과한" 그 무엇과 겹치는 지점이다.

이 논의는 오래된 미학적 역설과도 맞닿는다. 현실에서 마주치면 끔찍할 일이 예술 속에서는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고통스러운 감정을 배출하는 카타르시스로 설명했고, 프로이트라면 감당하지 못했던 상처를 견딜 만한 형태로 다시 경험해 소화하는 과정이라 말했을 것이다. 실무적으로 곱씹어 볼 대목은, 포와 오그던의 통찰이 '왜 사람은 스스로를 방해하는가'라는 물음을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구조적 특성으로 본다는 점이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문학·정신분석의 언어로 쓰인 해석이며, 검증된 신경과학적 결론이 아니라는 한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자기 파괴적 선택을 의지박약으로만 환원하지 않고 그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200년 가까이 지난 포의 자백은 여전히 곱씹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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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yalereview.org/article/emily-ogden-edgar-allan-p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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