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몇 주 동안 테트리스를 하다 보면 구름이나 건물, 주변 사물에서 테트로미노 모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들기 직전 눈앞에 블록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심리학에서 '테트리스 효과'로 불리는 이 현상은 재현하기 쉬운 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원문 필자는 여기서 단순하지만 묵직한 교훈을 끌어낸다. 충분히 오래 집중한 대상은 결국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본래 학습과 발견의 메커니즘이다. 무언가에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문제는 오늘날 그 주의(attention)를 우리 스스로 배분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든다는 데 있다. 무엇을 볼지 직접 고르는 대신,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를 남이 정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는 진단이다. 필자의 표현을 빌리면, 화면에 무엇이 뜰지를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곧 내 뇌의 열쇠를 넘겨주는 일과 같다.
추천 알고리즘이 설계한 주의의 흐름
원문은 익숙한 서비스들을 하나씩 짚는다. 요리와 아트 스트리밍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유튜브는 거기에 주식 거품, 기후위기, 전쟁 관련 클립을 슬쩍 끼워 넣는다.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이 체류 시간을 늘리고 광고 클릭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는 로열티 지급을 피하려는 'AI 슬롭'이 실제 곡 사이에 섞여 든다. 링크드인은 동료의 실제 커리어 소식을 낯선 사람들의 의견 아래 파묻고, 레딧의 사용자 후기는 이제 LLM과 트롤이 뒤섞인 대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들의 사실관계나 인과는 필자 개인의 관점이며 검증된 통계가 아니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다만 실무자 입장에서 눈여겨볼 것은 개별 서비스의 도덕성이 아니라 공통된 설계 구조다. 참여도(engagement)를 최적화하도록 맞춰진 추천 시스템에서, 사용자에게 '가장 유익한 콘텐츠'와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콘텐츠'는 자주 어긋난다. 우리가 만들거나 운영하는 서비스의 지표 설계 역시 같은 긴장 위에 놓여 있다.
'의도적인 인터넷'은 사라지지 않았다
필자는 추천 알고리즘 이전의 웹을 회고한다. 그때는 열어서 '나를 즐겁게 해줘'라고 명령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앱이 없었다. 대신 게임 뉴스 사이트, 튜토리얼이 많은 웹사이트, 자주 갱신되지 않던 애니메이션 블로그, 90년대 드라마 위키처럼 저마다 목적이 분명한 북마크 수십 개가 있었다. 끔찍한 콘텐츠도 존재했지만, 그것을 보려면 사용자가 직접 찾아 들어가야 했다. 팬케이크 레시피나 고양이 영상 다음에 극단적 이미지가 '추천'으로 따라붙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의도적인 인터넷'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기업형 웹 아래 다소 묻혀 있을 뿐, 찾기 어렵지 않다. 블로그와 RSS 피드, 끝내지 못한 튜토리얼로 돌아가려면 콘텐츠가 무한하지 않고 매 클릭마다 갱신되지도 않는 '느린 인터넷'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와 지금의 결정적 차이가 서비스가 아니라 '사용자 자신'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IT 실무자에게 이 글은 두 층위로 읽힌다. 하나는 소비자로서의 습관이다. 피드에 흘러드는 정보로 기술 판단을 대신하기보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 읽는 원천 자료와 1차 문서, 직접 구독한 피드의 비중을 의식적으로 회복하자는 제안이다. 다른 하나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이다. 체류 시간과 클릭을 유일한 성공 지표로 삼는 순간, 우리는 사용자의 주의를 대신 설계하는 쪽에 서게 된다.
물론 이 글은 개인 블로그의 에세이이며, 데이터로 뒷받침된 분석이라기보다 관점의 표명에 가깝다. 알고리즘 추천이 정보 접근성과 발견성을 높인 긍정적 측면은 다루지 않고, 대안으로 제시된 '느린 인터넷' 역시 정보 편식이나 접근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핵심 메시지는 유효하다. 주의는 유한한 자원이고,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가 결국 우리의 사고를 빚는다. 습관이 대개 그렇듯, 방법은 단순하다. 의식적으로 계속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