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6분 읽기 25 READS

인터넷도 끊기는 배 위에서, 자기 도구를 손수 짓는 개발자들

인터넷도 끊기는 배 위에서, 자기 도구를 손수 짓는 개발자들
SOURCE IMAGE · HACKER NEWS

Hundred Rabbits는 10년 넘게 작은 돛단배 '피노(Pino)'에서 생활하며 소프트웨어와 그림, 글을 만들어 온 2인 창작 집단이다. 이들의 월간 기록을 읽다 보면 화려한 신제품 발표와는 거리가 먼, 그러나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작업 방식이 드러난다. 해안의 통신 신호는 수시로 끊겨 며칠씩 완전히 두절되기도 하고, 업로드를 마치려고 노트북을 든 채 무릎 높이 고사리밭이 깔린 산꼭대기에 올라 신호를 기다린다. 85%에서 멈춰 버린 전송을 바라보며 모기에 물리는 풍경은, 안정적인 네트워크와 클라우드를 당연히 여기는 환경과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이런 제약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기술 선택을 설명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과 도구 상당수를 Uxn이라는 가상 머신과 그 어셈블리 언어 Uxntal로 작성한다. Uxn은 16비트 규모의 작고 단순한 실행 환경으로, 무거운 툴체인 없이도 돌아가고 여러 기기로 옮기기 쉽다. 올해 이들은 원작 출시 10년 만에 'Donsol'을 애니메이션 스프라이트와 게임 내 매뉴얼을 더한 결정판으로 다시 내놓았고,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하거나 Uxn 에뮬레이터로 돌릴 수 있게 했다. 또한 Playdate용 Uxn 에뮬레이터의 문제를 고쳐 기존작 'Oquonie'도 함께 손봤다.

상용 도구를 버리고 직접 만든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범용 소프트웨어 대신 스스로 도구를 짓는 태도다. 이들은 오픈오피스가 느리고 무겁다는 이유로 'Nebu'라는 자체 스프레드시트를 만들어 지난 1년간 살림과 작업 기록에 써 왔고, 이번 달에도 소소한 개선을 더했다. 자신들이 게임 자산을 저장하는 독자 파일 형식을 열어 보는 이미지 뷰어, 롬 메타데이터를 확인하는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었다. 리눅스 배포판 Arch에서 volumeicon 같은 핵심 유틸리티가 갑자기 동작을 바꾸거나 방치되자, 한 시간 만에 'Pavol'이라는 볼륨 조절 도구를 만들어 대응한 일화도 있다. 16픽셀을 넘는 글꼴을 다루지 못하던 폰트 도구 'Turye'도 Donsol 작업에 필요해지자 직접 고쳐 썼다.

이런 방식은 생산성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외부 도구의 갑작스러운 변경이나 방치, 즉 의존성의 불확실성을 자기 통제 아래 두려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실무적 함의가 있다. 쓰임이 분명하고 범위가 좁은 도구라면, 거대한 범용 소프트웨어보다 손수 만든 작은 프로그램이 오래 살아남고 유지 비용도 낮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보존과 언어에 대한 집착

또 하나의 축은 '오래 남는 것'에 대한 관심이다. 구성원 중 한 명(Devine)은 소프트웨어 아카이빙을 주제로 스웨덴에서 열리는 Oredev 2026에 연사로 초청받아 이번 달 상당 시간을 발표 자료 준비에 썼다. 소프트웨어 증명을 재현하기 어렵고 툴체인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들이 수학자 주세페 페아노의 작업에 몰두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페아노가 언어 장벽을 넘어 수학적 아이디어를 전하려 고안한 보조어 '라티노 시네 플렉시오네'를 BNF 문법으로 형식화하려는 시도, 자연수 공리를 다루는 실험, 그리고 'Rejoice'라는 새 표기법이 그 연장선에 있다.

언어에 대한 관심은 협업 제안으로도 이어진다. 이들은 서로 고립된 여러 Catlang 방언 사이의 교환 언어로 1970년대의 거의 사장된 언어 POP-2를 되살려 볼 수 있을지 보기 위해, 연쇄형(concatenative) 프로그래밍을 하는 이들에게 각자의 언어로 POP-2 컴파일러를 구현해 보자는 공개 제안을 던졌다. 암호화 영역에서는 아날로그 항해 기술을 만화로 가르치려는 'Rabbit Waves' 프로젝트에 일회용 암호표(One-Time Pad)로 메시지를 암호화·복호화하는 법, 잡음 섞인 신호를 펜과 종이만으로 다루는 법 등을 다룬 페이지를 더했다.

이들의 작업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실무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수익이나 사용자 규모 같은 외적 동기가 거의 없는, 느린 여름의 긴 하루가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만큼 재현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한 좁은 목적의 자체 도구는 팀 규모가 커지거나 외부와 연동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의존성을 줄이고, 도구의 수명과 통제권을 스스로 쥐며, 작고 이식성 높은 스택으로 결과물을 오래 남기려는 이들의 태도는, 끊임없이 바뀌는 플랫폼 위에서 일하는 개발자에게 한 번쯤 생각해 볼 질문을 던진다. 내가 쓰는 도구 중 몇 년 뒤에도 그대로 돌아갈 것은 얼마나 되는가.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100r.ca/site/home.html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