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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설명 한 줄로 PCB를 만들다: Fable 5로 완성한 E-ink 개발 보드 실험기

영어 설명 한 줄로 PCB를 만들다: Fable 5로 완성한 E-ink 개발 보드 실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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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를 다뤄본 적 없는 사람이 회로 설계 도구를 한 번도 열지 않고, 오직 영어 설명만으로 동작하는 인쇄회로기판(PCB)을 주문받아 손에 쥐는 일이 가능할까. 한 개발자가 실제로 이 실험을 진행하고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드는 정상 동작했지만, 그 과정은 자동화 도구의 현재 수준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글쓴이는 몇 년 전부터 간단한 PCB를 직접 설계해 보고 싶었지만 계속 미뤄왔다. 처음 Claude Opus 4.8에게 곧바로 PCB 생성을 맡겼을 때는 결과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부품의 방향을 이해하지 못했고 배선(routing)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이런 도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Fable 5라는 도구가 등장했고, 어느 목요일 저녁 다시 한번 시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설계 단계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자신을 '최종 고객'으로만 두겠다는 규칙을 세웠다.

방향은 잡았지만 디테일에서 어긋난 자동 설계

주문 사양은 짧았다. RP2350 기반의 개발 보드가 E-ink 디스플레이를 구동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Fable은 몇 시간 동안 자율적으로 작업해 초기 설계를 내놓았는데, 문제는 곳곳에 있었다. 동료가 가장 먼저 확인하라고 지적한 것은 DRC(설계 규칙 검사) 오류였고, 실제로 65개가 잡혔다. 글쓴이는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오류가 있다는 사실만 Fable에 알리고 직접 손대지 않았다.

부품 선정은 대체로 훌륭했지만 두 곳에서 패키지가 어긋났다. 펌웨어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SPI 플래시로 선택된 W25Q128JVS는 SOIC-8 와이드 패키지인데, 보드의 패드는 더 작은 SOP-8용으로 그려져 칩이 패드보다 컸다. E-ink 구동용 부스트 컨버터를 스위칭하는 트랜지스터는 반대로 패키지가 패드보다 작았다. 이 문제는 JLCPCB에 파일을 올리고 나서야 드러났다. W25Q128JVS에 대해 Claude는 SOP-8 패키지가 존재한다고 우겼지만 LCSC 라이브러리에서 찾을 수 없었고, 결국 P25Q64SH 칩으로 타협했다. 자동화 도구가 그럴듯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부품 정보를 고집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배선의 병목, 그리고 오픈소스 도구의 격차

설계는 65개 풋프린트, 54개 넷, 118개의 미연결 라인으로 구성됐다. 그리 복잡한 보드는 아니었다. Fable은 오픈소스 프로젝트 Freerouting을 써서 배선을 시도했는데, 2분 동안 17번의 패스를 돌리고도 69개 연결에서 정체됐고 49개를 연결하지 못한 채 멈췄다. 나머지는 Claude가 수작업으로 배선했다. 흥미로운 점은 주문을 넣은 뒤 동료가 알려준 KiCadRoutingTools라는 다른 오픈소스 도구를 돌려보니, 단 1.25초 만에 모든 연결을 문제없이 끝냈다는 것이다. 같은 작업이라도 어떤 배선 엔진을 붙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점은, 이런 파이프라인을 구성하려는 실무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조 발주 과정 자체는 의외로 매�끄러웠다. PCB 제조사에 무언가를 주문해 본 적이 없던 글쓴이는 Claude에게 JLCPCB용 파일 준비와 GUI에서 선택할 항목까지 안내받았다. 일부 부품은 재고가 없어 몇 차례 조율이 필요했지만, 조립까지 완료된 보드 5장에 130유로를 지불했다. E-ink 디스플레이는 현지 상점에서 따로 구했다. 완성된 보드는 3.3V와 접지 사이 단락을 점검한 뒤 노트북에 꽂자 곧바로 인식됐고, 직접 작성한 개념검증 앱들도 문제없이 돌아갔다. 전원을 꺼도 이미지가 남는 E-ink 특성을 살린 앨범 기능을 그는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완성의 편리함과 사라진 성취감 사이

이 실험이 던지는 실무적 함의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전문 지식 없이 아이디어를 영어 문장으로 서술하는 것만으로 실제 동작하는 하드웨어를 받아볼 수 있다는 접근성의 확장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패키지 불일치나 배선 실패처럼, 최종 검수 단계에서 사람이 잡아내지 않으면 그대로 제조로 넘어갈 오류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JLCPCB 업로드 시점에야 문제가 보였다는 대목은, 이런 워크플로에서 제조 직전 검증이 왜 필수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글쓴이 스스로도 미묘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배우고 씨름하며 얻던 성취감이 옅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직장에서는 무엇 하나 대충 넘길 수 없어 꼼꼼히 검토하고, 그 검토에서 자신의 판단이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고 했다. 반면 취미 프로젝트에서는 세부를 몰라도 빠르게 만들어보는 방식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다음 작업으로 Fable 5.1과 KiCAD, KiCadRoutingTools를 조합해 NVIDIA 젯슨 오린 나노 기반 태블릿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취미의 영역에서는 유용한 지렛대이되, 검증 책임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이 실험의 가장 현실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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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a6mzero.com/posts/this-pcb-is-brought-to-you-by-fa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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