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랭킹 1위 프로기사 신진서가 정상급 인공지능 바둑 엔진 카타고(KataGo)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 승부를 완성했다. 한국경제신문 주최로 7월 17일, 19일, 21일 서울 한경 본사에서 열린 3번기에서, 신진서는 두 점을 미리 깔고 두는 접바둑 조건으로 세계 최정상급 엔진과 맞붙었다. 첫 판은 17일 금요일에 시작됐고, 19일 일요일 두 번째 대국에서 신진서는 4집반 차이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1승 1패로 원점으로 돌린 뒤, 21일 화요일 마지막 판에서 승부를 마무리했다.
이번 대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상대가 알파고 이후 사실상 인간이 따라잡기를 포기한 영역, 즉 최상위 AI 엔진이기 때문이다. 카타고는 오픈소스 기반으로 발전해 온 강력한 바둑 엔진으로, 프로 최정상 기사도 호선(맞바둑)으로는 승산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평가돼 왔다. 그래서 이번 대국은 처음부터 인간이 두 점을 접고 시작하는 핸디캡 방식으로 설계됐다. 신진서가 19일 대국에서 거둔 승리는 이 엘리트 엔진을 상대로 프로가 이긴 첫 사례로 기록됐다.
두 점 접바둑이라는 조건의 의미
두 점 접바둑은 흑이 미리 두 개의 돌을 반상에 놓고 시작하는 방식으로, 실력 차가 분명한 상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래 쓰여 온 전통적 장치다. 바꿔 말하면, 신진서가 이겼다는 사실 자체보다 '두 점을 접어야 비로소 승부가 성립했다'는 조건이 현재 인간과 AI의 격차를 더 정확히 드러낸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상대로 호선에서 한 판을 따냈던 것과 이번 승부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는 대등한 조건에서의 1승이었고, 이번은 핸디캡을 전제로 한 승부다.
동시에 이 조건을 폄하할 필요도 없다. 핸디캡이 주어졌더라도, 두 점을 접고 최상위 엔진을 상대로 실제로 이겨내는 일은 여전히 극히 어렵다. AI는 초반의 작은 우위를 끝까지 흔들림 없이 관리하는 데 강하기 때문에, 접바둑에서 인간이 초반 이점을 종반까지 지켜내는 것은 계산과 심리 양면에서 부담이 크다. 19일 대국의 4집반이라는 근소한 차이는 그 승부가 마지막까지 팽팽했음을 보여준다.
실무자가 읽어야 할 지점
AI를 다루는 IT 실무자 관점에서 이번 이벤트가 주는 시사점은 '인간이 AI를 이겼다'는 표제가 아니라, 인간과 AI를 어떻게 겨루게 할지 그 설계 방식에 있다. 성능이 압도적으로 벌어진 시스템과 사람을 비교할 때는 동일 조건 대결이 더 이상 유의미한 정보를 주지 못한다. 대신 핸디캡, 시간 제약, 정보 비대칭 같은 조건을 조정해 '어느 지점에서 균형이 맞는가'를 측정하는 편이 실질적인 실력 격차를 정량화하는 데 유용하다. 이는 자동화 도구를 도입할 때 사람과 시스템의 역할 분담선을 어디에 그을지 고민하는 문제와도 닮아 있다.
또한 카타고가 오픈소스 계보에서 성장한 엔진이라는 점은, 최상위 성능이 더 이상 특정 기업의 폐쇄적 자산만이 아니라는 흐름을 보여준다. 알파고가 구글 딥마인드의 독점적 성과로 각인됐던 것과 달리, 이후의 강력한 바둑 엔진들은 공개된 방식으로 확산됐다. 성능의 최전선이 공개 생태계로 넘어오면, 그 기술을 누가 어떤 조건에서 활용하느냐가 오히려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남는 한계
다만 이번 대국을 두고 인간이 AI를 따라잡았다거나 격차가 좁혀졌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승부의 전제가 두 점 핸디캡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3번기라는 짧은 표본에서 나온 결과를 일반화하기도 어렵다. 이벤트성 대국은 규칙, 시간 설정, 엔진의 세팅 등 세부 조건에 결과가 크게 좌우된다. 참고로 이세돌 9단은 자신의 알파고 승리 대국을 소재로 대체불가토큰(NFT)을 발행한 바 있는데, 이는 인간과 AI의 상징적 대결이 어떻게 문화적·상업적 콘텐츠로 소비되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기도 하다. 신진서의 이번 승리 역시 스포츠이자 하나의 사회적 이벤트로서, 기술적 함의와 상징적 서사를 함께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