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진가가 몇 해에 걸쳐 거리의 벤치를 찍어왔다. 때로는 사람이 쓰도록 설계되었지만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사물에 매료되어 의도적으로, 때로는 그저 피사체 옆에 놓여 있어서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지난해 자신의 아카이브를 되돌아보던 그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벤치에 끌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충격을 준 것은 그 벤치들이 조금씩 변해왔다는 점이었다. 양 끝이 아니라 좌석 한가운데에 팔걸이가 생기고, 길게 이어지던 벤치가 어색한 간격으로 분리된 개별 좌석으로 바뀌고, 누우면 불편하도록 미묘하게 굽은 곡선과 기묘한 형태가 더해져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 혹은 반사회적 거리 설비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며 대략 1970년대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난 20년 사이 점점 흔해졌고 런던의 '캠든 벤치' 같은 유명한 사례도 나왔다. 저자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공공 공간에서 밀어내기 위한 좌석의 은밀한 재설계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장 한 장 기록해온 셈이었다.
의도보다 늦게 도착하는 의미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은 자신에게 무의식적 천재성이나 역사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있었다는 게 아니다. 그가 깨달은 것은, 사진을 오랜 기간 꾸준히 실천하면 결국 '스스로 되돌아 말을 거는' 아카이브가 쌓인다는 사실이다. 사진에서의 주의력은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만큼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다. 사진가는 모든 것을 보고 계획하며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결정을 내린다는 통념이 있고, 카르티에브레송 같은 인물이 그런 이미지를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언가가 시선을 끌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카메라를 향하고,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은 나중에 이미지를 다시 들여다볼 때에야 도착한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이 '이미 생각하고 있던 것을 촬영하는 일'과 다르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주제를 정해놓고 찍었다면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삽화에 가깝다. 저자는 적대적 건축을 기록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사진들은 단지 사람들이 앉는 장소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적 비평은 많은 사진을 한꺼번에 들여다보기 시작한 뒤에야, 계획되지도 요청되지도 않은 채 찾아왔다. 바로 그 점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평소 우리는 사진을 한 장씩 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포함시키려 한 적 없는 패턴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전체를 검토할 때 비로소 떠오른다.
실무자가 가져갈 수 있는 함의
저자의 통찰은 카메라 자체가 일관된 맥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카메라가 적대적 건축에 관심을 갖기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 실마리를 만드는 것은 촬영자의 호기심이며, 그 호기심이 세부를 아카이브 안으로 흘려보내고, 그것들은 어느 날 깨달음이 닥치기 전까지 눈에 띄지 않은 채 그 안에 머문다. 이 구조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넘어, 데이터를 다루는 모든 실무자에게 익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긴 로그, 수집해둔 데이터셋, 쌓아온 커밋 이력과 이슈 기록은 수집하는 순간에는 특정한 결론을 염두에 두지 않은 원석에 가깝다. 의미는 나중에, 충분한 양이 모이고 한 걸음 물러나 전체를 조망할 때 드러난다.
다만 저자의 경험에는 명확한 한계도 담겨 있다. 패턴은 어디까지나 사후적으로, 그리고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는 '리뷰'라는 능동적 행위가 있어야만 모습을 드러냈다. 파일 안에 수년간 증거가 살아 있었지만, 그것을 들여다보는 행위 없이는 자신이 무엇을 목격해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꿔 말하면, 꾸준히 축적하는 습관과 거리를 두고 되돌아보는 습관이 함께 갖춰질 때에만 아카이브는 비로소 되돌아 말을 건다. 수집 자체가 자동으로 통찰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저자는 결국 자신이 '비자발적 목격자'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지방 관청의 누군가가, 공공 공간을 가장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덜 머물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합리적 대응이라 여겼고, 그 결정의 흔적이 자신의 파일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축적된 작업물을 일정한 거리에서 다시 마주하는 일이 때로는 의도된 기획보다 더 정직한 기록과 비평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꾸준한 아카이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