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저작물의 디지털 복제본을 시민이 열람할 수 있는가. 미국의 3D 스캔·오픈 컬처 활동가 코스모 웬먼(Cosmo Wenman)이 2017년 프랑스 로댕 미술관을 상대로 시작한 정보공개 요청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은 이미 저작권이 소멸한 퍼블릭 도메인이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복제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웬먼은 미술관이 보유한 이들 조각의 3D 스캔 데이터를 식별하고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8년에 걸친 이 사건은 2025년 12월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인 국사원(Conseil d'État)의 판결로, 활동가 측의 패소로 마무리됐다.
하급심에서의 부분 승리
파리에 기반을 둔 시민권 변호사 알렉시스 피츠진 오 코브타이(Alexis Fitzjean Ó Cobhthaigh)가 사건을 맡아 공식 공개 청구를 보내자, 미술관 측은 프랑스 정부의 행정문서접근위원회(CADA)에 자체 법률 검토를 의뢰했다. CADA의 의견은 청구인에게 유리했다. 미술관의 스캔은 명백한 행정문서이므로 공개 대상이라는 것이다. 미술관장은 이 분석을 반박하지 않았으나, 문화부에 보낸 서면에서 정보공개법을 무시하고 소송으로 끌고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웬먼은 전한다.
2019년 제기된 소송에는 오픈 컬처·디지털 권리 단체인 코뮤니아(Communia), 위키미디아 프랑스, 라 콰드라튀르 뒤 네(La Quadrature du Net)가 공동 원고로 합류했다. 웬먼의 서술에 따르면 미술관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스캔의 존재 여부를 흐리고, 공공 자금 지원 신청서가 없다고 주장하다가 별도 정보공개 절차로 그 문서가 드러나자 입장을 바꾸는 등 모순된 주장을 거듭했다. 특히 레이저로 스캔한 고해상도 점군(point cloud) 데이터가 평문 개방 포맷임에도 너무 불완전하고 난해해 미술관 스스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2023년 12월 파리 행정재판소는 영업비밀, 위조, 수익모델, 지식재산권 관련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여러 포맷의 3D 스캔이 행정문서라고 판단해 공개와 1,500유로 배상을 명령했다. 다만 재판부는 개방 평문 포맷의 점군 데이터만큼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새 예외를 만들어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술관과 문화부가 이 판결에 항소하지 않고 그냥 이행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국사원이 들고 나온 '문서가 아니다'
원고 측은 점군 예외 부분을 국사원에 상고했다. 그들은 전 세계 문화유산 사업이 점군 데이터를 일상적으로 쓰고 공개하며, 프랑스 정부 역시 전 국토 항공 스캔에서 나온 페타바이트급 오픈소스 점군 데이터를 공개하고, 그 열람용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주도했음을 제시했다. 문화부 자신의 점군 데이터 포맷·활용 지침도 근거로 들었다.
웬먼에 따르면 국사원은 심리 직전, 미술관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쟁점을 법원 직권으로 들고 나왔다. 점군 데이터가 애초에 행정문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에서 정부위원(rapporteure publique)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을 인용하며 "때로는 문서가 문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CADA와 하급심에서 검토·기각됐고 상고 쟁점도 아닌 저작인격권, 영업비밀, 상업적 재사용, 위조, 경제적 경쟁 같은 예외들을 나열했다.
심리 몇 주 뒤 나온 국사원 판결은 정부위원의 의견보다 더 나아갔다. 문화유산의 3D 스캔은 물리적 복제물과 법적으로 구별되지 않으며, 미술관의 양도 불가능한 소장품의 일부이므로 행정문서가 아니고 정보공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정보공개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사건의 사실관계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상고는 기각됐고, 웬먼에게는 미술관에 3,000유로를 지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한국 실무자에게 남는 질문
이 사건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라는, 한국 공공·문화 분야에도 직결되는 쟁점을 드러낸다. 핵심은 원본 저작물의 저작권 소멸 여부가 아니라, 세금으로 제작된 그 '디지털화 결과물'을 어떤 문서 범주로 볼 것인가다. 국사원은 스캔 데이터를 정보공개 대상 행정문서가 아니라 소장품의 연장선으로 규정함으로써, 디지털 복제본에 원본 소장품과 같은 통제권을 인정하는 길을 열었다. 이는 박물관·미술관이 공공 디지털 아카이브를 열람 대상이 아니라 자산으로 묶어둘 근거가 될 수 있다.
다만 이 글은 소송 당사자인 웬먼 본인의 서술에 전적으로 기반한 일방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술관과 법원의 판단 논리가 그의 표현처럼 비합리적이기만 했는지, 800쪽이 넘는 비공개 소송 기록 안에 다른 맥락이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CADA의 거듭된 공개 의견과 하급심의 부분 승리가 최고심에서 사실관계 심리 없이 뒤집혔다는 사실 자체는, 공공 데이터 개방을 추진하는 실무자들이 법 해석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설계 단계에서 관리할지 돌아보게 한다. 제작 단계에서 데이터의 공개 라이선스와 보관·접근 정책을 명시적으로 규정해두지 않으면, 사후에 '문서가 아니다'라는 해석의 여지가 남는다는 점이 이 사건의 실무적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