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글인가요
『Java 9 Modularity』 공저자로 알려진 개발자 폴 바커(Paul Bakker)가 자기 블로그에 '글쓰기에 AI를 쓰지 마세요'라는 단호한 제목의 글을 올렸어요. 요즘 개발자 블로그, 사내 문서, 심지어 PR 설명까지 AI가 써주는 게 당연해진 분위기에서 나온 반대 의견이라 한번 짚어볼 만해요.
글의 주장은 크게 두 갈래로 읽혀요. 글쓰기는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그 자체이고, 그걸 AI에게 넘기면 글은 남지만 생각은 사라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읽는 사람은 그 차이를 생각보다 잘 알아챈다는 거고요. 이 두 가지를 하나씩 풀어볼게요.
글쓰기는 곧 생각하기예요
개발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거예요. 머릿속에서는 설계가 완벽해 보였는데, 막상 설계 문서를 쓰려고 하니 '어, 이 경우엔 어떻게 되지?' 하는 구멍이 보이는 경험이요. 글로 옮기는 순간 모호했던 부분이 드러나고, 그걸 메우면서 설계가 진짜로 완성돼요. 포스트모템을 쓰다가 진짜 원인을 뒤늦게 깨닫는 것도 같은 원리예요.
그런데 AI에게 '이 내용으로 설계 문서 써줘' 하고 넘기면 어떻게 될까요? AI는 구멍을 발견하는 대신 그럴싸한 문장으로 구멍을 덮어요. 문서는 매끈하게 완성되는데, 정작 그 문서를 쓴 사람의 머릿속에는 검증되지 않은 설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거예요. 글은 있는데 생각은 없는 상태죠. 이 글이 경고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이건 코드 리뷰와도 비슷해요. 남이 짠 코드를 훑어보는 것과 직접 짜보는 것의 이해 깊이가 다르잖아요. 글도 마찬가지로, 직접 쓸 때 이해가 몸에 남아요.
읽는 사람도 알아채요
두 번째 포인트는 독자 쪽 얘기예요. AI가 쓴 글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어요. 지나치게 균형 잡힌 구조, '단순히 A가 아니라 B입니다' 같은 반복되는 패턴, 어디에도 모나지 않은 문장들이요. 요즘은 이런 걸 'AI 문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람들이 빠르게 감지해요.
문제는 그 순간 독자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자기가 쓰지도 않은 글을 나한테 읽으라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 내용이 맞든 틀리든 끝까지 읽을 이유가 없어져요. 쓰는 사람이 5분 들인 글을 읽는 사람이 20분 들여 읽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감각이 생기거든요. 기술 블로그처럼 저자의 경험과 판단이 핵심인 글에서는 이 신뢰 손실이 특히 치명적이에요.
반론도 만만치 않아요
물론 '무조건 쓰지 말라'는 주장에는 반론이 따라요. 가장 큰 건 비영어권 개발자 문제예요. 영어로 문서를 써야 하는 한국 개발자에게 AI는 생각을 대신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번역과 교정을 도와주는 도구에 가깝거든요. 내가 한국어로 정리한 생각을 영어로 옮기는 데 AI를 쓰는 건 '생각을 넘기는 것'과는 다르죠.
또 하나는 경계의 문제예요. 아웃라인 잡기, 오타 교정, 문장 다듬기, 자료 요약까지 어디까지가 'AI로 쓰기'인지 애매해요. 이 글의 주장을 넓게 해석하면 '생각하는 부분은 반드시 내가 하라'는 원칙으로 읽을 수 있고, 그렇게 보면 도구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어요.
이 흐름은 코딩 쪽 논쟁과도 닮았어요. AI 코딩 도구가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건 대부분 동의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코드를 머지하면 안 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잖아요. 글쓰기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고 보면 돼요.
한국 개발자에게 주는 시사점
실무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초안은 직접 쓰세요. 설계 문서, RFC, 회고처럼 '내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글은 특히요. 못 써도 괜찮아요. 못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는 거니까요.
그 다음에 AI는 리뷰어로 쓰세요. '이 논리에 빠진 부분이 있어?', '이 문장이 독자에게 불친절해?' 같은 질문으로요. 생각은 내가 하고, 검토를 도구에게 맡기는 구조예요.
영어 문서는 한국어로 먼저 생각을 정리한 뒤 번역과 교정에 AI를 쓰는 게 현실적이에요. 이때도 번역 결과를 읽고 '내가 하려던 말이 맞나' 확인하는 단계는 빼먹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팀 차원에서 '이 문서는 사람이 썼다'는 걸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문화가 있으면 문서의 가치가 올라가요. 사내 위키가 AI 생성 문서로 가득 차면 아무도 안 읽게 되거든요.
마무리
한 줄로 정리하면, 글쓰기에서 AI에게 넘기면 안 되는 건 문장이 아니라 생각이에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설계 문서나 블로그 글을 쓸 때 AI를 어디까지 쓰고 계신가요? 그리고 남이 쓴 글에서 AI 냄새를 느꼈을 때 실제로 읽기를 멈춘 경험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 출처: Hacker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