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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어 속 사라진 언어, '선(先)그리스어'의 흔적을 읽다

고대 그리스어 속 사라진 언어, '선(先)그리스어'의 흔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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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어에는 어떤 인도유럽어로도, 또 주변의 알려진 어떤 언어로도 그 뿌리를 추적할 수 없는 단어가 약 1,000개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중 상당수가 우리가 '가장 그리스어다운 것'으로 여기는 어휘라는 사실이다. 한 세기가 넘는 연구에도 언어학자들은 이 단어들을 모든 인도유럽어의 공통 조상인 원시인도유럽어(PIE)로 소급하지 못했고, 그리스어가 빌려 왔을 법한 이웃 언어의 원형도 찾아내지 못했다. 데이터 정비와 신규 점토판·비문 발견으로 어원 연구가 계속 정밀해지는데도, 이 '수수께끼 단어'들은 좀처럼 인도유럽어 어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만약 이런 단어의 수가 발견이 쌓일수록 줄어든다면 시간이 해결할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PIE에 존재했던 단어라면 여러 자손 언어에서 동계어가 나와야 하는데, 이 단어들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어휘는 이주의 화석 기록이다

이 미스터리를 이해하려면 인도유럽어가 유럽을 처음부터 뒤덮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스어 화자의 조상은 폰토스-카스피해 스텝 지대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동지중해로 이주해 온 목축민 신참자였다. 이들은 이동 과정에서 올리브, 히아신스, 무화과, 사이프러스처럼 낯선 식물과 지형, 그리고 내륙 출신에게는 생소했던 '바다'를 만났다. 새 대상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어휘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리스인은 하마를 '강의 말'(히포포타모스)이라 불렀고, 바다를 뜻하는 폰토스(póntos)는 원래 '길'을 뜻하던 PIE 어근에서 왔다. 다른 인도유럽어들이 이 어근을 '길·다리'(라틴어 pōns)로 유지한 것과 달리 그리스어만 '바닷길'이라는 의미로 확장했고, 시적 표현 할스(háls)는 본래 '소금'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조어 방식은 소수에 그쳤다. 현지에 이미 이름이 있는데 굳이 새로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어에서 '바다'를 뜻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는 확실한 인도유럽어 어원이 없는 탈라사(thálassa)다. 스텝 내륙에서 기원한 PIE에는 애초에 '바다'에 해당하는 안정적으로 재구되는 단어가 없었고(반면 눈·추위·늑대·곰·꿀은 재구된다), 각 언어는 해안에 도달한 뒤 저마다 바다 어휘를 만들거나 빌렸다. 결국 언어는 그 집단이 새 땅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갖고 있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목록, 즉 역사의 화석 기록인 셈이다.

지배 언어 아래 가라앉은 기층

이주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 언어가 사라지면서 다른 언어에 흔적만 남기는 일은 대개 사회적 계층화의 결과다. 군사·경제·기술·정치적으로 우세한 공동체가 자기 언어를 약자에게 강요하는 이 상황을 언어학에서는 층위화(stratification)라 부른다. 지배적인 쪽을 상층(superstrate), 밀려나는 쪽을 기층(substrate) 언어라 하며, 기층은 보통 완전히 소멸하고 상층 안에 흔적만 남긴다. 문자를 포함한 기술·경제·사회 조직에서 큰 진전을 이룬 미케네 문명(기원전 약 1750~1050년)이 대표적 상층 세력이었다. 라틴어가 지역 언어들을 지우면서도 그 영향을 받아 훗날 로망스어군으로 갈라진 것도 같은 원리다. 여기에 국경 너머 이웃에 영향을 준 방층(adstrate)도 있는데, 라인·다뉴브 밖 게르만 지역이 로마의 직접 지배를 받지 않고도 교역과 위세를 통해 라틴어 차용어를 받아들인 사례가 그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빌린 말'이라 판단하나

그렇다면 어떤 단어가 정말 차용된 것인지는 어떻게 아는가. 가장 명확한 경우는 이웃 언어에 어원이 분명한 유사어가 있을 때다. 그리스어 에베노스(ébenos, 흑단)는 인도유럽어 어원이 없지만, 지중해 건너 이집트어 헤브니(hebni)가 있고 두 문명이 활발히 교역했음을 우리는 안다. 또 하나 설득력 있는 사례는 바실레우스(basileús, 왕)다. 인도유럽어에는 이미 '왕'을 뜻하는 단어(PIE에서 라틴어 rēx로 이어짐)가 있는데 바실레우스는 이와 전혀 닮지 않았다. 그리스인이 에게해에 도착해 현지 통치자를 가리키던 말을 그대로 빌렸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여러 언어에 동시에 나타나면서도 어느 조어(祖語)로도 재구되지 않는 단어 역시 유력한 증거다. 그리스어 오이노스(oînos, 와인)는 지중해 여러 언어에 유사어가 있지만 PIE로도 원시셈어로도 재구되지 않아, 원래 단어가 어떤 고유럽 기층 언어에서 왔고 이후 페니키아인(기원전 약 1000년부터)과 그리스인(기원전 약 600년부터)의 와인 문화 확산과 함께 지중해로 퍼졌다고 본다.

실무적으로 이 이야기가 던지는 함의는 언어 데이터가 단순한 사전 항목이 아니라 집단 이동과 접촉의 지층 기록이라는 점이다. 자연어를 다루는 개발자나 데이터 종사자에게 어원의 공백은 오류가 아니라 정보다. 특정 어휘가 어느 조어로도 환원되지 않는다는 '부재'가 오히려 접촉과 차용의 역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선그리스어는 직접적인 문헌 증거가 거의 없어 실체를 재구성하기 어렵고, 탈라사 같은 단어의 인도유럽어 연결 시도가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분야의 결론이 여전히 정황 증거와 소거법에 크게 의존함을 보여준다. 흔적을 통해 사라진 언어를 추적하는 작업은, 데이터의 빈칸을 읽어내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럽고도 흥미로운지를 함께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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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linguisticdiscovery.com/posts/pre-gr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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