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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쌓은 삶, 그래도 남는 소설: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역설

1998년, 패트릭 오브라이언은 문학적 명성의 정점에 있었다. 앞선 10년 동안 그는 왕립문학협회 회원으로 선출됐고, 문학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CBE)을 받았으며, "평생 책의 즐거움에 기여한 공로"로 제1회 헤이우드 힐 문학상을 수상했다. 브룩스 클럽에 가입했고, 미국 순회 강연은 매진됐으며, 인세로 수백만을 벌었다. 로열 네이비 함장 잭 오브리와 군의관 스티븐 매튜린을 다룬 20권짜리 '오브리-매튜린' 연작은 비평가 리처드 스노로부터 "지금껏 쓰인 최고의 역사소설"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BBC 다큐멘터리의 전기적 불일치를 추적하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패트릭 오브라이언이 패트릭 오브라이언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는 자기 인생의 큰 부분을 지어냈다. 아일랜드에서 자랐다는 유년기(실제로는 잉글랜드), 오랜 항해 경력(그는 배에서 일한 적이 없고 어쩌면 바다에 나간 적조차 없었다), 소르본·이튼·옥스퍼드에서의 학력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본명은 패트릭 러스였다. 그는 1940년대에 첫 아내 엘리자베스를 버리고 이름을 바꿨으며, 그 과정에서 어린 두 자녀—그중 하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를 함께 버렸다. 엘리자베스는 그를 "문화를 향한 열정이 모든 인간적 고려를 압도한" "난폭하고 변덕스러운 남자"라 회고했다.

폭로 이후에도 식지 않은 열기

흥미로운 것은 이 폭로가 독자들의 열광을 조금도 식히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0년 그의 사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모든 책이 절판 없이 활발히 팔린다. 팬클럽이 늘어나고, 레딧 커뮤니티는 주당 5,000회 가까운 조회를 기록하며, 초판 가격은 계속 오른다. 2024년 기준 영국판 20권 초판 전집은 1,500파운드에 이른다. 매년 이 연작을 해설하거나 보완하는 새 책이 나오고, 2003년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났다. 일부 독자는 등을 돌렸지만, 대다수는 작가에 대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신경 쓸 이유가 있는 건 가족과 친구뿐"이라며 "소설을 읽고 나머지는 잊으라"는 존 랜체스터의 권고를 따랐다.

전기와 예술의 거리는 늘 까다로운 문제지만, 인격과 예술의 거리는 그보다 덜 그렇다. 오브라이언 자신이 뷔퐁의 "문체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을 즐겨 인용했는데, 그의 경우 그 '사람'은 수십 년간 자기 정체성의 사실들을 왜곡하는 데 매달린 인물이었다. 그토록 오래 유지된 노력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정체성의 핵심 구성 요소가 된다. 그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스티븐 매튜린은 1978년작 '데솔레이션 아일랜드'에서 "오래 지속된 거짓은 거짓말쟁이의 가장 깊은 섬유질까지 스며든다"며 위장으로 점철된 삶의 대가를 이야기한다.

실무자가 읽어낼 지점: 위장과 창작의 관계

잭 오브리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오브라이언은 수십 년간 소설을 써 왔다는 사실은 기억해둘 만하다. 초기작들은 답답하고 폐쇄적이며 지극히 자전적이었다. '카탈루냐인'(1953)은 남프랑스 콜리우르 생활에서, '증언들'(1952)은 웨일스의 작은 오두막에서 보낸 한 해에서 나왔다. '리처드 템플'(1962)은 "분열된 사회적 유산과 불안정한 소년기"를 가진 영국 요원이 붙잡힌 자들을 이기려 가짜 과거를 지어내는 이야기다. 인터뷰를 극도로 꺼렸고 과거를 묻는 질문에 맹금류처럼 격노했던 이 남자에게, 가볍게 손질한 자전적 소설은 불행한 선택이었다.

결정적 전환은 무대를 역사 속 과거로 옮긴 것이었다. 이 거리 두기가 더 여유롭고 세련되며 유머 있는 문체를 가능케 했다. 그의 유머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겨울 같은 반어에 귀를 맞춘 독자에게는 즐거움이 넘친다. "적에게 더 가까이 붙어 교전하라"는 암호를 깃발로 엮어 건 무도회, 뭍에서 "실직한 성마른 쥐잡이꾼"처럼 차려입는 잭의 불평꾼 시종 프리저브드 킬릭 같은 장면들이 그렇다. '13발 예포'(1989)의 대화가 보여주듯, 그의 귀는 최고의 희극을 빚어냈다.

오브라이언에게 지식의 격차는 큰 의미였다. 그는 자기 지식을 소중히 여겼고 남들도 그러길 기대했으며, 그러지 않는 이들에게는 신속한 보복이 따랐다. 의붓아들 니콜라이 톨스토이는 학문적 논쟁을 시도한 저녁 내내 "보란 듯 무시당한" 경험을 회고한다. 오브리-매튜린 연작은 그가 배움을 대체로 유쾌하게 펼칠 수 있는 세계를 제공했다. 해양 전문 은어에 더해 해부학·분류학·신학·정치이론·윤리·철학·문학·음악·의학에 대한 긴 논의가 사전을 뒤지게 만드는 어휘로 이어진다. 다만 반어적 현학과 순수한 현학 사이의 거리는 아주 작아서, "모래질의"를 대신하는 "arenaceous" 같은 단어가 개선인지 의문을 품는 독자도 있다.

스토리텔러의 자기 인식

1969년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냈을 때 그는 55세였고, 반평생의 강요된 정서적 거리 뒤에 깊이 고립돼 있었다. 아내 외에 관계가 거의 없었고, 글을 쓰지 않을 때는 포도주를 담그거나 시계를 만지작거리거나 자연을 관찰하며 배회했다.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시도는 오히려 자기 내면에 접근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낸다. 오래 방어된 심리의 문이 마침내 뒤틀려 닫혀버린 듯하다. 다이애나 빌리어스를 향한 스티븐의 절망을 그린 대목은 오거스턴 산문의 모작으로는 훌륭하나 한 인간의 내적 동요를 담아내는 데는 덜 성공적이다.

오브라이언 자신도 이 한계를 알았던 것 같다. 1991년 톰 클랜시의 소설을 평하며 그는 작가를 두 부류로 나눴다. 사건을 바깥에서 서술하는 '이야기꾼'과, 인물을 내부에서 살아낼 자유를 지닌 '소설가'다. 그는 클랜시가 "사건의 뛰어난 묘사가"이지만 사람을 내부에서 다룰 때는 자기 영역을 벗어난다고 썼다. 연작이 진행될수록 그가 인물에 '깃들려는' 시도는 줄어들었다. 그는 듣기 싫었겠지만, 정작 이야기꾼 쪽에 정확히 속한 인물은 오브라이언 자신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초서·호라티우스·호메로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인 오스틴 같은 정전의 대가들과 연결하려 애썼고, 초기작이 "모험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장르"로 분류된 데 괴로워했다. 창작자의 자기 인식과 실제 재능 사이의 이 간극이야말로, 텍스트와 그것을 만든 사람을 분리해 읽는 일이 왜 그토록 오래된 문제인지를 다시 일깨운다.

SOURCE · HACK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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