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식단은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백억 달러의 의료비를 발생시킨다. 그 부담은 대개 감당할 여력이 가장 적은 계층에게 무겁게 돌아가며,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제한된 아동은 특히 취약하다. 이에 각국 입법자와 공무원은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고 건강에 해로운 식품 광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 이 위기를 억제하려 해왔다. 코카콜라, 펩시콜라, 몬델리즈 같은 세계 최대 식품기업들은 공개적으로는 자신들도 해법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라이트하우스 리포츠(Lighthouse Reports)가 보건학계 연구진 및 국제 언론 연합과 함께 진행한 이번 조사는, 이들이 물밑에서 정부를 법정에 세워 공중보건법을 지연·희석·무력화해온 실태를 드러낸다.
조사팀은 2010년부터 2025년까지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 미국, 영국, 인도 여섯 나라에서 영양 개선을 목표로 한 법에 대한 소송을 데이터셋으로 구축했다. 전면 표시(front-of-pack labelling), 아동 대상 정크푸드 광고 규제, 탄산음료세, 초가공식품세 등을 겨냥한 정책에 맞선 소송이 총 239건 집계됐다. 이 사건들을 합치면 무려 595년에 이르는 소송 기간이 되는데, 이는 자국의 건강 정책을 방어해야 하는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다. 원고를 특정할 수 있는 민간기업 제기 사건 중 3분의 1 이상이 단 9개 모기업 집단에서 나왔고, 그 선두에 코카콜라, 펩시코, 몬델리즈가 있었다.
국가마다 다른 소송의 얼굴
소송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은 멕시코로, 239건 중 193건이 이곳에서 나왔다. 2022년 국가 조사에 따르면 멕시코 학령기 아동의 3분의 1 이상, 청소년의 41%가 과체중이었다. 다수 소송은 자국의 식품 표시 규제를 겨냥했고, 기업들은 해당 법이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고 자사 제품을 "악마화"하며 소비자 권리를 해친다고 주장했다. 한 지역 펩시 병입업체는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이용 가능한 물보다 청량음료를 마시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까지 항변했다. 다만 법원은 기업들이 내세운 법적 주장 상당수를 기각했다.
브라질에서는 17건 중 일부가 20년 가까이 결론 없이 이어지고 있다. 거의 모든 사건에서 원고는 산업협회였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기업들이 이미지에 해가 될 소송에서 값비싼 브랜드명을 떼어놓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코카콜라, 페레로, 마스, 몬델리즈, 네슬레, 펩시코 등이 이런 협회의 회원이다. 17건 중 11건은 보건규제기관 안비사(ANVISA)를 상대로 한 것으로, 그 결과 기관의 활동이 위축됐다. 콜롬비아의 18건은 대부분 개인 시민이 제기한 위헌 심판 형태였지만, 그 원고 다수가 식품기업 일을 해온 변호사였고 주장 논리도 기업들이 쓰던 것과 겹쳤다. 2022년 건강세 논의가 진행되던 해, 관련 기업들은 정당에 585만 유로를 기부해 그해 전체 정당 기부의 40%를 차지했다.
소송 없이도 작동하는 압박
미국에서는 미국음료협회(ABA)가 산타크루즈의 탄산음료세를 뒤집으려 소송을 냈으나 아직 실패했다. 이 판결은 캘리포니아의 자치시들이 가당 음료에 과세할 길을 열 수 있어 파장이 크다. 유럽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유럽에서 비전염성 질환은 질병 부담의 80%를 차지하지만, 각국 정부는 법 제정 이전 단계에서 이미 법적 위협에 부딪힌다. 산업계는 EU의 국가보조·경쟁·역내시장 규정을 반복적으로 들며 불확실성을 조성하고, 단 한 건의 소송 없이도 정책을 지연시키거나 좌초시킨다. 공동 유럽 설탕세 계획도 이런 압력 속에 약화됐다.
영국에서는 켈로그가 2021년 식품 진열·판촉 규제의 영양 프로파일링 모델에 맞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켈로그는 소송 1년 전, 자사 시리얼은 보통 함께 먹는 우유와 함께 건강 등급을 매겨야 한다는 사전 서한을 보건사회복지부에 보냈다. 페레로와 그 자회사도 판결 2주 전 같은 규제를 두고 유사한 서한을 보냈다. 인도에서는 식품규제기관 FSSAI가 2014년부터 전면 표시 규제를 개발해왔지만 산업계와 시민사회 간 합의 부족을 이유로 규제를 미뤄왔다. 라이트하우스가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인도의 표시안은 호주·프랑스의 유사 제도보다 오히려 일관되게 관대했다. 그사이 인스턴트 라면이나 이유식의 영양을 비교 분석한 인플루언서들은 성분표를 분석했다는 이유로 해당 기업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한국 실무자에게 던지는 시사점
이 조사가 드러내는 핵심은 소송의 승패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만드는 억지 효과다. 멕시코 사례처럼 법원이 기업 주장을 대거 기각하더라도,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친 소송은 규제기관을 소진시키고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정책 담당자들이 아예 입법을 주저하게 만든다. 원고를 산업협회나 개인 변호사, 위헌 심판 청구인 뒤에 숨기는 방식은 브랜드 이미지를 보호하면서 압박은 지속하는 전형적 우회로다. 정책·규제·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다루는 실무자라면, 표시제나 광고 규제, 건강세 같은 정책이 실제로는 법정 밖의 사전 서한과 법적 위협, 그리고 절차의 장기화라는 형태로 결정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동시에 이 데이터셋의 한계도 분명히 봐야 한다. 조사 대상은 여섯 개 국가로 한정됐고, 사건은 공식 법률 데이터베이스나 법원 기록, 신뢰할 만한 2차 자료로 검증 가능한 것만 포함됐다. 벌금 항소나 신선 농산물 관련 사건 등은 제외됐으며, 인도는 인플루언서 피소 사례를 예외적으로 포함하는 등 국가별 포함 기준도 균일하지 않다. 따라서 239건이라는 숫자는 실태의 하한선에 가깝고, 특정 기업의 개별 의도를 단정하기보다 산업 전반의 반복되는 법적 전략의 패턴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데이터셋과 함께 발표될 예정인 학술 논문이 이 그림을 얼마나 정밀하게 보완할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