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시작된 BBC 장파(Long Wave) 방송이 곧 종료된다. 가장 오래된 서비스를 멈추는 결정적 이유는 콘텐츠가 아니라 '부품'이다. 송신기 핵심인 특수 진공관(밸브)을 만드는 공장이 사실상 사라져, 남은 재고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건 숨은 의존성이다. 영국 일부 전기 계량기(Economy 7)는 198kHz 장파 신호로 심야 할인요금 시간대를 전환해왔다. 즉 방송을 끄려면 라디오가 아니라 수백만 가구의 계량기부터 교체해야 한다. 레거시 시스템은 기능이 낡아서가 아니라 '아무도 예상 못한 연결고리' 때문에 쉽게 죽이지 못한다는 교훈을 준다. 단종된 하드웨어, 사라진 유지보수 인력, 거미줄처럼 얽힌 의존성.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기술 부채와 정확히 같은 구조다. 시스템을 끄는 비용은 켜둔 비용보다 비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