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게이트웨이를 만드는 실무자라면 언젠가 마주치는 문제가 있다. 무료 크레딧을 노린 대량 계정, 지원 챗봇을 악용한 토큰 탈취, 그리고 정상 요금의 극히 일부만 내고 미국 모델을 쓰려는 트래픽이다. AI 게이트웨이 엔지니어 출신인 매트 렌하드는 이 남용의 출처를 추적하다 중국 개발자 포럼에서 '중전소(转发站·transfer station)'라 불리는 회색시장 생태계를 정리해 공개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미국 모델로 향하는 트래픽을 대신 중계해주고, 그 대가로 공식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접근을 파는 구조다. 한 사업자의 가격 비교 사이트에는 공식 기준 3,333달러어치의 Anthropic 크레딧에 해당하는 패키지가 425위안에 올라와 있었다. 1달러를 쓰면 0.13달러어치의 사용량이 돌아오는 셈이다.
네 개의 층으로 굴러가는 공급망
이 시장은 네 개 층으로 나뉜다. 맨 위에는 카드상(卡商)과 호상(号商)이 있다. 이들은 미국·유럽의 결제 심사를 통과하도록 만든 가상 신용카드와 대량 등록 계정을 판다. 그 아래 계정풀(账号池)은 수십에서 수백 개의 상위 계정을 한데 모아 인증 토큰과 요청 한도를 관리하고, 계정이 차단되면 다른 계정으로 넘기는 페일오버를 처리하며, 하위 중전소가 가져다 쓸 단일 API를 노출한다. 그다음이 소비자를 마주하는 중전소로, 계정풀의 API를 깔끔한 중국어 제품으로 감싸 청구·인보이스를 붙이고 위챗 고객지원 그룹을 운영하며 오로지 가격으로 경쟁한다. 맨 아래에는 값싼 추론을 찾는 개인 개발자와 스타트업, 중소 SaaS, 그리고 모델 증류(distillation)를 위해 이 인프라를 쓰는 대형 구매자가 있다. 실제로는 이 층들이 뒤섞여 있어, 한 사업자가 계정풀과 중전소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흔하고 포럼 참여자들도 두 용어를 혼용한다.
주목할 점은 재고가 모델 연구소 계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OpenAI·Anthropic·Google의 직접 자격증명과 함께, Kiro나 antigravity 같은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 계층에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뽑아낸 접근권도 거래된다. 계정풀 입장에서는 토큰이 연구소에서 왔든 그 위에 얹힌 앱에서 왔든 차이가 없다. 모델을 재판매하거나 노출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표적이 된다.
도구는 죄가 없다, 재고가 문제다
렌하드가 추적한 거의 모든 중전소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one-api 또는 new-api 위에서 돌아간다. 둘 다 OpenAI 호환 게이트웨이로, 사업자가 패널을 배포한 뒤 '채널(渠道)'을 추가한다. 채널 하나가 공급자와 API 키 풀을 뜻하며, 패널은 OpenAI API와 동일한 단일 엔드포인트를 내놓는다. 구매자는 기존 SDK의 주소만 중전소 URL로 바꾸면 된다. 요청마다 풀에서 키를 하나 꺼내 상위로 전달하고 응답을 돌려준 뒤, 사용량에 배율(倍率)을 곱한 만큼 할당량을 차감한다. new-api는 one-api를 더 활발히 개발하는 포크로, 셀프서비스 결제·충전과 이미지·영상·음성 모델을 기본 탑재해 상업성을 강화했다. 다만 추적된 중전소에서는 원본인 one-api가 new-api보다 약 네 배 자주 등장한다. 판매에 최적화된 쪽은 new-api지만 더 널리 쓰이는 건 원본이다. 소프트웨어 자체는 중립적이고 합법적이다. 많은 기업이 자사 계정을 하나의 게이트웨이 뒤에 두고 팀별 할당량과 지출을 관리하려고 이를 자체 호스팅한다. 선을 넘는 지점은 명확하다. 채널에 자기 키 대신 도난·유출·풀링된 키를 채우고, 공급자 약관을 어기며 그 접근권을 되팔 때다.
증류라는 진짜 수요
주요 용도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값싼 토큰, 지역 제한 우회, 그리고 모델 증류다. 포럼에서 인용된 발언들은 세 번째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한 참여자는 "프로그래밍 역량이 강한 회사들은 모두 Claude를 증류하고 있고, 수십억 위안 규모의 산업 사슬이며 큰손들은 하루에 수십만 위안을 번다"고 적었다. 트래픽 규모도 만만치 않아, 한 사업자는 "온라인 첫날 20TB를 받았다"고 했다. 시장의 성숙도 역시 놀랍다. 중전소 가격 비교 사이트, 제휴 프로그램, 게이트웨이 제품까지 갖춰져 있고, 추적된 상위 10개 중전소는 월 합계 360만 회의 방문을 끌어모은다. 정상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한 중전소 디렉터리의 매일 API 키 추첨이다. 중전소 진위 확인과 가격 비교를 표방하는 hvoy.ai는 매일 100달러짜리 API 키 50개를 뿌린다. 출석 체크로 얻은 크레딧 20개로 응모권 한 장을 사고 회차당 세 장까지 살 수 있는데, 렌하드가 본 날에는 258명이 401장을 걸었다. 인상적인 대목은 '공정성 연출'이다. 추첨 시드는 최신 비트코인 블록의 해시이고 당첨자는 부분 피셔-예이츠 셔플로 뽑으며, 응모 명단 전체가 추첨 전에 스냅샷으로 공개된다. 암호화폐 도박 사이트가 결과 조작이 없었음을 증명할 때 쓰는 바로 그 기법이다.
방어의 현실과 한국 실무자에게 남는 함의
렌하드는 깔끔한 해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남용은 계정 생성부터 탐지, 피해 억제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쫓고 쫓기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가 효과를 봤다고 소개하는 원칙은 두 가지다. 어차피 일부 남용은 뚫린다고 가정하고 그것이 입힐 수 있는 비용의 상한을 미리 제한할 것, 그리고 남용자를 잡았을 때 깔끔한 에러 대신 조용히 스로틀링할 것이다. 명확한 차단 메시지는 공격자에게 어떤 신호만 고치면 되는지 알려줄 뿐이기 때문이다. 남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공격 비용이 수지가 맞지 않을 만큼 비싸지면 상대는 더 쉬운 표적을 찾아 떠난다는 논리다. 다만 그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Anthropic 등이 KYC와 신원 확인을 강화할수록 남용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계층 등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AI 서비스 사업자에게 이 이야기는 두 방향의 경고로 읽힌다. 자사 API 키와 계정이 이런 풀의 재고가 되지 않도록 유출·공유를 관리해야 하고, 반대로 시중의 비정상적으로 싼 '중계' 접근권을 도입할 경우 약관 위반과 갑작스러운 차단, 데이터 경로의 불투명성이라는 위험을 함께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 인용된 발언은 모두 중전소 terminal.pub을 운영하는 이용자 v2exgo가 V2EX 프로그래머 게시판에 연 'AI 중전소 용어 종합 안내' 스레드에서 번역된 것으로, 이 글은 2026년 3월 5일부터 6월 23일까지 약 3만 5천 회 조회와 190개의 답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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