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한 저자가 최근 에세이에서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창작에는 만인에게 통하는 청사진이 없으며 모든 작가는 저마다 다른 길을 걷지만, 예외 없이 성립하는 단 하나의 황금률만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가능한 한 많이, 넓게, 그리고 잘 읽어라"다. 그는 이 규칙을 지키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까지 단언한다. 얼핏 뻔한 소리 같지만, 그가 이 글을 쓴 배경에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정작 책은 읽지 않는 지망생이 늘고 있다는 현장의 관찰이 깔려 있다.
"너무 바빠서 못 읽는다"는 변명
저자는 워크숍이나 강의, 멘토링을 시작할 때마다 상대에게 좋아하는 작가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묻는다. 취향을 파악해 조언의 방향을 잡기 위한 질문인데, 언젠가부터 "너무 바빠서 못 읽는다" 또는 "한동안 책을 안 읽었다"는 답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 대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확인해 보라고 되받는다. 하루 두 시간, 다섯 시간, 일곱 시간을 화면에 쓰고 있다면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본인은 전업 작가로 일하며 부업 세 개를 병행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매일 밤 책을 읽는데, 이것이 특별한 노력이 아니라 스트리밍이나 스크롤 대신 책을 택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읽기가 곧 쓰기 훈련인 이유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두 갈래다. 첫째, 모든 책은 그 자체로 기술 교육이다. 좋든 나쁘든 평범하든, 읽는 사이 뇌는 장르와 인물 유형, 클리셰, 설정, 구조 같은 소설의 패턴을 흡수한다. 저자는 창작 수업을 들은 적 없던 초기에 베타 리더로부터 "고전적인 3막 구조를 따랐다"는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고 회고한다. 구조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오랜 독서로 훈련된 뇌가 본능적으로 그 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는 3막·5막 구조 수업이나 MFA(예술학 석사) 같은 정규 과정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되, 독서의 중심적 중요성에 비하면 부차적이라고 본다. 특히 장르 밖의 독서를 강조한다. SF의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SF가 아니라 하드보일드 범죄물에서 왔고, 논픽션은 역사·과학·철학이라는 이야기의 원재료를 끝없이 공급했으며, 시는 최소한의 단어로 이미지와 정서를 빚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둘째 근거는 뇌 자체의 변화다. 그는 매리앤 울프의 저서 '다시, 책으로(Reader, Come Home)'를 인용해, 소셜미디어에 길들여진 '디지털 뇌'와 지속적 집중·상상력·비판적 사고를 요구하는 '읽는 뇌'가 서로 상극이라고 정리한다. 알림과 도파민을 좇도록 재배선된 신경 회로는 한 권의 책에 몰입하는 능력을 갉아먹는데, 문제는 이 읽는 뇌가 곧 쓰는 뇌라는 점이다. 집중력과 지구력, 생생한 상상력은 작가에게 필수 근육이며, 책을 쓰는 일은 마라톤과 같아서 그 체력을 기르는 훈련이 바로 독서라는 논리다. 그는 밤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 시간씩 책을 읽는 몇 주만으로도 뇌가 달라진다며 희망을 덧붙인다.
생성형 AI 시대에 되짚어 볼 대목
이 글에서 IT 실무자가 눈여겨볼 지점은 생성형 AI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는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즉 예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만든다는 관념만 좋아하는 이들에게 AI가 도구를 쥐여 주었다고 꼬집는다. 이는 단순히 글쓰기 직군의 위기론을 넘어, 코드·문서·기획서 등 무엇이든 AI로 초안을 뽑아내는 일이 일상이 된 개발 현장에도 시사점이 있다. 산출물을 빠르게 생성하는 능력과, 그 분야의 결과물을 깊이 읽고 좋고 나쁨을 판별하는 안목은 별개의 역량이다. 좋은 코드 리뷰어가 대개 남의 코드를 많이 읽은 사람이듯, 입력의 질과 양이 판단력의 토대가 된다는 주장은 직군을 가리지 않고 통한다.
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한 작가의 경험과 신념에 기댄 에세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연간 52권" 같은 수치나 지인들의 독서량은 개인적 일화일 뿐 독서량과 글쓰기 실력의 상관을 측정한 자료가 아니며, "넓게 잘 읽으라"는 처방도 구체적 기준 없이 다분히 규범적이다. 디지털 뇌에 대한 서술 역시 울프의 저작과 저자가 접한 논의를 근거로 들 뿐 이 글 자체가 실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화면 응시 시간을 독서로 조금씩 옮겨 보라는 실용적 권고와, 만드는 능력만큼 읽고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메시지는 AI가 생산을 대신해 주는 시대일수록 곱씹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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