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앱인데, 공간이 '휘어' 있다고요?
Excalidraw, tldraw, Miro 같은 '무한 캔버스' 도구 써보셨죠? 종이처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끝없이 펼쳐지는 빈 공간에 자유롭게 메모하고 그림 그리는 그거요.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도구는 좀 특이해요. 평평한 무한 평면이 아니라, '휘어진 공간(비유클리드 공간)' 위에 메모를 하는 도구거든요. 정확히는 수학에서 말하는 푸앵카레 원반(Poincaré disk) 위에 노트를 펼쳐요.
이름부터 어렵게 느껴지는데, 천천히 풀어볼게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뭐냐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기하학은 전부 유클리드 기하학이에요. 평평한 종이 위 세상이죠. 여기선 '평행선은 절대 안 만난다',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 같은 규칙이 성립해요.
그런데 공간이 평평하지 않다면 어떨까요? 안장처럼 음(陰)의 곡률로 휘어진 공간을 쌍곡 공간(hyperbolic space)이라고 불러요. 여기선 한 점을 지나면서 어떤 직선과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 무한히 많고, 삼각형 내각의 합도 180도보다 작아요. 말로는 잘 와닿지 않죠. 그래서 수학자 푸앵카레가 이 무한히 넓은 쌍곡 공간을 딱 동그란 원 하나 안에 통째로 담아서 보여주는 방법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푸앵카레 원반이에요.
핵심은 이거예요. 원반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모든 게 점점 작아져요. 무한히 먼 거리가 원의 테두리 쪽으로 무한히 압축되거든요. 그래서 유한한 동그라미 안인데도 사실상 '무한한 공간'을 담을 수 있어요. 에셔(Escher)의 천사와 악마가 원 안에 무한히 반복되며 작아지는 그 판화, 본 적 있다면 바로 그게 푸앵카레 원반이에요.
메모에 왜 이게 어울릴까
언뜻 '수학자 장난 같은데 실용성이 있나?' 싶지만, 의외로 메모·지식 정리와 궁합이 좋아요.
가장 큰 장점은 '초점 + 맥락(focus + context)'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일반 평면 캔버스에선 한 부분을 확대하면 주변 내용이 화면 밖으로 사라져버리잖아요. 그런데 쌍곡 공간에선 내가 보는 중심부는 크고 또렷하게, 그 주변과 멀리 있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작아지면서도 테두리 안에 계속 보여요. 마치 어안렌즈로 방 전체를 보면서 정면은 크게 보는 느낌이죠.
특히 트리(나무 구조)나 그래프를 펼칠 때 강력해요. 생각해보면 지식이나 폴더 구조는 가지가 갈라질수록 항목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잖아요. 평면에선 금방 빽빽해져서 겹치는데, 쌍곡 공간은 가장자리로 갈수록 공간이 '무한히' 늘어나니까, 가지가 아무리 많이 뻗어도 자리가 부족하지 않아요. 마인드맵이나 위키처럼 연결이 폭발하는 데이터를 표현하기에 수학적으로 딱 맞는 그릇인 셈이에요.
업계 맥락에서 보면
사실 쌍곡 공간으로 정보를 시각화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90년대 'Hyperbolic Tree' 연구가 대표적이고, 최근엔 머신러닝 쪽에서 단어나 개념의 계층 관계를 쌍곡 공간 임베딩(hyperbolic embedding)으로 표현하면 트리 구조를 훨씬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다는 연구도 활발해요. 그런 의미에서 '무한 캔버스 메모'에 쌍곡 기하를 끌어온 건, 학술적으로 검증된 아이디어를 일반 사용자용 도구로 가져온 재밌는 시도예요. 평면 무한 캔버스 도구들이 이미 많은 상황에서, '공간의 곡률'이라는 전혀 다른 축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거죠.
한국 개발자에게 주는 시사점
당장 업무 메모 앱을 이걸로 바꾸자는 얘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데이터 구조에 맞는 시각화 공간을 선택한다'는 발상은 꽤 배울 점이 있어요. 우리가 무심코 'div와 평면 좌표'에만 갇혀서 UI를 짜는데, 데이터의 본질(예: 계층이 폭발하는 트리)에 맞춰 좌표계 자체를 바꾸면 같은 정보도 훨씬 보기 좋아질 수 있거든요. 또 Canvas나 WebGL로 좌표 변환을 직접 구현해보는 건 그래픽스 기본기를 다지는 좋은 연습이기도 해요.
마무리
'무한한 공간을 유한한 원 안에 담는다'는 수학적 아이디어를, 메모라는 일상 도구로 끌어온 멋진 실험이에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데이터를 이 휘어진 캔버스 위에 펼쳐보고 싶으세요? 평평한 화면에 익숙한 우리에게, 휘어진 공간은 오히려 더 직관적일까요 아니면 멀미부터 날까요?
🔗 출처: Hack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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