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업계에서 한동안 정답처럼 통용된 공식이 있었다. 창업자들을 한 공간에 모아 놓고, 함께 살고 함께 일하게 하면 아이디어가 서로 부딪히며 더 빠르게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2010년대 초 수많은 인큐베이터가 코워킹과 셰어하우스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방식에서 나온 유명한 성공 사례는 사실상 없다. 흥미로운 점은, 총합 6천억 달러 규모의 스타트업을 배출한 Y Combinator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표였던 샘 올트먼은 2015년 "코워킹 스페이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YC가 작동하는 이유의 일부"라고 밝혔다.
올트먼의 설명은 2019년 타일러 코웬과의 인터뷰에서 구체화된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정말 위대한 아이디어는 처음 들었을 때 대개 나쁘게 들린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아이디어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흔들린다. 문 하나 뒤에서 네 명이 일한다면, 남들이 보기엔 형편없지만 실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품은 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코워킹 스페이스에 있으면 사람들이 비웃고, 아무도 '가장 늦게 선택되는 아이'가 되고 싶어 하지 않기에, 결국 그럴듯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아이디어로 갈아탄다. 올트먼은 이를 '대역 통과 필터'에 비유한다. 그런 환경은 최악의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동시에 최고의 아이디어까지 함께 죽인다.
고독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다
이 통찰은 예술가들에게서도 반복된다. 피카소는 "위대한 고독 없이는 진지한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제임스 볼드윈은 예술가의 본질을 "대부분의 사람이 피해야 하는 상태, 즉 홀로 있는 상태를 능동적으로 길러내는 것"이라 규정했다. 다만 이들이 말하는 고독은 물리적으로 방에 혼자 앉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타인의 평가가 나를 흔들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그리고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흐릿한 질문과 초기 아이디어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상태에 가깝다. 방을 얻는 것과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원문 저자가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와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미공개 작업 노트를 파고든 이유가 여기 있다. 출판을 위한 글이 아니라 발견의 과정을 돕기 위해 쓰인 이 기록들은, 새로운 것을 세상에 불러들이려는 정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그로텐디크는 1983년 원고 서문을 쓰기 시작하며, 완성된 정리(定理)만을 떠받드는 수학계가 정작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몽환적 상태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실수와 헛발질, 되돌아봄과 도약까지 모두 기록하는 방식으로 서문을 썼고, 이 작업에는 29개월이 걸렸으며 결과물은 2천 페이지를 넘겼다.
잘 아는 것을 다시 발명하는 시간
그로텐디크가 스스로를 동료들과 구분 지은 지점은 재능이 아니었다. 파리에 왔을 때 그는 프랑스 최고의 젊은 수학자들만큼 뛰어나지 않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다. 그 동료들은 훗날 저명한 수학자가 되었지만, 30여 년이 지나 보니 그들이 남긴 흔적은 깊지 않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미 짜여진 맥락 안에서 아름다운 일을 했을 뿐, 그 틀을 흔들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텐디크가 가졌던 것은 '혼자 있는 능력'이었다. 몽펠리에라는 변방 대학에서, 그는 강의 대신 17세부터 20세까지 홀로 호길이와 부피 같은 개념의 정의를 스스로 세우며 이미 30년 전에 풀린 측도론과 르베그 적분을 처음부터 재발명했다.
좋은 지도교수 밑에 있었다면 '시간 낭비'라 불렸을 이 고립의 3년이, 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인지적 공간에 자리 잡게 해 준 결정적 경험이었다. 이런 패턴은 위대한 작업을 한 이들의 유년기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아인슈타인은 통계물리학의 일부를, 파스칼은 유클리드 증명 여럿을 스스로 다시 유도했다. 버트런드 러셀 역시 뉴턴이나 화이트헤드 같은 인물에게는 순응의 압력이 거의 없는 시기, 아무리 기이한 관심사라도 마음껏 좇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지적한다. 겉보기엔 낭비 같지만, 이는 연구가 아니라 자기 사고의 전개를 지각하는 능력, 즉 주의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실무자가 가져갈 것과 오해하지 말 것
이 논의를 한국의 개발·제품 조직에 옮기면 몇 가지 시사점이 뚜렷해진다. 아이디어의 초기 단계와 검증 단계를 같은 환경, 같은 평가 기준에 놓는 것은 위험하다. 데일리 스크럼이나 오픈된 슬랙 채널처럼 즉각적 반응이 오가는 자리는 실행을 정렬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아직 말이 되지 않는 발상을 꺼내 놓기엔 가혹한 필터로 작동한다. 설익은 아이디어에는 남에게 검증받기 전 혼자 붙들고 키울 시간, 그리고 혼란 속에 머물며 더 강력한 질문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들을 구분 짓는 특징은 답을 빨리 내는 능력이 아니라, 혼란을 성급히 봉합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길어 올리는 인내였다.
다만 이를 '혼자 일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는 결론으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올트먼조차 코워킹 환경이 최악의 아이디어를 걸러낸다는 사실은 인정했고, 그로텐디크의 고립은 훗날 파리라는 최고의 수학 공동체와 연결되었기에 결실을 맺었다. 이 텍스트는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의 초상이며, 저자 스스로도 창조적 상태가 여러 형태를 띤다고 못 박는다. 게다가 여기 인용된 인물들은 극단적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생존 편향의 위험도 있다. 실무의 요령은 고립과 연결을 시간 축에서 분리하는 것, 즉 발상을 잉태하는 사적 국면과 그것을 냉정히 검증하는 공적 국면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설계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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