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체 무슨 프로젝트인가요
진짜 독특한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를 소개할게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500년치 천변(天變)·재이(災異) 기록, 그러니까 "붉은 기운이 하늘에 보였다", "흰 무지개가 해를 꿰었다", "지진이 일었다" 같은 옛 궁중의 관측 기록들을 현대 인프라 모니터링 대시보드 형태로 시각화한 프로젝트예요. 이름하여 omen.ops.
처음 들으면 "그게 왜?" 싶을 수 있는데, 곰곰이 보면 묘하게 잘 맞아떨어져요. 조선의 천문관측 기관인 관상감(觀象監)은 사실 일종의 국가 운영 모니터링 시스템이었거든요. 하늘에 이상이 보이면 사관이 기록하고, 왕에게 보고하고, 왕은 그 "알림"을 보고 정책을 바꾸거나 신하를 갈았어요. SRE가 PagerDuty 알람 받고 인시던트 대응하는 것과 구조가 똑같아요. 이 프로젝트는 그 메타포를 시각적으로 풀어낸 거예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핵심은 데이터 파이프라인이에요.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디지털화해서 공개한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인데, 그중에서 천변·재이에 해당하는 기록을 추출하려면 자연어 처리가 필요해요. 고문(古文) 한자 표현에서 "일식", "혜성", "지진", "가뭄" 같은 사건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날짜를 그레고리력으로 변환하고, 빈도와 강도를 정량화하는 작업이 깔려 있어요.
그렇게 정리된 시계열 데이터를 Grafana나 Datadog 스타일의 대시보드로 옮긴 거예요. 시간 축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흐르고, 메트릭은 "일식 발생 횟수", "혜성 출현", "지진 강도" 같은 거예요. SLO(서비스 수준 목표)에 해당하는 "왕조 안정성 지표"를 정의하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시기에 어떤 "알람"이 폭주했는지를 빨간 막대로 보여주는 식이죠.
기술 스택 자체보다 더 인상적인 건 컨셉의 일관성이에요. 인시던트 보고서 양식으로 "1592년 임진왜란 포스트모템"을 작성한다거나, SLI(서비스 수준 지표)를 "왕의 평균 재위 기간"으로 잡는다거나 하는 식의 디테일이 살아있어요. 단순한 데이터 시각화가 아니라 "옛 관료 시스템과 현대 SRE 문화가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를 풀고 있다"는 통찰을 전달하는 작품이에요.
업계 맥락에서
사실 "역사 데이터를 현대적 도구로 재해석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어요. Roman Empire의 인구 데이터를 d3.js로 시각화한 프로젝트,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물 관계를 그래프 DB로 표현한 작업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한국 사료를 인프라 관점으로 재해석한 건 흔치 않아요. 특히 옵저버빌리티라는 비교적 최근에 자리잡은 SRE 개념을 메타포로 가져왔다는 게 신선하죠.
옵저버빌리티는 원래 제어 이론에서 온 단어예요. "시스템 내부 상태를 외부 출력만 보고 얼마나 추론할 수 있는가"를 뜻해요. 조선의 천변 기록도 똑같은 질문이에요. 직접 볼 수 없는 "하늘의 뜻" 또는 "국가의 건강 상태"를 관측 가능한 현상(일식, 혜성, 가뭄)으로 추론하려 했던 거니까요. 이 둘을 연결한 메타포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진짜 맞닿아 있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의 백미예요.
한국 개발자에게 주는 시사점
실용적으로 당장 써먹을 코드는 아닐지 몰라도, 이런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두 가지가 중요해요. 첫째는 로컬 컨텍스트의 힘이에요.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에서 한국 개발자가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가 "한국어/한국 문화에 특화된 데이터셋과 응용"이거든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같은 사료들은 영어권 개발자가 절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자원이에요. 여기에 NLP나 시각화 기술을 결합하면 굉장히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와요.
둘째는 메타포 기반 학습의 효과예요. SRE를 처음 배우는 주니어에게 "SLO가 뭐고 에러 버짓이 뭐다"를 추상적으로 설명하면 잘 안 들어와요. 그런데 "왕이 신하에게 일식 보고 받았을 때 "이건 인시던트야"라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비유하면 직관적으로 와닿거든요. 사내 교육 자료나 컨퍼런스 발표를 만들 때 이런 식의 "낯선 도메인을 익숙한 도메인으로 끌어와서 설명하기" 패턴은 정말 강력해요.
사이드 프로젝트의 본질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요. 꼭 새로운 SaaS를 만들거나 스타트업으로 키울 필요는 없어요. 자기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작품 같은 프로젝트가 결국 가장 멀리 가고, 본인의 시그니처가 되기도 해요.
마무리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면 진짜 재밌는 게 나온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한 프로젝트예요. 여러분이 평소 관심 있는 "비기술 도메인"이 있다면, 거기에 옵저버빌리티 같은 현대 기술 메타포를 입혀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들어 본다면 어떤 게 나올 것 같으세요?
🔗 출처: Hacker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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